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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영혼을 찾아내야 합니다 (눅15:1-10) -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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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영혼을 찾아내야 합니다 (눅15:1-10)


오늘은 해피데이 새생명축제 선포식을 가지는 날입니다.  우리 주님이 마지막 부탁하시고, 유언한 말씀,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은 바로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유언의 말씀이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유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들고 부담이 되는 기간은 해마다 후반기에 새생명축제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세상의 위대한 역사에 힘들지 않고, 부담이 되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위대한 역사란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항상 힘들고 부담이 되는 것이 전도하는 일입니다.  

전도에 대한 많은 책을 읽어보고, 수많은 세미나에 참석하여도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전도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전도라는 말만 들어도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전도하라는 설교가 듣기 싫어 교회 나오기에 부담이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담이 되지 않는 인생이 어디에 있으며, 부담 없이 듣는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그런 설교가 있다면 만담입니다.

전도를 말할 때에, 어떤 사람들은 ‘전도는 우리 평신도의 일이 아니라,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도란 해야 하지만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나는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고, 세움을 받았고, 우리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전파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고, 예수님의 편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1-2절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하고 로마의 앞잡이요, 매국노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에 죄인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땅의 사람들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죄인들이란 당시의 명예스럽지 못한 직업을 가지고 살면 죄인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였습니다.  이들은 공직에 임용되지 못하였고, 법정에 증인이 될 수 없게 하였습니다.  세리, 목자, 행상인, 피혁장이 같은 사람들은 죄인이라, 땅의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소외된 사람들, 세리와 죄인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예수는 최후의 소망이요, 자기들을 이해해주는 친구이셨습니다.  당시에 교권자들에게 버림 받은 서민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의 교훈은 생명을 주시는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세리와 죄인들을 기쁘게 받아주셨고, 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주셨습니다.  

