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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상처 치유법 (욥 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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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 치유법 (욥 10:1-22) 

 
이 시간에 [마음의 상처 치유법]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욥기 9장에 이어 계속 되는 욥의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마음의 상처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평탄하게 자란 사람도 상처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 지난 날 중에 무슨 문제로 기억하기도 싫은 그런 생각이 있습니까?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괴로움 혹은 반항과 악감 혹은 생각하면 통곡하고 싶고 피하고, 싶은 말 못할 사연 등 그런 마음의 상처를 여러분은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이것을 해결하는 것을 내적치유라고 하는데 그러나 이 상처는 쉽게 처리 되지 않고 우리 마음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서 일생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삶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7) 하셨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사건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치료 받고 우리 민족이 치료 받지 못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먼저 드린 이유는 욥의 상태가 지금 그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욥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마음의 상처란 얼마나 크겠습니까? 조그만 사업에 실패해도 상상할 수 없을 텐데 그 큰 기업이 억울하게도 무너졌지요, 사랑하는 열 자녀가 그랬지요, 딱 하나 남은 자기 몸마저 병들고, 이 사람만은 그렇지 않으리라 했던 아내마저 배반하고, 진리를 가졌다는 고상한 친구들까지도 자기를 의심하고 이해 못해 주지요. 그런데 최후의 하나 즉 하나님마저 자기를 내버렸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래서 욥은 하나님 앞에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가 귀합니다. 그것은 내적치유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주님이 위로해 주셔야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내적치유를 받으려면 본문을 더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1. 마음을 그대로 내 놓는 것입니다.

1절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이처럼 절대 마음에 숨겨두면 안 됩니다. 다 발설해야 되요.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 속상하면 상한 대로,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미우면 미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한나처럼 원통하면 원통한 대로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 고통과 감정을 숨기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가슴에 품고만 있으면 병이 생깁니다. 어떤 문제든지 다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2. 그러나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여야 합니다.

2절에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그랬습니다. 간단한 구절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혼자 탄식하거나 사람 앞에 아무리 하소연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의 상처가 남습니까? 상처 받을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면 핍박을 받은 사도들이 더욱 성령과 기쁨으로 충만했던 것처럼 독이 독 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독도 독이지만 말의 독도 무서운 독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 하소연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가장은 가정에서도 존중 받지 못하고 사회에서도 지도자로서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 즉 “너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어. 너의 성격을 볼 때 너는 평생 남 밑에서 참모노릇이나 하는 게 적당해” 한 이 거짓된 말이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도 ‘나는 지도자로서 은사가 없어’ 라는 의식 때문에 일생 지도자로서의 길에 실패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기를 살려주고 북돋아주어야지 기를 죽이면 안 됩니다. 아이들 병신 만드는 것 쉬워요. 말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 앞에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정말 지도자로서 은사가 없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음에 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사람의 참모가 아니라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의 참모란다." 그러면서 그 잘못된 의식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흔히 설교 중에 자기 설움에 울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혼자의 탄식이라면 잘못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탄식이라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3. 욥에게서 배우는 것은 불경한 것 같고 항상 이래서도 안 되지만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 앞에서 따질 수도 있습니다.

2-17절의 내용입니다. 욥이 조목조목 하나님께 따지며 대항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실지이다” 한 처음의 욥의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항을 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일부러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능욕하면 죄가 되지만 엎드려 하나님 앞에서 나의 고통과 불만을 항거한다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보신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의 기도를 듣고 놀라 책망하지만 그것이 욥과 친구들의 차이입니다.

저도 율법 아래 있었을 때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히 두려워서 항거의 기도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 대항하는 기도를 했다면 회개했습니다. 특히 율법주의자들은 이런 기도를 못합니다. 그래서 경건한 것 같고 거룩한 것 같지만 그러기에 치유함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좋은 아버지이신데 우리가 드리지 못할 말이 어딧나요? 참으로 괴로워 견딜 수 없으면 자기 속에 묻어만 두지 마시고 하나님께 엎드려 항거라도 하세요.

오늘은 이야기를 좀 많이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항거해서 치료 받은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만 나와 직장 생활하는 어느 여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직장생활은 너무 힘겨웠습니다. 상사들의 거짓된 모습들과 성적인 농담과 희롱들 등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나왔고 아무리 신앙 안에서 용서하려고 해도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부당한 대우에도 잘도 견디지만 견디지 못했던 것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가정을 돌보지 않으며 자녀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고 바람만 피우는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고 아빠가 미워 죽이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남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하나님 앞에서 항거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토록 어려울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어요?’ 부르짖으며 ‘내가 이렇게 힘들었으니 하나님 당신도 당해 보시죠.’ 하며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나님께 퍼 부어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경한 말 했다고 그를 죽이지 않으시고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곁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마음의 상처를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직장 상사들도 용서하고 그동안 원망했던 예수님까지도 용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4. 탄생에 대한 후회와 죽음의 동경까지도 그대로 내어놓아야 합니다.

18절에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했습니다. 이렇게 욥은 자기 탄생을 후회하고 생일을 저주하며 차라리 태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동경합니다. 탄생을 저주할 정도라면 보통 상처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얼마나 고통스럽든지 병원에서 산소 빼고 집에 가면 곧 죽을 것이라고 하니까 그 소리가 그렇게도 반갑더랍니다. 그런 몸과 마음의 고통이 있다면 그대로 하나님께 쏟으세요. 엘리야도 죽고 싶다고 했고, 모세도 속히 불러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일본의 어느 여교역자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에게서 외가에서 홀로 태어나 자란 사람입니다.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엄격함 속에서 항상 외할아버지를 무서워하며 자랐고 그 결과 윗 남자들이 말만하면 발 한 짝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었습니다. 그런 그가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목사의 책망에 충격을 받고 그는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비로소 감히 전에 하지 못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저를 만드셨어요. 왜 이런 세상에 살게 하셨어요? 차라리 죽여주세요.’

여러분,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쏟아 자살하고 싶다고 기도할 수는 있지만 실재 자살은 안 됩니다. 우리 마음에 탄생의 후회와 죽음의 동경이 있을 때 그 마음을 마음에 묻어 두지 말고 주님께 쏟아야 합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주님은 나타나셨고 양수 속에 있는 그녀의 태아 적 모습을 보여주시며 어루만져 주시고 “너는 실수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야. 내가 너를 만들었다. 내가 너를 세상에 나게 했어”라고 말씀해 주시고 마음의 아픔을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의 상처가 어떤 것이라도 그대로 다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셨습니다. 세상 애굽인들이 가지는 시기 질투 교만 염려 근심 낙심 우울 절망 비관 우리 성도들이 걸릴 병이 아닙니다.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 주님 앞에 우리의 상처를 다 내어놓고 진심으로 이야기하며 울부짖으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면 항거도 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욥의 기도법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으로 응답하시고 싸매주시며 온전히 치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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