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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한 기대와 소망 (빌 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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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와 소망 (빌 1:19-21)


조엘 오스틴(Joel S. H. Osteen)의 저서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40대 후반의 브라이언은 세상이 무너지고 무거운 짐이 짓누르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사업이 부도났고, 가정이 깨어졌으며, 건강도 매우 나빠졌습니다. 그에게는 기쁨도, 평안도, 열정도 없었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믿음의 친구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친구야, 부정적인 곳에서 눈을 돌리게나. 잃어버린 것을 보지  말고 남은 것을 보게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믿게. 자네는 그런 복을 받을 만하다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세." 친구의 말을 들은 브라이언은 친구의 말을 적용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감사한 이유를 10개씩 쓰고 틈만 나면 그것을 묵상했습니다. 몇 달 동안 이 습관이 계속되는 동안 그의 부정적인 습관은 깨져나가기 시작했고, 믿음의 태도가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 되지 않아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도 다시 시작했고, 끊어졌던 관계도 회복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찼고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그를 움직였습니다. 결국 기쁨이 넘치는 최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스틴은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습니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만을 맴돌 뿐입니다. 세속적 소원도 간절하면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대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자신에게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기대는 영어로 Expecting이고 소망은 Hoping입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현재가 받침 되는 않는 소망과 기대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대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출발하는 바램을 말하는 것이라면, 소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바라보는 미래적 표현입니다. 여기의 간절하다는 말은 온전히 사로잡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 역시 기대와 소망을 가지되 나를 사로잡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적당한 기대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자신을 살피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입니까? 본서를 통해 옥중에 갇혀있는 바울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하며 권면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매임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피력하였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라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끄럽지 아니하노라 

'그렇지만 주님' 이라는 제목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 말하라고 하신 그대로 말을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장사할 때만은 예외로 봐 주십시오.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겠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만큼은 매 주일 가라고 하시지 마십시오. 주님이 바치라고 하시는 대로 바치겠습니다. 그렇지만 체면 유지 정도로 조정해 주십시오. 주님이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렇지만 짐꾼을 사서 대신 지게 해도 되겠지요?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시는 대로 사랑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하라고 말씀하지 마시고 내일로 미루어 주십시오." 부끄러운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항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누구 앞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아니한 존재가 되는 것을 소망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고 흠모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훌륭한 사람처럼 보이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바울 역시 완벽한 인격을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며 옛사람 때문에 수없이 갈등하고 괴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허물 많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은 복음과 그것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함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어도 부끄럽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함이 자신의 기대와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처럼 하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여가생활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여한 직분과 사역은 부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은 우리의 본업입니다. 그 사역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직장도 주시고 건강도 주신 것입니다. 본업과 부업이 바뀌면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시간 나면 하는 일, 형편이 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며 잘 먹고 잘 살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맡은 사명과 사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부여된 거룩한 사명입니다. 그 사명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날 결산할 때 부끄러운 일 당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우리의 기대와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온전히 담대하노라 

1521년 4월 17일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찰스 5세 앞에 섰습니다. 찰스는 눈을 부라리며 루터에게 호령을 하였습니다. "네가 쓴 모든 책을 너의 손으로 불살라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불사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루터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너의 책은 교황을 무시하고 교황을 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겠나? 대답을 해라!" 그 때야 루터는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답할 수 있도록 하루 동안의 시간을 주십시오.좋다. 꼭 하루 동안이다. 내일 이 시간에 대답을 해라." 루터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였습니다. 루터는 새벽에 확신을 얻었습니다. 루터는 시를 썼습니다. 535장 찬송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곡을 붙여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챨스 5세 앞에 섰습니다. "나는 내 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성경으로서 나의 책이 잘못된 것을 증명해 주기 전에는 나는 나의 책을 불사를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루터의 이 담대한 대답을 막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를 시인하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데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과 사명에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셨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담대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 지고, 의심과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핍박과 조롱과 장애물과 고난도 물러가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의 기대와 소망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맞추어져 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해 그리스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이라 고백합니다. 바울은 누구에게나 담대했습니다. 옥중에서도 담대하여 찬송과 기도를 하며 전도하였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용기가 없어 주님을 기쁘시게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일을 잘 지켜야 되는 줄은 아는데 유혹을 물리칠 용기가 없어 문제입니다.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용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도해야 하는데 입을 여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온전히 담대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온전히 담대한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리스도가 사노라 

공장을 운영하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년간 해마다 적자운영을 했습니다. 어느 날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내 사업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제부터는 내 사업장 곳곳에 예수님이 나타나게 해보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집사님은 매 주일 담임목사의 설교를 잘 노트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사원들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먼저 큰 은혜를 받게 되었고, 사원들의 분위기도 좋아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수년 동안 적자를 보던 공장이 그때부터 흑자를 내는 공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 예수가 나타나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가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업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언제나 내가 드러나니까 문제가 됩니다. 바울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 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심을 언제나 확인하며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낮아지고 죽는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고 알려지면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내 안에 사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모든 것의 주인은 예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맡겨준 일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 행복을 누리는 것이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30대에 백만장자가 된 미국의 폴 마이어(Paul J. Meyer)가 자기회사 사원들에게 권면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글로 쓰세요. 그리고 강한 소원을 가지고 매일 매일 눈으로 보시면서 이것은 꼭 이루어진다고 마음에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시오." 그 결과 그의 말대로 실천한 사람들의 90%가 소원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소원도 이루어지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랴! 하나님은 빌립보서 2장13절을 통해 약속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심어 주시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일하십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영적 기대와 소망을 가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입니까? 의, 식, 주의 세속적 소원이 아니라 모름지기 바울과 같은 영적인 기대와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변함 없이 주님을 사랑하여 무슨 일에나 부끄럽지 않기를 원합니다. 항상 담대하게 살기 원합니다. 사나 죽으나 내 안의 주님만 높이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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