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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행 20: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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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행 20:22-27)


얼마 전 어느 은행에서 안내 팜플렛 하나를 보았습니다. 
"보장성 보험"에 관한 홍보 글입니다. 
40년 전에, 당시 25세의 청년 100명을 선별해서 40년이 지나 65세가 된 현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조사해 보았답니다.   

100명중 16명은 이미 故人(고인)이 되었고, 66명은 최저생계 생활자였답니다. 
그리고 13명은 아직 현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나머지 5명만이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100명중 5명만이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한 평생 열심히 노력하고 산다고 살아도 그 결과는 그리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미리 대비하라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100명 중에 어디에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다들 희망사항은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5명에 속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확률이 20:1입니다.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쁘게 사십니까? 
그렇게 바쁘게 산 결과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혹시 앞에 나온 조사 통계에 최저생활 생계자 66명 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아닙니까?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인생은 그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내 인생의 사명과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먼저, 나는 우연히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생관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반드시 그분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땅이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때 믿음을 갖고 겸손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롬11:36을 보세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 나를 보내신 뜻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실 때 "일"을 맡겼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이 사명을 잘 깨달은 사람은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사명이 뭔지를 모르고 허송세월하며 산사람은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모아 놓고 고별설교를 합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고백하기를 자신은 "사명"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24절을 보세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얼마나 빨리 깨닫고, 그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몇가지 원리를 살펴보면   

1. 사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명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삶의 목적을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으로 세우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면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임무를 맡겨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행20:24을 다시 보세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분명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사명은 내가 하고 갖고 싶다고 갖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받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주님이 주시는 사명대로 살아갈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의 길을 가는 자만이 어려워도 기쁨이 있고 의미가 있고 행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22절~23절을 보세요.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그렇습니다. 앞길에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이 그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도 갑니다. 왜요? 성령에 이끌려 갑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성령에 매여 갑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가는 것 아닙니다. 
마지못해 가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을 달할지는 모르나 그것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당당하고 용감하게 갑니다. 
때로 죽음이 앞에 놓여 있어도 갑니다. 어려운 일이 예상이 되어도 갑니다. 왜요?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고 인생을 살아갑니까? 내 행복? 내 만족? 
좋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에 머물러 살면 나중에 허탈함과 아쉬움이 찾아오고 후회함이 찾아옵니다. 왜냐면 인간사 만사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수준 높여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부여한 사명, 그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명을 알 수 있냐고요? 내 사명이 뭔지 모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서 내 사명이 무엇인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찾아야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하면 목적지 없이 출발한 마라토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사명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몇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있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영광이 드러난다는 뜻은 그 사람이 하는 일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2)일을 하면 할수록 영적인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할수록 영적으로 자유롭고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명입니다. 반대로 그 일을 하면서 죄를 짓게 되고 영적 기쁨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떳떳치 못하면 그것은 절대 사명이 아닙니다. 

3)그 일이 사람과 하나님께 유익하냐 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해를 끼치면 그것은 사명과 거리가 있습니다. 술장사를 한다든지 음란 업소를 운영한다든지 도박장을 경연하는 것은 이익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하고 결국 유해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갈 길을 알고, 그리고 목적지를 알고 출발하는 사람은 속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방향을 올바로 정했기에 그저 묵묵히 가면 되는 것입니다. 

  
2.사명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사명은 우리게 부여된 가장 소중한 임무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명은 목숨 걸고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행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마치려 할 때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명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그 일에 목숨을 걸고 하도록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 하십니다. 적당히 하라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내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일에 목숨 걸고 계십니까? 그 일이 그만한 가치 있는 것입니까? 
아직까지 그렇게 목숨 걸만한 것을 찾지 못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찾으십시오. 목숨을 걸만한 가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실 때 부여하신 사명이 그것입니다. 
  
제가 낚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몇 년째 가보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완전히 미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소가리지 않고 갑니다. 시간 가리지 않고 합니다. 밤을 홀딱 새기도 합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낚시를 하는 사람을 봅니다. 낚시에 목숨을 건 것 같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목숨 걸만한 것을 찾게 되면 그것에 미치게 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것에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도박, 게임, 취미, 등등... 이런 것에 목숨을 걸다보면 미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요? 목숨을 걸만한 것이 못되는데 걸기 때문입니다. 
무가치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습니다. 결국은 망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제서 후회합니다. 그러나 돌이키기는 어렵습니다. 
  
사명이란 주 안에서 목숨걸만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명자란 목숨걸만한 가치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입니다. 
사명감이란 정말 목숨을 걸고 미쳐서 그 가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교회는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하나는 믿음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명의 길입니다. 이 둘이 서로 동반될 때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있는데 사명이 없으면 목숨 걸고 해야 할 것을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은 있는 것 같은데 뭔가를 하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세월 보냅니다. 
무엇인가 화끈하게 하고 싶고 한번 뒤집어지도록 하고 싶은데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원인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명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사명은 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목숨 걸만한 것을 찾았는데 자신이 하려다가 자꾸 주저앉습니다. 가야 될 목표는 분명한데 믿음이 뒷받침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산하다가 주저앉아 세월만 보내며 고생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명, 사명과 믿음의 균형을 이룬 사람을 최고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이런 사람을 많이 살펴보게 됩니다. 
  
롬16:3을 보세요. 여기도 목숨을 건 사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몸을 위하여 자기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여기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사역에 동역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바울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바울도 이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하면서 칭찬을 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어찌하든지 한번 태어나면 한번은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기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올바로 발견한 자는 흔들리거나 헛된 길로 가지 않습니다. 
  

3. 사명은 능력을 가져다 줍니다.
 
25절 이하를 보세요.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다고 합니다. 
왜냐면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다 전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그 권능이 능력입니다.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권능, 능력을 소유했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자기 사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임하질 않습니다. 사명이 뭔지를 모르기에 능력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나 반대로 사명을 제대로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사명이 끝나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그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삶에 의욕이 없습니까? 혹시 내게 능력이 없다고 한탄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문제의 열쇠는 사명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명의식이 없기에 의욕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에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신34:7절을 보세요.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모세가 120세에 별세할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체력관리를 잘해서 일까요? 건강관리를 잘했던 것일까요?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까지 인도하도록 명령하셨고 그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았기에 그가 죽을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않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그리던 가나안 땅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가나안 땅을 들어가 보지도 못해도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바위를 두 번 쳐서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기까지 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곳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일에 올인해야 합니다. 
실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집안이 좋지 못해서, 환경이 좋지 않아서.... 그래서 주의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사명은 우리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뛰어 넘게 합니다. 
사명감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들고 피곤하고 핑계가 많고 좋은 결과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명감에 불타오르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겁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고 이루려고 합니다. 
제가 그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선교후원 사역, 그리고 신학교 사역이 참으로 피곤한 사역인데 저는 그 사역을 하면 힘이 나고 즐겁습니다. 
  
문제는 사명은 누구나가 다 똑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신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안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명은 비교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어 보내시기로 작정하실 때부터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사명을 부여하여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신 사명이 뭔가를 빨리 알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그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복된 순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면 인생의 방황은 끝이 납니다. 더 이상 타락할 수도 없습니다. 죄악이 끝이 납니다. 
  
또한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 자는 사명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들이 한다고 나도 그 일이 사명이라고 달려들면 안됩니다. 그것이 내 것인지 아닌지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 일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입니까? 그 일이 여러분이 목숨 걸만한 사명 것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거시길 축원합니다. 목숨을 걸고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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