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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뻐하라 (느 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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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뻐하라 (느 8:5-12)


(느8:5-12)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1.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아브라함’을 당시 근동 지역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창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헤브론에 매장지를 구하고자 그곳 지역 사람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창23:4)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나의 아내를 묻으려고 하는데, 무덤으로 쓸 땅을 여러분들에게서 좀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라며 “나그네”, “떠돌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는 당시 고대 근동 지역 전역에 걸쳐 존재했던, 경제적으로 빈궁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정치적으로 힘없는 가장 하층 계급의 사람들, 예를 들면 노예, 용병, 노무자들, 전쟁포로, 천민들은 모두 ‘히브리’라고 불렀습니다. ‘히브리 사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고난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출3:9-10)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고 말씀하시면서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냈습니다. 그 때, 애굽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할 것을 명하실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출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3:18,7:16,10:3)

애굽 왕에게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나는 히브리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은 힘센 강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고난당하는 약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시 사회적, 정치적 강자들 중에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히브리’ 중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는 히브리의 하나님’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히브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애굽의 노예생활 가운데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노예해방, 즉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히브리 사람’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 크신 이름을 위해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삼상 12:22)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택하신 이유는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고대 국가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은 강력한 국력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은’ ‘히브리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가장 약한 자들을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은 민족’, ‘히브리 민족’ 을 택하신 이유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이는 나라 백성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 있다고 교만하지 말고, 많이 배웠다고 거만하지 말고, 많이 가졌다고 거드름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실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은 민족’,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 한 명을 택하여 천 명을 이루게 하시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사60:21-22)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래서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 한 명으로 시작된 선민(選民)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이주할 때, 고작 70명이었지만(창 46:27) 애굽에서 나올 때는 200만명이 훨씬 넘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12:2)는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창12:2,15:13) 이렇게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3:6-8)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자기 땅이 없이 ‘나그네’, ‘떠돌이’ “히브리” 이스라엘을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에 앞서 각 지파에 한 명씩을 뽑아 12명의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이들이 40일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모세에게 보고합니다. 

(민13:27-29)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이 보고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 땅 거민들은 하나같이 강하고 성읍도 크고 견고해서 가나안 땅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림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보고에 백성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갈렙이 나서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이렇게 외칩니다. “(민13:30)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러나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이렇게 반박합니다. “(민13:31-33)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악평하며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고 비관합니다. 

이에 온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민14:2-3)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백성들은 성난 시위대(示威隊)로 변하여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합니다. 이렇게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갈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사태가 크게 잘못되어가는 것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여 옷을 찢으며 이렇게 외칩니다. 

(민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땅으로 인도하여 그 땅을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여호수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대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14:10-12)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고 원망 불평하며 대들었던 그들을 모두 진멸해버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진노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려면 약속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믿음, 약속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믿음을 가진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믿음생활을 한 다윗 왕이 말년에 이렇게 고백하며 권면합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어느 갈릴리 해변에서 가르치시다 저녁이 되어 제자들에게 ‘저편,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폭풍이 휘몰아치고 파도가 덮쳐 일촉즉발 배가 침몰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고물(배의 뒷부분)에서 편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척하십니까?’ 라며 원망 섞인 볼멘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 고요하라!” 고 하시자 바람이 멎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아직까지 믿음이 없느냐?” 며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복종하는가?’ 하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막4:35-41) 아주 다급한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지 못하고 ‘선생이여’라고 한 데서 제자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토록 함께 하면서 수많은 능력과 기적 등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음에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 것입니다. ‘몰아치는 바람과 풍랑 이는 물결’을 인격적인 대상처럼 꾸짖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믿었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本體)로서 바로 그 하나님의 능력을 수행하고 계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아직까지 믿음이 없느냐?” 는 말씀으로 책망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몹시 두려워하며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복종하는가?’ 하고 서로 수군거린 모습을 보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참조. 마14:22-33) 

그러나 이방인이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시고 기뻐하신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그곳 주둔군 백부장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 제 하인이 중풍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고 하시자 백부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내 집에까지 오시게 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나으라는 말씀만 한마디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웃사람을 모시고 있고 제 아래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부하에게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내 하인에게 ‘이 일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같은 백부장의 말에 놀라시며 따라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스라엘 온 땅에서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말하노니 동서 사방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니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니라.” 그리고서 예수께서는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시각에 그의 하인이 나았습니다. 선택받은 유대인이라도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하시면서 백부장의 믿음에 감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는 말씀과 동시에 백부장의 하인이 병고침을 받았습니다.(마8:5-1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믿음 생활로 소원대로 이루지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아무도 멸망당하지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벧후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인생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지만 하나님은 징계나 심판 자체를 원하시지 않으며, 회개하도록 이끄시기 위해 비록 고난과 슬픔을 겪게 하지만 이내 그 크신 사랑으로 자비를 베풀어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애3:31-33) 죄로 인한 고생과 근심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와 참된 기쁨과 행복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 마음이십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겔18: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예수 복음을 전하여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 복음만이 인간의 저주를 축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 전도자가 되었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살전 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에게 모든 영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그 영적인 복이란 여러분을 창세전부터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이러한 영적인 축복을 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엡1:3-10, 벧전2:9) 하나님께서는 예수 복음을 전하여 죽어가는 영혼들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고 아름답게 보십니다. 

