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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로 멸망의 교훈 : 부요할 때 주의하라 (겔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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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 멸망의 교훈 : 부요할 때 주의하라 (겔 26:1-6) 

  
에스겔서 25장부터 32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변 국가들은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입니다. 에스겔 26-28장은 두로에 관한 예언입니다. 두로는 나라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Tyre’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와 이름이 같습니다. 지리적으로는 큰 나라가 아니지만, 영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3개의 장이나 할당한 것입니다. 

에스겔 26장은 두로의 죄는 무엇이며, 두로에 임한 심판은 무엇인지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 27장은 아름다운 두로가 멸망한 것을 슬퍼하는 애가입니다. 에스겔 28장은 독특한 장으로써 두로 왕의 교만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이 두로 왕의 교만이 사단의 기원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독특한 장입니다. 제가 이미 이사야 23장에서 두로에 관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역 예배에 참석하신 분은 아실 것이고, 빠지신 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두로가 멸망한 이유는 세 가지 심(心)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이기심, 교만입니다. 오늘은 다른 측면에서 두로는 왜 망했으며, 멸망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라는 한 나라이지만, 중앙 집권력이 약하여 두로와 시돈이 독립 국가처럼 활동했습니다. 시돈이 먼저 건설되었고, 두로가 나중에 건설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로가 돈도 더 벌고, 권력도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로가 시돈보다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Ⅰ. 두로의 지형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는 두로라고 하는 도시는 B. C. 1200년에 건설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역사가인 헤로도토스(Herodotos)는 두로가 B. C. 2700년에 건설되었다고 말했습니다. 1500년의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두로라고 하는 도시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는 것입니다. 지중해 연안에 건설되었고, 예루살렘으로부터 160km 떨어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대전의 거리입니다. 두로는 한 개의 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두 개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바다 가운데 있는 도시이며, 또 하나는 육지에 붙어 있는 도시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다 가운데 있는 것은 섬도시를 말하는 것이고, 본문 6절에는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라고 했습니다. NIV 성경에는 ‘settlements on the mainland(들에 있는)’입니다. 육지의 정착지라는 말입니다. 육지에 정착해 있는 주민이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다 가운데 땅이 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섬입니다. 두로는 원래 섬나라입니다. 그런데 섬이라고 해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고 육지에서 0.8km 떨어진 바위섬입니다. 그 바위섬에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도시가 건설된 것입니다. 배가 없던 그 당시에 얼마나 안전한 도시이겠습니까? 그리고 육지에도 건설되었습니다. 45m 정도의 높은 성을 쌓아 견고한 성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수아 19장 20절입니다.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fortified city of Tyre)” 두로는 이렇게 이중의 도시입니다. 육지의 도시(mainland city)와 섬도시(island city)입니다. 두 개가 합하여 두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당시에 두로의 인구는 10만 명이었습니다. 육지 도시에 6만 명, 섬 도시에 4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두로는 어떤 일을 하며 먹고 살았습니까? 지중해 연안의 해상 무역을 장악했습니다. 무역도시였습니다.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홍콩과 비슷합니다. 두로의 무역이 얼마나 왕성했는지 다시스까지 배를 타고 갔습니다. 아프리카 북부까지 갔습니다. 로마 다음으로 번영했던 도시가 카르타고인데 이 도시를 처음으로 세운 사람들이 두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태리까지 이릅니다. 무역하는 상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노예장사도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다가 비싼 값에 팝니다. 애굽에서 쌀을 사다가 비싸게 팝니다. 에스겔 27장을 보면 두로의 해상 무역이 지역적으로 광범위했고, 품목도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Ⅱ. 두로의 역사 

두로의 역사를 보면 특기할 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두로가 이스라엘을 도울 때는 번창하였고, 이스라엘을 헤칠 때는 쇠퇴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중요한 요인이 있기 때문에 두로는 작은 나라이지만, 성경에 세 장씩이나 기록된 것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있었습니다. 히람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다윗과 솔로몬을 많이 도와주었던 두로의 왕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즉위한 때가 B. C. 1010년입니다. 솔로몬은 B. C. 970년에 왕이 되었습니다. 두로 왕은 히람이었습니다. 히람 왕이 통치할 때에 다윗 왕이 집을 짓는다고 하면 레바논의 백향목과 목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왕이 되자 히람 왕이 축하 사절도 보내 주고,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특별히 성전을 지을 때 중요한 사람은 놋기술자였는데 히람이 놋기술자도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열왕기상 5장,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두로 왕 히람이 도와줄 때에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에스겔 27장 4절입니다.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도다” 흠이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섬과 도시를 잇는 다리도 만들었습니다. 성경에는 아름다움의 온전함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두로 왕이 솔로몬과 다윗을 도와줄 때에는 황금기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히람 왕이 죽은 후, 그 아들들의 반역으로 왕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B. C. 9세기 중반에 아주 악한 왕이 나왔습니다. 악한 왕들 이름에는 꼭 바알이 들어갑니다. 그는 엣바알이라는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엣바알은 바알의 제사장이었는데 왕을 죽이고 왕이 된 것입니다. 엣바알은 유명하지 않고 엣바알의 딸이 유명합니다. 그의 딸은 이세벨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입니다. 이세벨은 바알을 숭배하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아비처럼 야비하고, 탐욕스럽고, 가증스럽고, 우상 숭배하는 아주 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크게 지어놓고, 아세라 신상을 세워놓고, 제사장 400명을 세워 나랏돈으로 월급을 주고, 아합도 바알 신을 위해 제사장 450명을 세워 월급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혼자 나와 850명과 갈멜산에서 싸웠습니다. 바알, 아세라 신들은 아무 소리 하지 않는데,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여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고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갈멜산의 영적인 대결입니다. 두로가 이렇게 나쁜 영향을 줄 때에는 이스라엘과 두로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삼 년 반 동안 가뭄으로 고생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맷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 피를 개가 핥아 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로는 앗수르에 망하진 않았지만, 앗수르 왕 살만에셀과 산헤립이 계속 쳐들어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두로가 결정적으로 망한 것은 본문 1절로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제 십일 년 어느 달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에스겔이 포로가 된 지  십일 년입니다. B. C. 587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B. C. 587년은 유명한 해입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해입니다. 멸망시키자 본문 2절에서 두로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만민의 문(The gate to the nations)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여러 나라로 가는 문이라는 말입니다. 즉 예루살렘이 망하면 두로는 예루살렘을 통과할 때에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두로는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로가 좋아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완전히 망하게 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 같이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160km 떨어진 두로에 달려가 13년 동안 포위했습니다.  이사야 23장 7절에는 두로를 가리켜 ‘고대에 건설된 희랑의 성’이라고 했는데, 희락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26장 13, 14절에서는 두로를 ‘음악의 도시’라고 했는데, 다시는 노랫소리와 수금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두로의 성벽은 훼파되고, 망대는 헐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두로가 건설된 반석은 말간 반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떤 미국 목사님이 설교했는데, 두로를 가리켜 ‘flat Tyre’라고 했습니다. 구멍 난 타이어에 비유해서 설교 제목을 정한 것입니다. 두로는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유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갈 때에 두로도 같이 끌려간 것입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함께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70년 동안 잊힌 세월을 보내리라고 했습니다(사 23장). 

