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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비밀 (엡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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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비밀 (엡 3:1-7)


은 인간의 성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인간 성숙의 단계를 이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세 가지 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어린이의 시절은 비밀을 갖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아이들은 “이것은 비밀이에요”하면서 비밀을 다 말해 버립니다. 둘째는 사춘기가 되면서 비밀을 갖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부모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않고 입을 닫습니다. 부모에게는 답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사실 자연스런 인간 성숙의 단계입니다. 비밀을 가지면서 부모를 의존하는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때 부모들은 자녀들의 비밀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일기장 들춰보고 컴퓨터 열어보고, 전화번호 검열하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청년기가 되면서 우리는 비밀을 소중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새로운 단계를 경험합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비밀을 자발적으로 안전하게 나눌 대상 곧 친구나 파트너를 찾습니다. 비밀까지 말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지면서 우리는 진정한 친밀감이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관계가 부부관계가 되겠지요. 벌거벗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그것이 바로 비밀을 나누고 사는 성숙한 부부의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서신서를 통해 바울 사도는 인생의 가장 숭고한 비밀이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복음이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 이것은 세상이 모르고 있는 비밀입니다. 둘째는 복음을 수용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 두 번째 비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본문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수 있으리라” 이 비밀은 바로 교회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교회의 비밀을 자신의 지성의 추구를 통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왜 비밀이며 우린 이 비밀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1.교회가 왜 비밀이란 말입니까?

교회가 무슨 비밀 결사 단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교회 공동체가 비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요?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벽이 교회 안에서만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관계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라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비밀입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견고한 인간관계의 벽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벽이 복음을 통해 교회안에서 무너지는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6절이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성전에도 이방인의 뜰까지만 접근하고 그 이상 나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게 되었고, 함께 천국에 가고, 함께 하늘의 상급을 받아 누리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이전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5절의 증언입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니” 그러나 바야흐로 초대 교회가 이렇게 문을 열어 이방인을 수용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 시작했다면, 오늘의 교회 내에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오늘의 교회 내에서도 좀처럼 이런 벽이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는 여러 행태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린다면 그 말씀에 순종함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난주일 제가 소개한 금산 교회의 케이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산 교회를 개척한 마방주인 금산의 지주 조덕삼씨가 자기 하인 이자익씨를 장로로 받들고 담임 목사로 받들 수 있는 곳,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을 담임 목사로 섬길 수 있는 곳, 금산 교회는 바로 그런 진정한 교회를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화두는 소통입니다. 문명이나 기계의 발달과 함께 인간 ‘소외’(모든 것이 기계화되면서 인간은 더 고독해 지는 현상)의 문제가 발생하자 소통의 도구를 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페이스 북이라든지 혹은 트위터 같은 것입니다. 저도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한번도 소통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피가 통하고, 생각이 나누어지고, 감정의 혈맥이 흐르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교우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것을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이런 소통의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제 교회 내에 있는 벽들로 속히 무너짐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우리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수용하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외로움에 목말라 하는 이웃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나누어도 냉대 받지 않고 치유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소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곳이 교회라고, 교회가 피난처라고, 교회가 병원이라고, 교회가 당신의 영적인 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이 찾고 있는 비밀의 공동체입니다.

2.교회 비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 복음을 받고 전하는 교회 공동체의 일꾼이 된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7절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구원이 은혜인 것처럼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꾼이 된 것도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일꾼 됨을 감사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를 일꾼으로 부르신 부르심 앞에 최선을 다하는 청지기가 될 것을 소망합니다. 이제 이것이 그가 새롭게 인생을 사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엡3:8을 읽겠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보답은 그리스도를 이방인, 곧 예수 없이 예수 모르고 사는 이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과 교회의 비밀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여름 단기 선교의 주제)인 것입니다. 

나는 이 여름 이 복음 전도/선교 사역에 우리 교우들이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준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여름 단기 선교에 국내 78개팀 2,786명, 해외 34개팀 574명, 사회 봉사팀 81개팀 813명, 총 202개 팀 4,173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국내 선교의 장정들을 보면 진도, 대마도, 옥도, 상조도등을 포함하여 미자립 교회들의 건축 후원, 시설개보수, 여름 성경학교, 이미용 봉사, 의료 봉사, 목욕 봉사, 직접 전도등에 참여하고 해외 힌두땅 인도에선 아시랴 야기리 교회당을 완성하고 라오스에서는 로고스 칼리지 기공예배를 드렸는가하면 북한 형제자매 들을 돕기 위한 국수 공장을 완성, 운영하는 일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의미 있는 새로운 시도로 장애 우들과 미자립 교회 목회자 자녀들이 아름다운 동행 지구촌 단기 선교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총 25,897명을 접촉, 13,346명에게 복음을 전해서 3,115명이 결신하는 기적 같은 결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시다. 할렐루야!

그런가하면 이 여름의 말, 특히 금주 주말 우리는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종들의 타계라는 슬픔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한국 교계의 존경받는 어른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저에게 믿음의 큰 형과 같은 분으로 40년을 동역)이 72세로 타계하시고, 그리고 우리 교회 청년부에서 아름다운 사역자로 사랑과 신뢰를 받던 손중욱 전도사님이 38세로 타계하심을 목격하는 슬픈 시간을 지냈습니다. 

두 분은 모두 지난 목요일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치던 아침 거의 같은 시간에 타계하여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손 전도사님의 천국 환송 예배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할 뿐이라고. 인생의 정의를 기억해 달라고 인생은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맡겨주신 시간의 길이”라고. 두 분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한 시대를 성실하게 살고 가셨습니다. 

이제 바톤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그 분을 뜻을 받들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복음의 비밀, 교회의 비밀을 나누는 일에 후회 없이 남은 생애를 드리기로 작정하십니까?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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