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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단련하시는 말씀 (시 10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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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하시는 말씀 (시 105:16-23)

(시105:16-23)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의 땅에 나그네가 되었도다.

1. 사도 베드로가 “여러분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서 순수하게 되면, 불로 연단하여도 마침내는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벧전1:7)라고 말했습니다. 연단을 받아 순수해진 믿음이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금(金)은 부의 상징이며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금은 동광석 제련을 통해 얻어지는데 동광석 1톤에 약15∼20g의 금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광석을 1000도 이상의 용광로에서 처음 제련하면 동, 그 다음이 은, 마지막에 제대로 된 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세 번 용광로를 거쳐야 비로소 순금(純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순금(24K)에도 불순물이 들어 있습니다. 순금이라고 해도 그 순도를 99.9%로 표시하는 것은 금을 아무리 순도있게 정제를 하더라도 완벽한 금만으로 정제할 수 없고 이물질이?첨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금을 정제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한 물질로만 된 물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물질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물질에 100%라고 하면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순도 표시의 최고 가치는 진실이기 때문에 100%에서 0.1%를 빼 99.9%라고 표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을 순도에 따라 포 나인(99.99%), 파이브 나인(99.999%), 식스 나인(99.9999%), 세븐 나인(99.99999%)으로 분류되는데 현재까지 순금의 제련 중에 99.9999999% 즉, ‘세븐 나인’ 기술이 최고라도 합니다. 지혜서 잠언 16:2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잠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심령을 감찰하신다.”(the LORD weighs the spirit.) 는 말씀은 그 마음과 영혼을 ‘달아보신다.’, ‘꿰뚫어 보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100% 깨끗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17:3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도가니와 풀무가 광석을 녹여서 잡성분을 제거하고 순수한 은과 금을 분리하여 내듯이, 하나님께서는 고난이나 질병, 실패 등의 시련을 통해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과 인격을 갖춘 믿음으로 단련시키십니다. 단련받은 믿음이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는 목적은 순수한 물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순수한 것, 순도 100%, 깨끗한 것이 가장 가치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단련하시는 이유는 ‘세븐 나인’ 기술로 제련된 순금보다 더 존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2. 오늘 본문 마지막에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라는 말씀에서 “단련”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짜라프’인데 바로 순금을 얻기 위해(pure) 광물을 풀무불속에 녹여(smelt)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refined), 즉 제련 과정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31:9)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온, 예루살렘, 곧 교회는 하나님의 불이 타오르는 풀무이며, 성전에서 타는 불은 죄악을 소멸하여 성도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거룩한 불을 말합니다.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여 금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삶으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 풀무 불속에 던져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B.C.585년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통치시대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구약성경에서 왕으로서는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B.C.604, 597, 586년 세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에 출정해서 결국 유대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끌어간 바벨론 왕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당시 근동 전체의 패권을 장악하여 바벨론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는 유산(遺産)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태양에 말린 벽돌이 아니라 가마에서 구워진 벽돌로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다니엘서 3:23, “맹렬히 타는 풀무 불”은 느부갓네살 당시 바벨론의 수많은 벽돌 가마 중 하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군사력과 건축사업을 통해 바벨론을 당대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세력 확장과 정복을 기념하고, 자기 왕국의 영원성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27m 높이의 금으로 입힌 거대한 신상(神像)을 세웠습니다. 

