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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달려갈 길을 잘 마치고 (딤후 4:6-8) -故 옥한흠 원로목사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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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옥한흠 원로목사 천국환송예배

날짜: 2010년 9월 5일
본문: 디모데후서 4:6~8
설교: 오정현 목사
제목: 나의 달려갈 길을 잘 마치고

가능한 한 감정을 절제하고 6부 예배까지 설교하겠다. 찬양을 하는데 옥 목사님의 사역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서 눈물이 났다. 죄송하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들의 삶이 평가받기를 바라는가.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갔을 때 감동을 받았던 어떤 선교사님의 묘비를 기억한다. 루비 켄드릭이라는 의료선교사였다. 그의 묘비에는 ‘내게 천 번의 생명 있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고 기록돼 있다. 그는 조선에 와서 1년 만에 순교했다. 죽기 전 그는 고향 텍사스 청년 단원들에게 ‘꼭 조선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그의 순교 이후에 20여명이 이 은둔의 나라 조선으로 달려와 제2의 루비 켄드릭이 됐다. 그가 남긴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옥 목사님과의 지난 30년이 넘는 인격적 관계를 생각해본다. 옥 목사님은 사역의 한결같음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25년을 사역하시고 은퇴하시기까지 목회라는 지극히 큰 난관을 넘으시면서도 올곧은 제자훈련의 정도를 고수하셨다. 물론 모든 사역자들이 다 교회를 사랑하지만 그는 특별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신지 일주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눴다. 목사님께서 ‘교회에 감사해요. 사랑해요’라고 하셨다. 어쩌면 목사님의 마지막 표현일지 모른다. 의사들은 의학적으로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지만 목사님은 25일 동안을 버티셨다. 바로 떠나시면 우리가 너무나도 황망하고 어려워할까봐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25일을 견디셨다. 떠나시기 전까지 우리를 성령 안에서 하나로 묶으시는 거룩한 희생제물이 되셨다. 우리를 끝가지, 교회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바울 사도는 이 영광스런 본문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인생을 끝까지 잘 달려가는 축복을 받기 원한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 인물들 가운데 한 인물의 전 생애를 다 알 수 있는 명단은 약 100명 정도다. 그리고 그 100명 가운데 끝까지 잘 달려간 사람은 3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중간에 믿음이 파선되고 도덕적 스캔들이 일어나, 처음에는 잘 시작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어려워지고 그래서 끝이 좋지 않았다. 사람이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리고 귀한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달리는 삶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많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들었다고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뜻이 이 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잘 달리려면 6절에 나오는 것처럼 관제와 같이 부어지는 삶이 돼야 한다. 썩어서 없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달아서 없어지는 인생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촛불같이 없어지는 인생을 말한다. 옥 목사님은 관제와 같은 삶을 사셨다. 제자훈련과 말씀사역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말씀을 준비하시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 그야말로 말씀사역에 올인하셨다. 그 십자가를 묵묵히 짊어지셨다.

옥 목사님께서 과거 젊은이 사역을 하셨을 때 그의 사택이 남산 밑에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들과 한 번도 남산에 오르지 못하셨다. 옥 목사님은 그가 전한 말씀과 실제와의 간극을 좁히려고 온 힘과 진액을 쏟으셨다.

이처럼 관제와 같은 삶을 위해 우리에겐 통찰력이 필요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녹아지려면 인생에 대한 시각과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떠남을 아는 것이다. 이 떠남이라는 단어에는 특별히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배가 수많은 파도와 난관을 헤치고 이제 안식의 항구로 떠난다는 의미가 그 첫 번째다. 쉴만한 항구. 안정되고 파도가 없는 그곳으로 출발한다는 의미다. 인생의 거친 파도를 다 겪고 난 다음 안식의 항구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군대가 오랫동안 들판에서 싸우다가 그 야영했던 텐트를 다 정리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영적인 떠남을 말한다. 인생은 참으로 어떤 면에서 수많은 전쟁과 같다. 그 전쟁이 이제는 다 그치고 병사들이 고향을 향해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인생의 큰 짐을 벗어놓는다는 의미다. 삶의 큰 짐을 벗어놓는다는 것이다.

어려움과 고통을 주는 게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아니다. 그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게 하나님의 뜻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런 파도와 전쟁, 그리고 큰 짐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주님과 함께 할 때 얻게 되는 안식 때문이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제와 같은 이러한 삶을 허락하시고 요구하시겠나. 우리 삶에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고생했던 삶의 전투를 다 끝내고 안식의 항구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떠남의 의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것으로 채워주신다. 그걸 믿고 우리의 삶을 걷길 바란다.

또한 우리가 잘 달리려면 믿음의 선한 싸움이 필요하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다. 여기서 선한 싸움은 그냥 싸움이 아니다. A good fight가 아니고 The good fight다. 그냥 싸움이 아니다. 바로 ‘그’ 선한 싸움. 이 세상 모든 싸움은 악한 싸움이고 쟁취의 싸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싸움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싸우는 싸움이다. 그 선한 싸움은 특별히 마귀와의 영적 전투를 의미한다. 죄의 본성과의 싸움이다. 세상은 자기 본성에 따라 살라고 하지만 우리는 죄의 본성과 싸워야한다. 죄의 유혹과 싸워야한다. 우리는 본능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 임하는 영적 군사들이다. 그래서 The good fight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우리를 잘 달리게 한다. 의의면류관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믿음이 캄캄한 로마 감옥을 밝게 비추는 것을 본다. 바로 그 선한 싸움을 싸우는 바울에게 의의면류관이 예비돼 있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적당히 살면 그건 의가 아니다. 바로 그 선한 싸움을 위해 절제하고 주님께 의탁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 그것이 곧 의의면류관이다. 그리고 이 면류관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돼 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의의면류관이 주어지길 원한다. 옥 목사님께서 병실에 들어가시기 전 7월 초 이틀 동안 목사님을 뵌 적이 있다. 그 때 목사님은 몸이 힘들어 기도 하고 말씀 읽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게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래서 기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옥 목사님께서 일어나시더니 내게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셨다. 평소 안수기도를 잘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 때 그 말씀이 너무 특별해서 메모를 해두었다. 그 때 목사님은 “하나님 아버지 목회라는 이 사역은 너무나 험준한 과정인데 주의 종이 이것을 잘 감당해서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해주셨다.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게 어떻게 나만을 위한 기도겠나. 전 성도들을 위한 목사님의 간절한 심정이다.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 전 이런 기도문을 저와 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들을 위해 남기셨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나의 한 생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을 그어놓은 법대로 그 길을 달려 가, 마지막까지 시종일관하는 삶이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한 번 드린 나의 마음, 그 마음 한 번도 후회하는 일 없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되길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면 나의 이 생명도 나의 이 건강도 나의 이 시간도 바칠 수 있는 준비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생을 선한 싸움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바울처럼 말할 수 있게 하소서. 그래서 나의 인생이 마치 관제와 같이 부어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주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육체적 죽음이 제게 영원한 힘을 주며 자유함을 주고 나그네의 삶을 끝나게 하여 하나님나라를 체험하는 영원한 축복을 주옵소서. 죽음 앞에서 비극적인 삶이 되게 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서 말한 마디 못하는 부끄러운 자가 되게 하지 마소서.” (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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