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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를 통해서 그린 자화상 (갈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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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통해서 그린 자화상 (갈 3:13-14)


자화상의 영향력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건강한 자화상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자화상 (自畵像)이란 화가가 자기 자신을 그린 그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마음속에 숨겨 두고 있습니다. 그 자화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경험한 성공이나 실패 등을 재료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성격을 형성하는데 제일 중요한 재료가 될 뿐 아니라, 미래에 행복한 사람이 될지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인지 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키가 작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키가 작은 것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열심히 해서 공인 3단을 딸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또 글도 잘 쓰시는 훌륭한 문필가였습니다. 그런데도 목사가 된 이후에도 ‘일반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남들 보다 키가 많이 작다.’ 는 등의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지금은 어디서 목회를 하고 계신지 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다른 경우를 보면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에게도 잘못된 자화상이 그려질 수 있습니다. 요즈음 법조계에는 세상 경험 없이 머리만 좋은 사람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남을 판단하는 위치에 앉게 되어 모순이 많다는 주장들이 대두 되고 있습니다. 또 민족적으로 특이한 자화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들어도 돼지 울음소리는 『꿀꿀!』, 소는 『음메!』라고 들리는데 영어권에서는 돼지는 「GRUNT GRUNT!」, 소는「MOO-!」라고 합니다. 

성경에 등장한 인물의 이름의 경우 우리는 ‘야곱’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줴이큽쓰’ 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이것은 처음에 잘못 표기하기 시작한 것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잠23:7). 이렇게 일그러진 자화상은 어려움 때문에, 너무 잘나가기 때문에, 문화 때문에, 잘못 전달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리고 잘못된 자화상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잘못된 영향을 줍니다. 바울 사도님께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잘못된 자화상을 건강한 자화상으로 바꾸시기를 축복합니다. 


율법으로 인도하는 거짓스승 

바울 사도님께서 갈라디아 교인들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에다가 덧붙여 구약의 할례와 구약의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사도님은 이것은 다른 복음이라고 정의하고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강력하게 다른복음을 차단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교회를 다니다 보면 어느 틈에 율법적인 그리스도인 되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도 할 때나 말씀 속에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율법을 의무로 지키는 것은 복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만 그 이유는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은 감격’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면 우리는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어머님이 은행에서 융자를 받은 후 변제하지 못하고 운명하셨다고 하면, 그 즉시 저와 남동생과 여동생의 재산이 압류 됩니다. 이것을 원치 않으면 법원에 상속포기를 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 하면 율법의 저주가 상속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속을 포기해야 합니다. 주여! 나는 율법의 저주가 가져다주는 상속을 포기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선언해야 하고 그것을 실제 상황에서 믿어야 합니다. 


율법과 상관없는 이유 

1] 예수님께서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신21:23) 1세기에 작성된 문서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백성을 헐뜯고, 그의 백성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등 악을 행하면, 너는 그를 나무에 달 것이며, 그는 죽어야 할 것이다. 두 증인의 증언에 따라, 그리고 세 증인의 증언에 따라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며, 그들은 그를 나무에 달아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형 죄를 짓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고, 이스라엘 자녀인 그의 백성을 저주하면, 너는 그를 또한 나무에 달 것이며, 그는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체는 밤새도록 나무에 달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실로 너는 그를 같은 날에 매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너에게 준 땅을 더럽히지 말 것이다.」 

이렇게 저주스러운 나무십자가 사형을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대가를 지불하고 사서 해방시키듯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아고라조) 예수님은 우리는 구해주시기 위해서 손해 배상금을 지불하고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리트론)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상한 규례나, 과거가 멋있어 보인다고 쉽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냥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 된 것입니다. 

2]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지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율법이  등장하기 430년 전에 살았던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솔직히 아브라함은 일반 사람보다 더 못된 죄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린 자화상 

저와 여러분의 저주를 대신 지신 십자가, 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 사랑으로 정결케 된 것을 바탕을 자화상을 그려야 합니다. 최근에 어린 베트남 부인을 살해한 사람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하는 말이 귀에서 자꾸 죽이라는 소리가 들려서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삼국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조(曹操)가 원소(袁紹)와 대적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고 있었을 때, 하루 온종일 물을 만나지 못한 병사들이 목마름을 호소하자 조조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집 앞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말이야….” 병사들은 조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속에 살구나무 숲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다음 조조가 살구 열매를 입에 넣었을 때의 감각을 이야기 하자 실제로 살구를 먹는 것처럼 병사들의 입에 침이 고였고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계속해서 복음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시인합시다. 그리고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선언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그리기를 원하십니다. 

청년(靑年)은 ‘푸른 시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푸른 정신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청년입니다. 십자가 위해서 그린 자화상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시인할 때 진정한 청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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