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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이 되는 자가 많아지는 비결 (욥 8:15-18,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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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되는 자가 많아지는 비결 (욥 8:15-18, 행 2:43-47)


이전에는 자전거가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운동기구로 변신하였습니다. 특히 산악자전거는 대유행입니다. 자전거는 가격이 몇 십만 원부터 몇 천만 원까지 다양하고 심지어 좋은 자전거는 바퀴 하나에 몇 백만 원짜리고 있습니다.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갈 때에 페달이 돌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자전거는 ‘허브’라 불리는 뒷바퀴 중심에 라쳇이 부착되어 있어 패달을 앞으로 돌릴 때는 라쳇의 걸쇠가 허브를 잡고 돌기 때문에 패달이 함께 돌고 페달이 쉬거나 뒤로 돌릴 때는 라쳇의 걸쇠가 풀리면서 뒷바퀴  서론 
만 돕니다. 
  
일제시대 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공부 시간에 어느 학생이 완전히 얼이 빠져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고라”(이놈) 하면서 그 학생을 불렀지만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회초리로 어깨를 치자 학생은 그제야 깜짝 놀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너 뭣 하느라 정신이 빠져 밖을 내다보고 있는거야?”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자전거가 귀할 때인데 자전거를 처음 배운 학생은 자전거가 타고 싶어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벌을 세웁니다. 의자를 뒤로 돌려놓고 앉아서 자전거 타는 흉내를 내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항생은 열심히 다리를 저어가며 자전거 타는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한참 가르치다가 보니 학생이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왜 가만히 있어. 계속 자전거 타!” 그 때 학생은 “아까는 올라갔고 지금은 내려가요”. 그러더랍니다. 
  
자전거를 타보면 올라갈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갈 때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것은 참 쉽습니다. 사업이 성공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망하는 비결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도 자랄 때 ‘성장통’이라는 게 있습니다. 쇠퇴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고통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윌리엄 오펄스는 “성장은 현대 사회의 세속 종교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경제,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교회도 성장을 부르짖습니다. 성장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이 가지면 행복하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사람들은 속고 있습니다. 경제나 사회의 성장은 심각한 현대인의 병입니다. 성장해야 하지만 성장주의는 자칫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정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정체가 아니라 퇴조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들, 다른 교회, 다른 회사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성장하지 못하면 퇴조인 것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더해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유기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지만 모두가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흩어졌을 때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도 가려느냐?” 그 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는 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생명을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성장은 그리스도인의 목표이다. 성숙은 의무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름지기 성장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성숙해야 합니다. 
  
세계 기독교 인구의 성장속도는 이슬람이나 힌두교보다 느립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 인구는 현재 20억 7600만여 명입니다. 세계 인구의 33%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무슬림은 13억 명입니다. 이슬람은 최근 50년간 500% 가까운 급성장을 하였습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47%의 성장률에 그치고 있습니다. 
  
“날마다 더하니라”는 말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말입니다. 교회의 외적 발전을 의미하는 성경적 표현입니다. “비온 후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교회성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는 일입니다.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더욱 성장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 슬픔과 핍박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고통이 많은 교회였지만 사도행전 2:47에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는 비결이 무엇인지, 원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성경에서 찾으면서 우리교회가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영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43절에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적 증거가 많아야 합니다.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 증거는 영적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적 증거는 영적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회적 기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와는 다릅니다. 교회는 사회적 기관이지만 사회에 잠식되면 더 이상 영적 공동체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사회는 많은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의 조직과는 다른 유기체입니다. 조직이란 얼마든지 조합과 해체가 가능하지만 교회는 조합이나 해체가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사회와 다른 영적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영적 유기체입니다. 이런 교회의 영적 힘이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잔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개심하게 됩니다. 다메섹의 선지자 아나니아를 만나 눈이 떠지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사울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큰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에서 도망을 쳤고 예루살렘에 와서 헬라파 유대인과 변론을 하였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도 사울을 죽이려 했을 때 형제들이 그를 다소로 보냈습니다. 이런 교회의 어려움 가운데 사도행전 9:31은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영적 능력 있을 때 가능합니다. 문제는 교회성장의 저해요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영적 해결은 교회성장의 긍정적 요인이 됩니다. 지금껏 교회는 문제 때문에 손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영적 힘이 있으면 문제는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크고, 건물이 좋고, 교인이 많고, 예산이 많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교회를 전혀 겁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교회가 세상의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작은 교회, 정말 어렵게 작은 예산을 가지고 사회를 섬기는 교회를 세상은 비난하지 않습니다. 
  
최근의 대세는 건강이며 장수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의 교회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다.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영성적 교회입니다. 이런 건강한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말하고 세상이 두려워하는 교회입니다. 
  
최종상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세계적인 선교선 ‘둘로스’의 단장을 얼마 전에 지내시고 지금은 영국에 계시는 분입니다. 둘로스는 약 350명의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선교선인데 한국인으로 세계60개국의 선교사들의 단장이 된 분입니다. 