당시의 교권자들은 선지자 세례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눅7:34)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도 주님에게 나아오고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나와 같은 죄인도 사랑해주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잘 사는 귀족과 어울리시면서, 땅의 사람들이라고 멸시하던 서민들을 외면하셨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나설 때에 예수님은 연속적으로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100마리의 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들에서 양을 먹이다가 양을 헤아려보니,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자기가 잘못 헤아린 것 같아, 다시 세어보았습니다.   우리에서 나올 때에 분명히 100마리였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녔습니다.   그는 양을 찾아 기뻐하면서 자기 어깨에 메고 와서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파티를 열겠습니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비난하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하는 교권자들을 향하여 다시 한 번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잃었습니다.    여인은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쓰고 다니면서 모든 가구를 들추고 찾을 때까지 찾더니 드디어 찾아내었습니다.  여인은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그녀의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무리를 둘러보시면서 유명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가지,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적인 교훈의 말씀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잃어버린 양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잃어버린 한 영혼, 한 사람을 살리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세리와 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서,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0절 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7절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읽지 않았지만, 32절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큰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미국 일리노이 주 사우스 베링톤에 위치한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목사이신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님이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목사님은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목사님은 시카고 지역에 사는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미국에서 가장 성장하는 교회 중의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이 책은 Becoming a Contagious Christian 이라고 하여, “전염성이 있는 크리스천이 되라”는 뜻인데, 번역하면서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에서도 눅15장의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눅15장을 가지고 ‘잃은 자와 찾은 자’를 말하다가 ‘필수적인 요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눅15장의 세 가지 비유에는 공통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세 가지 비유에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 무엇인가를 상실하였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를 말이다. 길 잃은 양은 목자에게 매우 소중하였다.   생계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잃어버린 동전은 여인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그 돈은 그녀가 가진 전 재산의 10분의 1이었다.  말을 안 듣는 그 고집불통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매우 소중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에 있어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방랑자, 길 잃은 자, 영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세리와 죄인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네가 궤도를 벗어난다 할지라도 그래도 너는 내게 소중하다! 너는 정말로 소중하다!”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을 놓고, 그는 하나님께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고정된 시각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저런 사람이 교회에 들어올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저런 사람이 교회에 다니니까 교회가 욕을 먹는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예수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바르지 못한 생각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은 반드시 찾아야할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를 위하여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가장 큰 기쁨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올 때에 천군천사들을 모으시고 기뻐하시면서 잔치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빌 하이벨스의 책을 소개하는 목적은 그가 강조하는 중요한 사실을 정리하여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제2장에서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에는 보상이 따른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전도에 몰두하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널리 전하는 것이 당신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예상치 못했던 어떤 자극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밀사의 영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종황제의 밀사로 임명되신 분들이 몇 분이 있습니다.  국왕이 한 사람을 밀사로 임명할 때에는 개인적으로 불러서 임명장을 줍니다.  그것은 왕과 자기만 아는 일이요, 왕을 대신하여 나가서 국익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그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이준열사가 있습니다.  이준은 1907년 5월에 고종황제의 밀사로 황제의 위임장을 받고, 비밀리에 서울을 출발하였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38세)을 만나 합류하고, 시베리아를 거쳐 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21세)과 합류하여 러시아 황제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도착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하였습니다.  이준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열국의 대표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할복자결로 대한독립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국왕의 밀사가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국가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영광이요,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자, 곧 사명자를 세상에 보내시는데, 아무도 모르는 개인적인 지령을 내려 특별 임무에 파견하시는 일로 매우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지령을 받은 사람, 어떤 특별 임무에 투입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지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도 그를 기뻐하시지만, 우리가 그런 지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감격스럽고, 자긍심이 있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로 하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용하면서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를 전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밀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감격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입을 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가슴 속에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복음을 증언할 때에 우리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를 사용하여 하나님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감격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자신이 많이 컸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주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의 신앙을 가지고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간증하고, 말해야 그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은혜가 되고, 말씀을 전하면서 나에게도 말을 하게 되고,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말을 하니, 또 다시 은혜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열심히 전도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것은 우리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경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적인 성경구절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암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담대하게 증거하려면 기도하지 않고는 그런 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적인 확신이 없이 복음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복음전도자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지옥에 들어간 부자의 절규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는 어차피 고통받는 지옥에 들어왔지만 자기 아버지 집에 남아 있는 형제 다섯 사람은 이런 형벌의 자리에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고 절규합니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8) 그래서 자기 집 대문에 앉아 얻어먹다가 죽은 나사로를 천국에서 살려보내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말하여, 형이 들어간 지옥에 들어가지 말고,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런 간절한 요청 하나 들어주지 않고, 이 땅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어 그들에게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모세와 선지자들이 되기를 작정합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우리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되어 증거하기를 더욱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죽어서 실제로 가는 곳입니다. 지옥을 피하는 길은 우리 주님 예수님을 영접하는 길 외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기에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외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하늘로 가는 밝은 길이 되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소개하면 그 말씀을 듣고 구원받을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구원받을 사람을 모으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한 영혼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는 살인방조죄라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한 영혼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살인방조죄에 해당합니다.   의사로 선서할 때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읽고 있습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인의 요청에 의해 남자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그 환자가 사망하였는데, 살인방조죄로 입건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의사가 있습니다. 검찰의 주장인즉 부인의 요청을 묵살하고 치료를 계속했더라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퇴원시키므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살인을 방조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퇴원을 하면 사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퇴원시켰으니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퇴원하는 것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퇴원하면 죽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의사가 부인의 말을 듣고 퇴원시킨 것은 살인방조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영혼의 죽음,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에 빠져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가족 중에 지옥으로 달려가는 형제가 있는데, 그를 구원하지 못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아도, 하나님은 수많은 천군천사들 앞에서 살인방조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에게 어떤 분이 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어떤 때 가장 영적인 위기를 느끼십니까?” 그때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대답하시길 “저는 많은 곳에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전도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막상 내 곁에 다가와 만나게 되는 한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을 때에, 그것이 나의 가장 커다란 영적 위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사람인데 한 사람 정도는 그냥 지나쳐도 되겠지, 이런 생각이 들려고 할 때가 내가 가장 위기를 느끼는 순간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위기를 느껴야 합니다. 

전도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잃은 영혼을 찾아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인도하여 마치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의 감격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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