더 나가 그 신상을 숭배하라며 이렇게 공포합니다. ‘민족과 언어가 다를지라도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라. 만약 엎드려 절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던져 넣을 것이라.’ 그 때 곧 바로 왕에게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유다 포로 출신 관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분노한 가운데 이들이 붙들려 왔습니다. 왕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합니다. ‘지금이라도 너희가 내가 만든 신상에게 엎드려 절을 할 마음이 되어 있으면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즉시 맹렬히 불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다.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그러나 이들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 일에 대해 우리가 왕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화가 치밀어,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묶어서 극렬히 불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왕의 명령대로 시행하던 용사들이 풀무불이 너무 극렬해서 그만 그 불꽃에 타 죽었습니다. 물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들 세 사람은 묶인 채로,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소리칩니다. ‘우리가 묶어서 풀무불 속에 던진 사람은, 셋이 아니더냐? 보라,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다.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풀무불 가운데 걷고 있고, 상한 데가 전혀 없지 않느냐? 더욱이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도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이 맹렬히 불타는 풀무불 어귀로 가까이 가서 소리쳐 말합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리로 나오너라!’ 그러자 이들이 불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왕과 그 측근들이 모여서 보니, 그 몸이 불에 상하지 않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고, 불에 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조서를 내립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그는 천사를 보내 하나님을 믿고, 저희의 몸을 바치면서까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저희의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신도 절하여 섬기지 않은 그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두고서 경솔히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 명령을 어겼다가는 그 몸이 조각날 것이며, 집이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를 믿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왕은 이들을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여 존귀와 영광을 누리며 살게 했습니다.(단3장)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이 실제로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단련’되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의 믿음은 일찍부터 인정된 바 있습니다. 이들은 느부갓네살 왕 당시 포로로 끌려온 소년들로 왕궁에서 최고의 왕궁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포로들이었지만 인재로 발탁된 것입니다. 그런데 왕궁 음식은 모두가 우상의 제물로 바쳐진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일찍이 뜻을 정하여 왕궁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 모두가 바벨론 모든 수재들보다 10배나 더 뛰어난 지혜와 총명하게 축복하셨습니다.

(단1:17,20)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이렇게 해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 바벨론에서 최고위직 관리로 등용되었습니다. 바벨론당국의 고시 합격을 통해 고관이 된 것 아닙니다. 비록 포로 출신이지만 어린 나이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과 존귀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도 과연 정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실제 ‘맹렬히 불타는 풀무불 속에’ ‘단련’받게 된 것입니다. 

‘포 나인’(four nine,99.99%) 순도의 순금같은 그들의 믿음이 ‘세븐 나인’(99.99999%)의 순금보다 더 높은 순도의 정금(正金)으로 ‘단련’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지방에서 이전 보다 더욱 더 높임을 받아 존귀와 영광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련, 여러분의 믿음이 ‘단련’을 받게 될 때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정금같은 믿음으로 단련하여 마침내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처럼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믿음이 ‘단련’받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인내하여 욥과 같이 마침내 정금같이 나오는 믿음으로 축복받으시기 바랍니다. 욥기 23:8-10을 보겠습니다.

(욥23:8-10)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같은 욥의 믿음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음직한 미국의 유명한 영화 <록키>가 있습니다.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상대자로 록키가 선택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록키가 이길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록키 자신도 패배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상대가 되어 링에 올라갈 것을 수락한 이상 그는 15회전을 끝까지 링 위에 머물기 위한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끝까지 버티자”(Go the distance)를 거듭 다짐하며 싸웁니다. 결국 끝까지 버틴 록키가 승리했습니다. 끝까지 싸우는 자체가 인생 승리라는 것입니다. 경주자의 승리도 끝까지 달려 완주하는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단련된 신앙생활의 끝은 칭찬과 존귀와 영광입니다.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약1:3) 그리고 그 인내의 믿음 끝에는 칭찬과 존귀와 영광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믿음의 단련이 임할 때 인내하므로 영광과 존귀와 칭찬의 결말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오늘 본문에서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을 단련하였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하나님 말씀으로 단련되어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4대 족장 중 마지막 족장인 요셉은 유독 어린 시절부터 뜻하지 않은 환난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아들 요셉 덕택에 애굽 왕 바로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130년 인생이 그의 말대로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역시 야곱 못지않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범한 죄값으로 환난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오히려 더 진실하고 더 깨끗하기 때문에 환난과 곤고함을 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는 달리 어린 시절 좋은 환경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야곱은 그 어느 아내보다 첫 사랑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외삼촌의 농간(弄奸)으로 라헬의 언니 레아가 정처(正妻)이지만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고 라헬을 마음으로는 정처로 생각했습니다. 그 라헬이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는데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아들보다도 귀히 생각했고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37:3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창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은 그가 요셉을 마음의 장자로 여겼다는 것을 뜻입니다. ‘채색옷’은 단순히 어여쁜 옷이 아닙니다. 

