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연약한교회 (삿 6:11-15)

  • 잡초 잡초
  • 287
  • 0

첨부 1


연약한교회 (삿 6:11-15)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삿6;11-15)

모든 운동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없는 사람은 노력을 해도 실력을 높일 수가 없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없으면 애를 써도 성적을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성경도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6,27)
  
그러면 ‘교회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기초’를 다른 말로 하면 ‘본질’이라는 말로 쓸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신학(神學)에서는 교회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세상으로부터(from the World) 불러내어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성장한 후, 다시 세상으로(into the World) 파송되어지는 공동체입니다.  

성도여러분, ‘내 생각에는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하지 말고,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깨닫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교회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교회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서로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 진짜이고, 진실인데, 성경과는 상관없이 사람들끼리 서로 ‘내가 옳다 니가 틀렸다’ 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눈이 다르니 사람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당연히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을 비평학적으로 연구하는 성서신학이 있고, 역사적 연구에 중심을 두는 역사신학, 교회활동의 실천부분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실천신학, 인간의 행위, 덕, 은혜, 법 등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윤리신학,  심지어 영혼과 빈곤의 구제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에서 해방됨으로서 이루어진다는 해방신학,  정통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인간의 주체적인 생각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성경의 해석을 성경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에 두는 자유주의 신학까지 학자들마다 중요하다고 보는 부분이 다르며,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차이가 납니다.  이것이 교회의 차이가 됩니다.  

그리고 아예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참 하나님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단들까지 참 여러 가지의 교회에 대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의 생각을 알고,   성경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세상입니다. 그러면 교회도 물질만능주의, 물량주의, 윤리와 도덕의 자유방임으로 흘러가야 합니까?  교회도 시대에 맞춰서 부자는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요,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라고 말해야 합니까? 만약에 그런 것이 옳다고 한다면... ‘기초’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살율 세계 1,2위가 우리나라입니다. 이혼, 청소년 가출 등이 모두 세계 1,2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교회가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소금으로,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빛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무엇이라는 기초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하면 잘 못 말한 것일까요?  

그러므로 ‘교회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세상으로부터(from the World) 불러내어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성장한 후, 다시 세상으로(into the World) 파송되어지는 공동체’ 라는 ‘기초’를 든든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부름 받은(from the World) 공동체.(=거룩성)

우리는 지금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 말이 ‘교회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 세상으로부터(from the World) 불러내어진 공동체’ 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고, 그 중에 몇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따로 삼으셨는데 셨는데, 그것이 바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무리, 곧 敎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셨고, 선택된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불러 내셨습니다. 여기에서 교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원받은 죄인이 모이는 곳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교회 맞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를 분명히 들으셨나요? 

제가 대학생이었을때, 저의 동기인 한 자매가 CCC간사로 자원을 했습니다. 저는 군을 마친 학생이었고, 그 자매는 졸업을 한 후에 간사로서 우리를 지도하였습니다. 그 자매의 고민이 ‘부르심’이었습니다. 취직을 포기하고,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원한 CCC간사의 일이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이 맞느냐, 그냥 자기 혼자만의 선택이냐 이것이 큰 고민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저는 그 자매가 ‘성경 구석 구석에 자기의 이름 석자가 분명히 적혀있더라’ 라고 간증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나요? 성경에 여러분의 이름 석자가 확실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이 불러내신 분들임을 확신하시지요? 여러분이 ‘교회’맞지요?   ‘어 나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라고 고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은 곧 나의 대답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부르시는 소리는 누구나 듣습니다. 금산 땅에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라는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 복음을 듣지만 아무나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 내 마음에 들어오십시요.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이제 부터는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라고 고백 하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문을 여셨지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 들이셨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반응을 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자기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모여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므로 거룩합니다. 건물은 예배당이고 사람이 교회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 (in Christ) 있는 공동체(=그리스도 중심성, 몸)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함으로 세상에서 분리되어 나온 사람이 교회이며, 이 교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안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안에 있습니다. 금산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렇게 지리적인 이유 말고도..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법과 통치 안에 있습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경찰에게 연락을 합니다. 대한민국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대한민국정부에게 불평을 하거나 감사를 표시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대한민국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보호를 받고 있으며, 대한민국 법 아래에서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공동체라는 말은 다음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예수님입니다. 아멘인가요? 정말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맞지요?  만약에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중심이 되지 않고,  돈이나 명예나 다른 어떤 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라면... 그 분은 이미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용하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거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잠시 예수님을 의지했다가 나중에는 버리는 것은 예수님 중심의 삶이 아닙니다. 한번 말씀을 따라 해보십시다. ‘예수님은 내 삶의 중심입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살아갑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멘.’  성도여러분, 지금 지금 예수님 안에 계시지요? 예수님이 생각과 삶의 중심이 맞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교회 맞습니다. 
 
둘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성도여러분, 아무렇게나 사시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그 몸속에 5장 6부 밖에 없거나, 귀신을 속에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2, 27)  이 말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은 교회가 서로 연합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따로 따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몸의 각 부분입니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고전12;14-17) 예수님은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머리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머리 되신 예수님에게 순종을 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하고 성숙되어져가야 하는 한 형제, 한 자매의 공동체입니다. 