그런데 70년 뒤에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면서 두로 백성도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무역을 재개하여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익을 얻어 하나님께 헌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헌금할 때에는 돈을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낼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두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헌금하게 되었습니까? 

이사야 23장 18절입니다.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두로 같은 이방인이 제사장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헌금을 해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로 생활을 함께하면서 유다 백성에게 영향을 받아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의 고통은 쉽게 잊어버리고, 유다 백성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고 옛날의 이기심, 교만이 돌아왔습니다. 부와 권력이 좀 있다고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대항하다가 B. C. 333년에 육지도시와 섬도시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 해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로의 역사를 왜 말하는 것입니까? 두로가 이스라엘에 잘할 때에는 번창했고, 잘못 할 때에는 망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Ⅲ. 두로의 역사가 주는 교훈 

첫째, 교회를 향해서입니다. 우리의 흥망성쇠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달렸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면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악인이 우리의 운명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불신자를 향해서입니다. 재물과 권력은 좋은 것입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만 가지고 인간은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도리어 두로의 돈과 권력은 멸망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간 이유는 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가 잘 살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두로의 부와 세력은 도리어 따먹기 좋은 사과나무가 되었습니다. 

두로는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헬라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멸망하고, 결국은 부와 권력을 모두 박탈당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망할 때에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공격하고, 해롭게 하여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두로처럼 멸망이 득달같이 다가와도 보호받지 못할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하고, 사람이 멸망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6․25 전쟁을 겪은 세대는 멸망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6․25 전쟁 후에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을 때면 여자들에게 회개의 기도를 하게 합니다. ‘제가 미아리 고개 넘을 때에 너무나 춥고 배고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애가 울 때 애를 전봇대에 비벼서 애를 죽였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누가 그를 정죄하겠습니까? 그만큼 멸망은 고통스럽습니다. 당하는 사람은 피눈물을 흘립니다. 멸망은 결코 겪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가들은 멸망이 오면 자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정치적 원인이 무엇인지,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말하지만, 에스겔 26장은 멸망한 원인은 영적인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즉 두로가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을 좋아하고, 조롱한 것이 죄가 되어서 멸망이 왔다는 영적인 원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편은 불신자를 향한 최선의 권면입니다. 시편 2편 11절로 12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결론 
  
돈과 부요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두로의 이야기가 세 장이나 기록된 이유는 하나님 보다 돈과 번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명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위에 돈이 올라가게 되면 돈 때문에 망하고, 돈 때문에 멸망이 온다는 것을 두로의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3세기에 프란시스칸에 소속된 신학자 보나벤투라(Bonaventura)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이 있는데, 「The life of St. Frances(성 프랜시스의 생애)」입니다. 그 책에 기록된 우화입니다. 

아씨시의 성자인 프랜시스가 초보 수도승과 해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해변을 거니는 중 돈이 빵빵하게 든 큰 지갑을 발견했습니다. 아씨시는 청빈을 주장했기 때문에 그 지갑을 못 본 척 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초보 수도승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기 돈이 가득 들었는데, 왜 그냥 지나갑니까? 다시 돌아가서 갖고 와야 하지 않습니까?” 아씨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갑니다. 초보 수도승은 가난한 사람도 도와줄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사서 먹을 수 있다고 아씨시를 귀찮게 졸라댑니다. 아씨시는 돈 있는 곳으로 가서 초보 수도승에게 그 지갑을 주우라고 합니다. 수도승이 지갑을 여는 순간 그 안에는 독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지갑과 함께 뱀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실이 아니라 우화입니다. 이 우화의 목적은 돈에는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얼마나 잘 삽니까? 하나님의 덕분입니다. 그러나 잘 살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에 마음을 두면 두로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로 20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우리는 있을 때에 잘해야 합니다. 있을 때에 복음을 전하는 일, 하늘에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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