사무엘 하13:18에 보면,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는 말이 있습니다. ‘채색옷’이란 어린 공주들이 입는 긴 옷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과 구별하기 위해 ‘채색옷’을 입혔고 마음에 장자로 구별해서 귀하게 키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했어요.” 이에 형들이 기분 나빠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라며 요셉을 더욱 더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요셉은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합니다. “들어 보세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이번에도 형들이 시기했지만 아버지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고 했습니다.(창37:6-11) 

‘마음에 두었다.’는 것은 분명히 장차 요셉이 장자의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꿈으로 인해 야곱은 더욱 더 요셉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형제들은 더욱 더 요셉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야곱의 각별한 사랑을 독차지할수록 그 형들은 더욱 더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창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이 말씀이 히브리 원문에는 ‘그에게 평안하냐고 인사도 않도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집에 살면서 인사도 안하고 지냈다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그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요셉은 그러한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을 사랑했습니다. 창세기37:13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으니 너를 그들에게 보내리라” 고 하자 요셉이 냉큼 ‘아버지요, 내가 가겠나이다.’며 나섰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체하지 않고 멀리 형들의 소식을 알기 위하여 세겜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형들을 찾지 못하고 세겜 광야에서 그가 방황하며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헤매는 모습을 불쌍히 여겨서 그 내용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 말이 ‘그들이 여기를 떠나 더 멀리 도단으로 갔느니라.’ 했을 때 그는 다시 그 험하고 머나먼 그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그 형들은 요셉을 그렇게 미워했건만 요셉은 형들을 그렇게 염려했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창37:12-17) 

그런데도 그의 형들은 며칠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기들을 염려해서 찾아온 요셉을 죽여 없애버리고자 공모(共謀)합니다. 루우벤 형이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고 해서 요셉은 그 길로 결국 지나가는 상인에 팔려 애굽 경호대장 보디발 가정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 17세였습니다. 야곱의 가정에서 왕자처럼 살다가 사지(死地)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낯설고 물설은 이국(異國)에 팔려가 종살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전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요셉은 어린나이에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해야만 합니까? 아버지 야곱처럼 형을 속인 적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 해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시105:16-17)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계시한 꿈,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 그리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 이 꿈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에 팔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13년 후, ‘그가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 흉년이 들게 하셔서 양식을 다 끊으셨습니다. 결국 양식을 구하기 위해 베냐민, 막내를 제외한 형제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갔습니다. 이때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등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줄 모르고 양식을 사고자 애굽 총리 앞에 엎드려 절하게 되었습니다.

(창42:5-6)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년 흉년 끝에 모두가 다 굶주려 죽게 될 때를 대비해서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내 총리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요셉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창45:7-9)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가까이는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어린나이에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하셨지만, 멀리는 요셉의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뭇별처럼 셀 수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15:5)고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번성하게 하셨다가 애굽에서 큰 재물을 가지고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내 총리가 되게 하시고 흉년이 들게 하여 야곱의 가족들 모두를 ‘번성케 하시는 요람’과도 같은 애굽 고센 땅으로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들이 당시 70명이었습니다. 

(창46: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이 70명의 야곱의 자손들이 400년만에 애굽에서 나올 때 200만명이 넘는 백성으로 번성했고 약속하신대로 ‘큰 재물’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출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다 이루시기 위해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그를 일찍부터 단련하고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 단숨에 총리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7세 어린 나이에 애굽 경호대장 보디발 가정 노예생활로 단련받게 됩니다. 요셉이 경호대장 보디발 가정에서 종살이 할 때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알게 된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자기 소유를 모두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이때에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해’ 보디발 가정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창39:2-5)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을 위해’,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요셉에 주신 꿈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보디발 가정에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가정에서 형통하게 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용모에 반해 집요하게 유혹합니다.

(창39:6-7)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청년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이렇게 뿌리칩니다.

(창39:7-10)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는 말은 그 여인의 근처에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디발 아내는 기회를 틈타 요셉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할 수없이 옷이 벗긴 채로 그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존심 상한 보디발 아내는 요셉이 벗어둔 옷을 마치 자신을 강간하려다 발각되어 도망한 것처럼 꾸며 경호대장 남편에게 고소합니다. 

이 사건으로 요셉은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여” 투옥되었습니다. 이때는 요셉의 나이 약 27세 가량으로 애굽으로 팔려온 지 10년쯤 된 때입니다.(37:2;41:1,46) 어느 때까지 감옥에 갇히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가 가까이 다가와 요셉의 믿음을 순도높은 순금처럼 단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에 보내신 것은 그곳에서 더욱 더 그의 믿음을 단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 만나게 된 사람들 가운데는 애굽 왕궁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왕실의 모든 음료의 무해여부를 확인하고 감독하는 직책이고, ‘떡 맡은 관원장’은 왕의 모든 음식을 감독하는 직책입니다. 이 두 직책은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궁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왕을 시중드는 일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왕의 자문, 국정을 논의할 수 있는 대상자들로 오늘날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실장 정도의 고관입니다. 

