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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뜻대로 마옵시고 (눅 22: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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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마옵시고 (눅 22:39~42)


사랑의교회를 세우신 옥한흠 목사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님의 한분입니다. 초대형교회의 목사님이시면서도 교회갱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그런데 72세의 나이에 떠나셨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요즈음은 90세까지 사는 것이 보통인데 너무 일찍 떠나셨습니다. 저는 옥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신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 하실 일이 너무 많은데 한참 일할 나이에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25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으신 후에는 “이제 이 세상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더 이상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건 하나님께 염치없는 일이다”라고 하셨답니다. 살려달라는 기도는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염치없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옥목사님께 한 수 배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염치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오래 사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33년만 살았습니다.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옥목사님도 72년을 휼륭하게 사셨기 때문에 더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옥목사님은 염치없다는 말을 통해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황당에서 비는 것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어느 바위 앞에서 기도를 했더니 아들을 낳았다면 그 바위앞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효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효험이 없으면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런 식으로 성황당 찾아다니듯이 교회를 찾아다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우리 조선족 동포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반드시 들어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에 처했을 때에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런 사례를 얼마든지 봅니다. 하나님은 또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신유의 기적은 지금도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신앙이 약해질 것 같으면 신유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믿는 형제들에게만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기적을 보이신다면 그때는 난리가 나겠지요. 우선 의사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기도만 하면 전부 병이 나을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인간역사가 다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 믿는 형제들이 불어나기를 원하시지만 동시에 지금 이 세상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지만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실 수는 없습니다. 대학입시를 보는데 5대1 경쟁이면 5명 중에 4명은 떨어져야 하는데 입시생이 전부 기도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모든 기도를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시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들어주시기도 하고 또 당장은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다만 우리가 기도할 때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뜻대로만 기도하면 안 됩니다. 대학입시를 보면서 공부는 안 하고 기도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셔도 안 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해야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해 주시면 우리는 사람구실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또 예수 믿는다고 해서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뿐이지요. 그래서 기도는 어려움을 피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와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행위입니다.

나는 미국에 유학하고 돌아와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 원장이 되었는데 후배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켜서 그 직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원장직에서 쫓겨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때 쫓겨나기 정말 잘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을 새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 담임목사가 서경석 목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알지요? 그 이유는 제가 경실련사무총장을 할 때 너무 많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쫓겨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원장자리에 집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내 바라는 것만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르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나를 비난하고 나를 내쫓은 후배들을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함께 어울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후배들이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심산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도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내 일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은 그때 나를 내쫓은 후배들을 내가 찾아가서 화해하지 못한 일입니다. 만일 내가 그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기도를 드렸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지혜를 내게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아마도 한국교회는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요즈음 한상렬 목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한상렬 목사에 대해 나는 맹비난을 했고 같이 목사인 것이 부끄럽다는 극언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한상렬목사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목사에게 면회를 가서 한목사와 진실된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한목사는 절대로 설득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도할수록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마음속 울림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난날의 나의 부족함을 면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드려야 하는 이유는 기도가 잘 응답받지 못해서 둘러대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정말로 좋은 길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그 때는 우리에게 너무도 큰 시련일 수 있지만 시련을 주시는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중위로 있을 때 저는 민청학련사건으로 감옥을 갔습니다. 이 때문에 나의 청운의 꿈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때에는 감옥가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지요.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감옥을 간 것이 너무도 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교회 이진우군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 좋은 대학을 다니다가 신장이 망가져서 투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우가 겪어온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번에 신장이식수술을 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랬동안 절망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앞으로 진우군에게 큰 하나님의 은총이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진우군의 삶은 다른 평범한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통성기도를 많이 합니다. 통성기도는 무엇을 공동으로 간구하거나 결단할 때 하는 기도형식입니다. 그런데 저는 통성기도를 잘 못합니다. 통성기도는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명상기도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끝없이 대화하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생활화를 통해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서경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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