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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 (호 7:8-10, 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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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호세아 7:8~10, 11:8~9
설교: 오정현 목사
제목: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

오늘 말씀은 매우 혹독할 것이다. 목회 하면서 계속 신경 쓰고 집중했던 것 중 하나는, 사자성어로 하면 수선대후(守先待後)다. 선대의 강점을 지키되 후대를 키우고 세우자는 뜻이다. 나 자신이 사역계승자로서 선대의 정신을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옥 목사님을 추모하는 기간 중 과연 내가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앞으로 4, 5주 정도 옥 목사님 사역의 핵심이라 할 만한 그 내용들을 추려서 이 시대의 언어와 문법으로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셨다. 옥 목사님이 갖고 계셨던 생각과 그 사역의 핵심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선,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정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옥 목사님 사역의 핵심은 무엇이었다. 세속화다. 옥 목사님은 늘 교인들과 이 땅의 교회들이 세속화되는 것을 고민하셨다. 지난 10년 간 한국교회를 연구해 온 화란의 한 신학자가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이슈를 세속화로 꼽았다. 1세기에 사탄의 공격은 핍박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초대교회 콜로세움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사탄의 공격은 세속화이다. 그래서 이 세속화 문제가 우리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겠다는 다짐도 소용없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강성했던 지파였다.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도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 그런데 이 민족이 세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동화되어 세속화 되면 어떤 위험이 따를까 하는 것이다.

지금 본문의 시대는 여로보암 2세 시대 때다.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강성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실상은 그들이 열방 가운데 혼합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드시고 제사장 나라로 만드시고 거룩하게 살도록 만들어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세아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은 다 간음하는 사람,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고집들로 가득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좌와 우로 나뉘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는 교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만하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6절에 보니까 그들은 매우 간교했다. 주님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다.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다. 4절에 보면, 마치 이들이 달구어진 화덕과 같다고 한다. 습관적인 범죄를 의미한다. 이런 세속화 현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감춰지고 그 분이 수치를 당하셨다. 오늘 이 본문의 현상들을 우리는 우리 안에서 얼마나 확인하고 있는가. 그래서 기독교의 깊은 거룩성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품성이 그렇게 윤리적이지 못하다.

세속화를 말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우리가 산속에서 도를 닦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게 아니다. 이 세상과 같이 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끌림을 받는 것이 아니고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수가성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그 여인을 예수님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셨던 것처럼 말이다.

8절에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뒤집지 않은 전병이 뜻하는 게 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들이었다. 떡을 하나 구워도 시간과 타이밍이 중요했다. 타이밍 맞게 뒤집지 않으면 한 쪽은 타고 한 쪽은 설익는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이중성이다. 이중적인 것. 세속화의 핵심은 마치 한 쪽은 까맣게 타고 한 쪽은 설익은 전병처럼 이중적이라는 데 있다. 이중생활.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는 하얗게 보이더라도 일단 예배 마치면 불신자와 같은 까만 생활. 한 쪽은 잘 구워졌지만 다른 쪽은 까맣다.

누가 이중인격자를 좋아하겠는가. 하물며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이중성을 얼마나 싫어하겠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속화 되어서 영적인 힘과 패기를 잃어버렸다. 힘이 없어졌다.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되니까 영적인 힘을 상실했다. 그럼 망하는 것이다. 우주적 교회는 망하지 않지만 세속화된 교회는 망한다. 이슬람이 왜 저렇게 힘이 있나. 자기들 입장에선 세속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현실은 유럽교회가 지난 2천년 역사의 중심이었지만 세속의 가치를 용납한 후 급속한 몰락의 길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나. 가장 큰 책임은 세속화를 방치하고 내버려둔 기독교에 있다. 좋은 게 좋다는 태도. 되는대로 산다는 생각. 이런 것들을 그대로 방치해버린다.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고 국가가 망하고 교회가 망하는 것이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호세아 11장 8~9절.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목자의 심정을 갖고 계신다. 이 배은망덕한 인간들을 쓸어버려야 할 텐데 그게 아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하신다. 내가 어찌 너희를 버리겠는가. 내가 어찌 너희들을 세속화의 더러움 속에서 망하게 하겠느냐.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묻어난다. 이 심정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의 육과 영을 깨끗하게 하자고 외쳤다.

오늘 이런 말씀을 듣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께 나 좀 도와달라고 데굴데굴 구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미 무감각해졌다. 아예 그렇게 통회하지도 않는다. 내가 젊었을 때는 죄짓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회개하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회개할 바엔 차라리 죄를 짓지 말자고 다짐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 오래된 죄적 구습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성령이 우리 속에서 근심한다. 정상적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지었을 때 근심한다. 성령은 인격이다. 우리가 말을 함부로 한다든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면, 정상적 그리스도인은 그런 것에 마음이 불편하다. 근심이 되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염된 영과 육을 정결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깨닫길 바란다.

또한 우리가 세속화를 극복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이 된다. 하박국 3장 18~19절. 하나님이 내게 힘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다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힘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호세아 4장 1절. 그리고 6절.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통한 능력을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화를 극복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가 경계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 말씀엔 경계선이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여러분들이 말씀을 통해 한 번도 찔림을 받은 적이 없고 도전을 받은 적이 없고 한 번도 말씀 때문에 거룩한 고통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라면 지난 1, 2주 동안 우리는 거룩한 고통을 느껴야 한다. 그게 없었다면 세속화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씀을 읽지 않고 교제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전혀 갈증 없다면 그건 경계선을 넘어간 것이다.

기원전 49년에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루비콘 강은 그리 큰 강 아니다. 그리고 시저는 그 강을 그저 만 명 정도를 데리고 넘었을 뿐이다. 이렇게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이 로마 역사에 결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우리가 말씀의 경계선을 넘은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세속화를 극복하고 범죄치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갑자기 세상적 관심이 생긴다. 우리가 적어도 먹고는 살지 않겠나.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먹고 사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도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린다. 이 세상에선 저금통장과 돈이 힘이다. 능력의 원천을 여기에 두니 쓸데없는 걱정과 우환들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진짜 문제는 말씀의 능력이 없는 것이다.

만약 옥 목사님 지금 깨어나시면 우리에게 세상과 동화되지 말라고 하실 것이다. 세상과 동화되지 않으려면 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주일예배 한 번으론 안 된다. 주 중에 다락방도 나오고 제자훈련도 하면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무슨 수로 일주일에 한 끼만 먹고 살 수 있겠나. 한 끼만 먹고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세속화의 웅덩이에 빠졌다면 그것으로부터 탈출해서 신실한 주의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 (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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