이들이 어떠한 연유로인지 요셉이 갇힌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요셉이 이들 두 관원들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사흘만에 전직(前職)이 회복되리라는 것이고,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은 사흘만에 교수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꿈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권되어 왕궁으로 갔고, 떡 맡은 관원장은 처형되었습니다. 요셉은 이 꿈들을 해석해주면서 술 맡은 관원장에서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 사실을 말하며 복권되거든 석방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창40:14-15)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복권되고서도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창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이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요셉을 단련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두 관원장에게 꿈을 꾸게 하여서 요셉을 만나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을 단련하시고자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후 3년이 되어 요셉의 나이 3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십니다. 바로 왕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갈밭에서 풀을 뜯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소들과 함께 강가에 섭니다. 그 흉측하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들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바로는 잠에서 깨어났다가 금새 다시 잠들어서,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삭 일곱 개가 보입니다. 토실토실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가 나오는데, 그것들은 모두 한 줄기에서 나와서 자란 것들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이삭 일곱 개가 피어 나오는데, 열풍이 불어서, 야위고 마른 것들입니다. 그 야윈 이삭이, 토실토실하게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를 삼킵니다.’ 

바로가 깨어나 마음이 뒤숭숭하여, 박사들을 모두 불러들였지만 그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왕에게 말합니다. ‘내가 오늘 비로소 내 잘못을 기억합니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함께 있었던 히브리 청년 하나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감옥에 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해몽한 청년이 바로 히브리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해몽한대로 제가 복직되어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왕이 당장 요셉을 감옥에서 석방하여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바로 왕 앞에 선 요셉이 말합니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왕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왕께서 두 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왕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말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꿈이 다 같은 내용입니다. 뒤따라 나온 야위고 흉측한 암소 일곱 마리나, 열풍에 말라 버린 쓸모 없는 이삭 일곱 개도, 역시 일곱 해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흉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 일곱 해 동안에는, 온 애굽 땅에 큰 풍년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 땅에 언제 풍년이 있었더냐는 듯이,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근이 이 땅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풍년이 든 다음에 오는 흉년은 너무나도 심해서, 애굽 땅에서는, 아무도 그 전에 풍년이 든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왕께서는,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책임자로 세우셔서,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왕께서는 전국에 관리들을 임명하셔서, 풍년이 계속되는 일곱 해 동안에, 애굽 땅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해마다 받아들이도록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앞으로 올 풍년에, 그 관리들은 온갖 먹을거리를 거두어들이고, 왕의 권한 아래, 각 성읍에 곡식을 갈무리하도록 하십시오. 이 먹을거리는, 애굽 땅에서 일곱 해 동안 이어갈 흉년에 대비해서, 그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갈무리해 두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기근이 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막힐 정도로 정확하고 분명한 해몽과 그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바로 왕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 며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하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는데,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 네가 이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라. 나의 모든 백성은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 며 그 자리에서 옥새 반지를 요셉에게 끼워 온 애굽 땅을 다스리는 총리로 세웠습니다. 이 때 요셉의 나이 30살이었습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지 13년만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요셉을 애굽 경호대장 보디발 가정 노예로 팔려가게 하신 분, 그리고 그곳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를 감옥에 가게 하신 분, 그 감옥에서 바로 왕의 비서실장의 꿈을 해몽하게 하신 분, 이제 바로 왕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해석하도록 요셉을 애굽 왕궁으로 불러들이신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이 모든 요셉의 파란만장했던 믿음의 여정(旅程) 배후에는 요셉의 믿음을 정금보다 더 귀하게 단련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요셉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이 어린나이에 노예로 팔려갈 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을 때 ‘자신의 가는 길’이 어렸을 때 꾸었던 꿈과는 멀어보여도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단련하여 그 꿈을 이루어 축복하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욥의 고백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성도 여러분을 단련하십니다.” 하나님의 단련하시는 말씀 앞에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되어 성도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이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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