  
3. 세상으로 파송되는 공동체(=교회의 사명, Into the World) 

성도여러분,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부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 그 일을 안 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는 교회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 속으로(Into the World) 들어가 세상을 위해 존재 합니다.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요, 흔히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란 세상적인 문제에 등을 돌리고, 세상적인 것은 세상에 맡기고,  오직 기도와 성경 읽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불교입니다.  오직 기도와 성경 읽기에 몰두하며 세상일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영적인 성숙이 아니라  영적으로 미숙하고 메마른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어디로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땅에서 하늘로 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말구유로 오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죄수로 못 박혀 죽으십니다. 예수님이 교회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5;13,14)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란 사회적 문제, 현실의 문제,  이 땅의 죄와 고통의 문제 앞에서 책임을 지는 교회입니다.  이 땅의 여러 가지 문제를 비난만  하거나, 외면해 버리는 것은 참된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땅의 고아원, 양로원, 지역아동센타,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7,80%가 기독교인입니다.  사회의 어둡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그냥 돕는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많은 성도들이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의 최고의 목적은 우리가 매일 외우는 주기도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의 최고의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며, 뜻이 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최고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가장 간절한 기도는 마침내 이 땅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이 더럽다고, 이 땅에 죄가 너무 많다고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은 교회의 본질, 교회의 기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기드온’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의 나라요, 제사장나라입니다.   또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기드온은 ‘이스라엘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우리는 ‘영웅’ 기드온과 선민나라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 6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2절,3절)  선민나라, 제사장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지요? 한마디로 ‘교회’의 꼴이 말이 아니지요?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지은 교회입니다.  죄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핍박을 받아서는, 집에서 살지 못하고, 들에서 거주하지 못하고,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어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光)이 아니라 세상의 밥(食)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여전히 선민나라 맞습니다. 지금 이지경이지만 여전히 제사장나라 맞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입니다.  아멘인가요? 

이 죄 많은 이스라엘이, 교회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삿6;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나라를 구할 영웅을 세우십니다. 그가 바로 ‘사사 기드온’입니다.
  
이제 구국의 영웅,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사인 기드온을 살펴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농사지으셔서 다 아시겠지만 밀을 어디서 타작해야 하는지 묻지 않아도 아시지요.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기드온은 겁 많은 사람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은 다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말은 들은 기드온이 ‘웃기지 마시오’ 합니다.  

①“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드온의 확신입니다. 

②“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영화롭던 과거는 이제 끝났다. 여화와는 우리를 버렸다. 이것이 기드온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화내지 않습니다. ‘이놈아 내가 너희를 버린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를 버린 것이다.’ 하고 따지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③“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이것이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드온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27절)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집에 종이 열 명 이상입니다 이런 집이 극히 약한 집이면 아직 집도 없는 저는 뭡니까?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명을 회피하고, 안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또 말씀하시니  

④“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합니다. 표징을 무척 좋아하는 기드온입니다.  이정도로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 다른 표징을 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표징을 본 기드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가 우리를 버리셨다하던 기드온이 여호와를 만나니 ‘기쁘다. 이젠 살았다.’ 하지 않고 ‘슬프다. 난 이제 죽었다’ 합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기드온을 안심시킵니다.  기드온의 영적인 수준이 가장 밑바닥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도 기드온은 여전히 겁이 많고 두려움에 떠는 찌질이 입니다. 이런 겁쟁이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바알과 아세라 단을 칠 때에도 밤에 몰래 합니다.  

⑥“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27절)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서 300용사를 모았습니다. 이때 또 기드온이 하나님에게 말합니다.  

⑦“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 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36,37절)  이상한 기도, 말도 안 되는 기도이지요? 전쟁에 안 나가려고 별 억지스러운 기도를 다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분명히 기드온과 함께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양털에만 물이 있고 사면 땅은 말랐습니다.  기드온이 또 기도합니다.  

⑧“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⑧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삿6;39)  

성도여러분 ‘이번만’이 아닙니다. 여덟 번 째 입니다.  7번을 하나님을 만나고, 음성을 듣고 기적을 체험해도 기드온은 마음이 안 놓이고, 믿음이 안 생깁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의 기도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쟁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전쟁 전날저녁입니다.  기드온이 또 두려움에 쌓여있습니다. 

하나님께서 9번 째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왜 부하인 부라와 함께 가느냐? 혼자서는 겁이 나서 못가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몰래 숨어서 가보니 적군 2명이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같이 가서 적이 꾼 꿈과 적병이 하는 해석을 듣습니다. 그제서야 안심을 합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적군의 꿈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적군의 생각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서 겨우 안심을 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 본문 성경을 보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기드온이 겁쟁이고, 비겁하며, 소심하다고 생각하시지요? 못난이, 반푼이, 찌질이.. 이런 생각을 하시지요?  하지만 우리는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 이런 사람을 성경의 영웅으로 만드시고, 이런 사람을 나라를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죄많은 이스라엘에게, 못난 기드온에게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상에서 불러내시고, 교회의 중심이 되시고, 다시 세상을 빛으로 소금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여러분,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성장하고 발전하여,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기초요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고,  반드시 하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교회로 부르셨다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을 영원히 간직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느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아멘.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