이 목사님이 런던에서 신학교의 교수로 계셨는데 그 학교의 영국인 직원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목사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졸라대서 런던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런던에서 가장 좋은 학군을 가진 부자 동네에서 작은 체구의 동양인 목사님이 개척하여 200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런던에서 200명이 모이면 큰 교회입니다. 목사님은 집집마다 전도를 하였습니다. 각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영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아름다운 교회를 일군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그 목사님의 집에서 하루밤을 잤습니다. 목사님은 각 집을 방문하여 전도하는 노트를 보여 주었는데 알뜰하게 전도하여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말씀이 “영국은 이제 더 이상 전도가 되지 않는 나라가 아닙니다. 전도를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 영국인들을 전도하여 이런 좋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가능합니까? 영적 힘입니다. 영적 힘은 세상적인 모든 조건을 극복하고 교회가 세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교회 성장은 영적 증거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능력과 권능이 행해졌습니다. 영적 표적이 있으니 교회는 자연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힘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영적 증거 때문에 힘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형제들아 어찌할꼬”하면서 죄인들이 회개했습니다. 사도들의 권능으로 병든 자가 나았습니다. 베드로의 그림자가 지나가도 병이 나았습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야 일어나라”라고 했을 때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영적 증거는 교회의 생명입니다. 지금도 영적 증거가 있으면 교회는 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많아집니다. 영적 증거가 있으면 가정이 회복됩니다. 슬픈 자가 위로를 받습니다. 상처받은 심령이 치료를 받습니다. 자살하려는 자가 치유를 받고 생명을 얻습니다. 
  
미래사회가 양극화시대(Polarization)이듯이 미래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적으로 말하면 영성도 양극화합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과 영성은 없으면서 형식만 남은 사람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인 사람을 명목상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이라고 합니다. 영성을 빼고 모양만 갖춘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3:5에는 이런 사람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가 세계 기독교를 이끌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교회를 주도하는 것은 영적 힘입니다. 신비와 열정이 있는 교회가 세계를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영성시대라고 합니다. 영성이 있어야 참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6장에는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는 영적인 교회가 사회를 이끌어갈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성적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 같은 모습은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 가운데 돌짝 밭에 뿌려진 씨를 보세요.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햇볕에 마르고 맙니다. 세상의 시험과 고통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런 영적 기운이 없는 교회를 세상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적 힘이 있는 교회를 세상은 두려워하고 세상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입니다. 
  
신학자 존 휴헤이는 ‘사람이 성장하는 최선의 길은 뿌리는 내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영적 뿌리 깊어야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욥기 8:18에는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라고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의 뿌리가 든든해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자가 많아집니다. 우리의 영적 육적 뿌리가 든든하면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올 것입니다. 
  
마태복음 5:16에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빛이 세상에 비춰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은 영적 증거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안다고 합니다. 우리의 영적 열매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게 하고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게 하는 증거입니다. 

  
둘째, 육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44-47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물질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적고 있습니다. 서로가 물건을 통용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 나눠주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었습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인정을 받고 사회성을 회복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런 육적 증거가 교회로 하여금 성장하게 하고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면 사람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하며,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태도의 변화 없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교회의 지도자의 자격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처음 광야공동체를 형성할 때에 지도자의 자격이 출애급기 18:21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라고 합니다. 처음 교회에서 일곱 사람을 선택할 때의 자격을 사도행전 6:3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던 한 사람인 디모데에 대하여는 사도행전 16:2에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라고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지도자는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1871년 무신론자에 가까운 신문기자 헨리 스텐리는 선교사 리빙스턴을 찾아내려고 아프리카 밀림으로 갔습니다. 그는 리빙스턴을 만나 10달 동안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함께 지냇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을 통하여 그가 발견한 것은 그의 올곧은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당시에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에 버금가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그 노인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얼마나 자기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지 지켜보던 나는 결국 그 때문에 회심하게 되었다. 비록 그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중에 스텐리는 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를 회심시킨 것은 리빙스턴의 설교가 아닌 그의 삶이었다”. 
  
슈바이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 시대에 유명한 신학자요, 음악가요, 의사요, 선교사였습니다. 사람들이 슈바이처에게 “왜 아프리카에 가서 원주민들 속에서 일하고 싶으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 삶이 곧 설교가 되기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세계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슈바이처를 존경한 것은 그의 신학, 그의 오르간 연주, 그의 의술, 그의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 생활화될 때 비로소 존경을 받습니다. 
  
어느 기독교신문에서 ‘한국교회가 가장 우선해야 할 갱신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신앙과 삶 일치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최우선 과제는 신행일치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방의 삶을 얘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과제이며 삶이어야 합니다. 
  
키엘케골은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 그룹은 그분에 대한 이야기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순간의 일이 아니라 평생의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현대 영국의 위대한 목회자이며 신학자인 존 스토트의 마지막 책인 ‘제자도’(The Radical Christian)에서는 온전한 제자의 8가지 특징을 제시합니다. 그 중에서 둘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세상을 거스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닮기라고 했습니다.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가 성육신적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그는 책에서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17에서 바울은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정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엔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결론 

초대교회 공동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된 후 공동체가 성장하였습니다. 교회의 문제는 성장점입니다. 식물은 밤에, 어둠 속에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교회는 성장합니다. 사도행전 6:7에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합니다. 
  
마이크 머독은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더하는 사람, 빼는 사람, 나누는 사람, 곱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더해줘도 빼는 사람이 있고, 곱해줘도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증거, 육적 증거를 가지고 더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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