B.C.845년경 아람 군대가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성(城)이 포위되자 이내 물자의 반입이 중단되고, 때마침 닥친 기근으로 인해 성 안에서도 식량이 절대 부족하여 아사(餓死) 직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식량 기근이 어느 정도인가는 부정한 동물로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나귀, 그 중에 거의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현재 금액으로 3천2백만원-1세겔은 노동자 4일 품삯, 즉 40만원-출30:24;삼하 24:24)에 거래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가 은 5세겔, 즉 200만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와 같이 성이 포위되고 기근이 극에 달했을 때는 동물이나 사람의 배설물까지 먹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유사한 사태가 세계 제 2차 대전 말기에도 있었는데 독일이 유럽을 포위하자 유럽 사람들은 먹을 식량이 없어서 개와 고양이, 심지어 해충까지도 잡아먹었었습니다(T. R. Hobbs). 이러한 곤경과 환란은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아니할 때 당하게 되는 형벌이었습니다. 레위기 26:23-26을 보겠습니다. 

(레26:23-26)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진대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 배나 더 칠지라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사마리아 성의 기근은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돌아가며 어린 자식을 잡아 삶아먹기까지 했습니다.(왕하6:28-29) 이러한 야만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이 극도에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결코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을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호람 왕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기는커녕 이러한 참상에 대한 책임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전가시키며 그를 죽이겠다며 저주를 퍼붓습니다.(왕하6:31) 그러나 이때 엘리사는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왕하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가장 좋은 밀가루 4되와 보리 8되 반이 각각 40만원(은 11.4그램)에 매매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평상시보다는 고가에 해당되지만 당시의 처참한 형편으로 볼 때는(6:25) 엄청난 가격 절하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예언이 기근으로 허덕이던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선포, 복음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왕의 보좌관은 엘리사에게 ‘만일 여호와께서 하늘이 창을 내고 곡식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소.’ 라며 믿지 아니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아니한 그에게  ‘당신은 그것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지만 그 어느 것도 먹지는 못할 것이오.’ 라고 예언합니다. 

이 시기에 사마리아 성문 입구에 문둥병자 네 사람이 앉아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여기 앉아서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겠느냐? 우리가 성에 들어가도 굶어 죽고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 바에야 차라리 아람군에게 가서 항복하자. 만일 그들이 우리를 살려 준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기밖에 더하겠느냐?’ 그리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군의 진지로 갔는데 그 곳에 도착해 보니 눈을 의심할 정도로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아람군에게 요란한 전차 바퀴 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수많은 군대가 진격하는 소리를 듣게 하셔서 아람군으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대군이 진격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왕이 자기들을 치려고 헷 사람과 애굽 왕들에게 돈을 주고 산 용병(傭兵)들의 공격으로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놀란 아람군은 모든 군수물자들을 진지에 그대로 버려 둔 채 그 날 저녁에 도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문둥병자들은 한 천막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퍼먹고 마시며 군수품들을 가지고 나와 숨겨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아직도 성 안에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백성들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자기들만 배부르고,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이 선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왕하7:9-10)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만일 우리가 내일 아침까지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우리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자, 가서 왕궁에 이 사실을 보고하자 

그리고 곧장 성으로 가서 문지기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람군의 진지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고 말과 나귀들만 매여 있었으며 군수품들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왕궁에 전해지자 왕은 문둥병자들의 전하는 말을 믿지 못하고 아람군의 유인술책으로 여겨 정탐군을 내보내 사실을 확인합니다. 과연 문둥병자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자 성내(城內)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 나가서 아람 진지를 약탈합니다. 약탈한 물건들이 즉시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좋은 밀가루 4되와 보리 8되 반이 각각 40만원(은 11.4그램)에 매매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때 굶주린 백성들로 대혼란이 일어나자 왕이 보좌관을 성문에 배치하여 통행 질서를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좌관이 밀어닥치는 군중들에게 짓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도 역시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 보좌관에게 ‘당신은 그것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지만 그 어느 것도 먹지는 못할 것이오.’ 하고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문둥병자들이 말한 ‘오늘날 아름다운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하고 ‘이 소식을 내일 아침까지 전하지 아니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은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복음을 믿지 아니하다 결국 군중들에게 짓밟혀 죽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아름다운 소식’, 즉 예수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예수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사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식은 인류 구원의 소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 4:12,롬 10:13) 그리고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가장 아름다운 삶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가장 아름다운 소식, 복음을 전하는 가장 아름답고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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