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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 (고후 7: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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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 (고후 7:9-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영국 옥스퍼드 의과대학 연구팀은 어린아이와 어른의 웃음에 대해 연구 중에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는 하루에 400∼500번을 웃는데, 장년이 되면 이 웃음은 하루 15∼20번으로 감소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기쁨과 웃음 속에서 태어나고 점점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며 끝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기쁨 속에 잘 웃던 사람이 삶을 살아가며 기쁨을 상실한 채 웃음을 잃어가는 이유는 삶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고민하고 염려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고민과 염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J. 젤린스킨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원서의 이름은 ‘Don't Hurry, Be Happy’  입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중에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 데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는 ‘고민’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심령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얼굴빛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고민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각종질환을 유발시켜 육신을 상하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이 고민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고민은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많은 신앙인들은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삶은 고민이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고민을 죄악시하기까지 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고민을 백해무익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 고민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실상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 고민할 줄 모르는 인간을 만들어 가는데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의 삶은 고민하는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고민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칼 바르트’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민이 없다면 우리의 입술에 노래도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성서본문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고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하여 이루어진 고린도 교회에 거짓교사가 침투해서 거짓 진리를 가르치고, 또 그들이 만든 선동자들이 나타나 교회를 분열시키고 병들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을 시비하는 무리까지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분노하여 고린도 교회에 심하게 책망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자신의 책망을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받아드릴까 염려하며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책망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가치 있는 고민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고민하게 됨으로 처음의 믿음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의 고민하는 역사는 가치 있는 것임을 말씀하게 된 것입니다. 
  
고민은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고민은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을 하게 하겠습니까? 

먼저, 고민의 양면성을 깨달아야 

가치 있는 고민이 되려면 고민의 양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고민의 양면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고민’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입니다. 
‘세상고민’은 무익하고 해로운 고민으로 사망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고민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고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6:31)
  
먹고 마시고 입기 위해 하는 고민은 끝이 나지 않는 고민입니다. ‘세상고민’은 자신에 대한 염려, 원망, 욕망 그리고 불만으로서의 고민이며, 때로는 자신을 은폐하며 변명하고자 하는 고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원어적으로 볼 때 ‘하나님에 의한 고민’이란 뜻입니다. 모펱(Moffet)은 바로 이 고민을 가리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통’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고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으로 주시는 이 고민은 우리에게 유익한 고민이고,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는 것이며, 또한 후회 없는 구원의 삶을 만들어 주는 가치 있는 고민입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달밤에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름다움에 반했습니다. 밧세바를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왕의 힘으로 그녀와 동침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밧세바는 임신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로 인하여 또 다른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꾀를 내어 최전방 전투에 임하고 있는 우리야에게 휴가를 주어 밧세바와 동침케 하였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더 큰 고민 가운데 빠졌습니다. 결국 다윗은 우리야를 최전선으로 보내 화살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으려는 고민, 차지하려는 고민, 범죄한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고민, 우리야를 죽이려는 고민 등 이러한 다윗의 고민들이 바로 ‘세상고민’입니다. 이것은 사망을 이루는 고민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그의 죄악을 지적하며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야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를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삼하12:9-13)
  
다윗은 나단이 선포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또 다른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직면하여 자신의 죄악과 허물에 대해 더욱 더 괴로워하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극심한 고민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그의 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6:6)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1-3)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51:10-1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다윗의 고민은 그로 하여금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구원의 삶을 찾도록 했습니다. 이 고민은 다윗에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통과 번민, 부끄러움의 감정에서 자유를 얻게 해 주었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고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민의 양면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어떠한 고민입니까? 세상 고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의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예수님은 우리에게󰡐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민하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입니다. 우리는 고민의 양면성을 깨닫고, 세상 고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이런 고민의 고통이 왜 내게 있을까󰡑라고 원망하며 고민하기보다는󰡐나는 왜 그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가?’ 그리고󰡐나는 왜 이 고통에서 깨닫고 찾아야 할 것을 바로 찾지 못하는가󰡑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할까󰡑라고 고민하기보다는,󰡐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한 그곳에서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해하지 못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다고 고민하기보다는 믿음의 길이 최고이며 기쁨의 것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향하여󰡐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하고 미워하며 고민하기보다는󰡐왜 나는 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왜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왜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을까?󰡑라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모욕과 무시를 당해야 하나?󰡑라고 고민하기보다,󰡐왜 나는 이런 모욕과 무시에 예민해야만 하는가?’,󰡐왜 이런 일로 이렇게 민감하고 불쾌해 해야 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자랑할 수 없어서, 높아질 수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서 고민하지 말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결과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원인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의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입니다.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루시고 처리하시도록
  
고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루시고 처리하시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고 그들에 대한 고민을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바울의 고민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회개와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바울의 고민을 하나님께서 다루시고 처리하셨습니다. 바울의 책망을 듣고 고린도 교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고민은 그들의 죄악 된 모습을 바로 잡도록 했습니다. 바울의 책망에 대해 반항하지 않고 겸손하게 했습니다. 자신들을 깨끗이 했습니다. 거짓 가르침을 따라가며 죄악 가운데 있는 형제들에 대해 분노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이 비난했던 바울을 다시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데 더욱 열심을 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세상적인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루시고 처리하시는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위하여 고민을 기도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 26:37,38).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셨고,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임을 확신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예수님의 고민의 내용이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것이 될 때에 그 고민은 인류구원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송사리 잠자리 개미 등 셋이 함께 모여 놀고 있었습니다. 송사리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는 수영을 잘하는데 행여 내가 수영하기에 강물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잠자리와 개미가 대꾸했습니다.
"얘, 네가 수영하기에 강물은 항상 충분해!" 이어 잠자리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내가 날기에는 하늘이 너무 좁을 것 같아." 다른 두 마리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함께 소리쳤습니다.
"얘, 네가 날기에 하늘은 충분히 넓어!" 개미도 자기의 걱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나도 걱정이 있어. 나는 흙으로 집을 짓고 사는데 내가 집을 짓기에 흙이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
"얘, 네가 짓고 살기에는 땅이 충분해!"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도 이와 같지는 않을까요?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민 히는 모든 문제를 처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고민을󰡐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그 고민을󰡐하나님의 처리󰡑에 맡기고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루어지도록 하십시다. 성령께서 고민 가운데 일하시도록 하십시다. 우리 고민의 내용가운데 예수님의 은혜가 있게 하십시다. 우리의 모든 고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되게 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 되게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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