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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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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마 20:1-16)


여기의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한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장터는 이 “세상”을, 품꾼은 모든 “성도”를, “청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품꾼들이 포도원의 주인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주인이 장터로 품꾼들을 찾아간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영적인 세계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다. 
범죄 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위하여 일할 일꾼을 부르듯, 하나님의 복음운동, 구원운동, 천국운동을 위하여 일할 일꾼을 많이 찾으신다.  

품꾼은 자신을 산 주인의 명령만을 듣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권이 자신을 산분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품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고전6:19-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들어야 한다.

품꾼은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품꾼이 되는 순간, 그의 권리는 주인에게 이양되는 것이다. 자신을 산 주인에 의해 움직이고,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품꾼에게는 오직 주인에 대해 순종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지와 뜻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롬14:8)
주인은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세상은 시장과 같은 곳이다. “놀고 있다”는 말은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영적실업자들이다. 하나님의 구원운동, 천국운동, 복음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고, 다른 일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는 영적수입이 없는 실업자이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부른 것은 포도원 일하라고 부른 것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포도원인 교회로 부르신 것은 천국의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약속받은 품삯은 각각 달랐다. 아침 일찍 부름 받은 일꾼들에게는 “하루 한 데나리온”이다. 제 3시에 온 사람에게는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고만 약속하였다. 제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는 아예 품삯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그냥 “일하라”고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을 신뢰하고, 포도원에 들어가 열심히 일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 즉 어린 시절에 일꾼으로 부름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시 즉 청년시절에 부름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6시 즉 장년시절에 부름을 받기도 하고, 또는 11시 즉 노년시절에 부름을 받은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몇 시에 부름을 받았는가?

어느 듯 날이 저물어 노동이 끝났다. 주인은 품꾼들을 불러 품삯을 나누어 준다. 저녁시간은 품삯을 계산하는 시간이다. 저녁은 우리 생애의 마지막 죽음의 시간이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다. 요9:4=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 할 수 없느니라.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계산을 할 때가 온다. 일은 이 세상에서 잠간 하지만, 보상은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는 것이다. 

주인이 품꾼들에게 삯을 주면서 “보편적인 지불”을 했다. 어느 시간에 포도원에 들어왔느냐? 하는 문제는 상관하지 않고 다 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한 데나리온은 “구원의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매우 보편적이다. 
일찍 예수를 믿었거나, 나중에 믿었거나,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11시 즉,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은 마지막 시간에라도 부름을 받은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일을 하였다. 그들은 피곤한 줄 몰랐고, 오직 감사와 기쁨 밖에 없었다. 그 포도원의 힘든 일들은 그들이 다 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첫째가 된 것이다. 먼저 되고, 나중 된다는 것은 일의 양이나 시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 즉 정성과, 최선으로 되는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맡겨진 일에 관심 없이 품삯만 계산하고 있었다.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 늦게 온 사람이나, 일찍 온 사람에게 동일한 품삯을 주는 것은 구원이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의미한다.

“구원의 주도권”은 철저히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포도원의 주인이 품꾼을 부를 때, 잘나고 못난 사람 차별하지 않고, 다 부른 것처럼 하나님도 죄 값으로 지옥에 가야 할 우리들을 부르실 때 아무 차별도 하지 않으셨다. (롬3:22, 롬10:12)

우리는 맨 마지막으로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먼저 된 사람이요, 첫째 되는 사람이다.

한 데나리온은 일의 대가가 아니다. 주인의 뜻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라. 내 힘, 내 공로로 구원 얻은 것이라면 무엇이 감사하겠는가? 그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다.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수 없고, 주인이 들여보내주어야만 하는 것처럼,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마22:14, 행13:48)

일한 품꾼들이 다 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지만, 받은 기쁨은 각각 다르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보다 중간에 온 사람과, 맨 나중에 온 사람이 느끼는 기쁨은 더욱 컸을 것이다.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같고, 그들이 얻는 구원은 같다. 그러나 그 구원을 느끼는 기쁨은 구원받는 성도들마다 각각 다른 것이다.
“얼마나 믿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믿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공로를 붙들고 있는 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붙잡을 수가 없다. 

일의 가치는 “얼마동안 일했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했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이 영적인 세계에서 먼저 되고, 나중이 되는 기준이다.


결론.

교회는 신령한 일터이다. 포도원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저와 여러분은 포도원 즉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 

캄캄한 인생의 저녁이 가까워 오고 있다. 먼저 왔다고 많이 받는 것 아니다.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 일했느냐? 이다. 

우리는 맨 나중에 부름 받은 품꾼들처럼 부름 받은 것에 감사하여 열심히 일함으로, 구원받은 기쁨이 더욱 충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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