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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교 명령 (막 16: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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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교 명령 (막 16:15-20)


미국교회가 180년전에 처음으로 파송했던 선교사가 있는데 그가바로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입니다. 그는 처음 인도에가서 선교하다가 버마로 옮겨서 일생을 바쳐 헌신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선교사로 떠나기전에 타고난 수재였다고 합니다. 25살에 그는 그가 졸업한 모교의 교수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거절했습니다. 또 그해에 보스턴에 있는 큰 교회의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는 거절했습니다. 거절한 이유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해외 선교에 쓰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는 해외 선교를 위해 해외선교사로 사역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혼하고 보름만에 선교지로 출발했습니다. 도착해서 얼마후에 첫아이가 유산되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도 낳은지 2달만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셋째아이 출생한지 얼마안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인도나 버마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아니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핍박과 박해의 삶을 살았습니다. 버마에서는 1년간 창문도 없는 감옥에서 바퀴벌레와  참혹한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버마에서 6년만에 첫열매를 얻었습니다.  복음전하고 6년만에 한사람을 전도해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첫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은 40년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땅에서 숨을 거뒀을때 버마에는 5만명의 그리스도인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철저한 불교국가에서 수많은 박해를 딛고 그는 복음의 승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복음이 전달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만해도 125년전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 딛음으로 본격적인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25년만에 이렇게 많은 성도와 교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왜 그런 고생과 희생을 무릎쓰고 자신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방지역에가서 다른 문화권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활 환경이 다른 그곳에 가라고 명령하시기에 선교사는 순수해서 순종해서 갔던 것입니다. 

오늘 그 말씀이 15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아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유언과 같은 말씀.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지상최대의 명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명령 가장 큰 계명 그것이 바로 전도의 명령, 선교의 명령입니다. 이 동일한 명령이 마태복음  28장 18절 이하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동일한 내용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멸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온천하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라. 

선교란 말을 우리가 많이 사용합니다. 때로는 선교란 말과 전도란 말이 잘 구분이 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워 할 때도 있습니다. 선교란말은 백과사전을 보면 기독교신앙을 선전하여 널리 펴는일. 기독교신앙을 남에게 알려서 널리 퍼지게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선교란 말입니다. 

선교란 말의 원어는 파덴이라는 뜻을 가진라틴어 미시오입니다. 한 때는 미시오라는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다.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이시고 하나님이 선교를 이끌어가시고 인간은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라는 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영어로는 미션이라합니다. 파견, 복음을 전파하다.  이런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란 말과 전도란 말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선교란 말은 기독교의 복음을 증거하는 가장 넓은 의미의 포괄적인 의미로 선교란 말을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1대1로 믿지않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때는 옆집 아줌마에게 우리가족에게 복음전할때는 선교라는 말보다는 전도라는 말을 씁니다. 1대1로 불신자에게 예수의 복음을 증거한다. 우리는 이것을 전도라는 말을 씁니다. 영어로 에반젤리즘 기쁜소식을 알린다. 틀린말이 아닙니다. 

선교나 전도는 혼동해도 무방합니다. 더 넓은 의미로 선교라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타민족에게 복음증거할 때 선교란 말을 씁니다. 어떤 집단 기관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선교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가 학원선교라고 하지 학원전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병원선교 이렇게 말합니다. 군선교, 우리교회에서도 오늘 군선교하러갑니다만 군전도라고 하지 않고 군선교라고 합니다. 어떤 집단 어떤 기관 타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1대1로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때는 전도라는 말을 씁니다. 

선교가 지향하는 목적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묶여있는 인간, 속박되어 있는 인간, 죄에 묶에 있고 인습과 잘못된 전통에 묶여 있는 인간을 복음으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간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의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무리를 세워가는 것이 선교다라는 것입니다. 선교의 역사를 따지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바꿔말하면 이 땅에 오신 최초의 선교사는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삼위일체적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하셨습니다. 파견하셨습니다. 선교사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생을 살아가시다가 그 본분을 다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다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 때 사도들을 파송하셨습니다. 그래서 12제자를 파송하시고 70인 제자를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과 베드로를 파송하셨습니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사입니다. 선교를 명령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교회는 선교를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선교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종종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추천도서로 소개했음니다만 부산에 세계로 교회라고 손연보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그 지역 여건이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성장한 교회중에 하나입니다. 그 목사님이 전도사때 그 교회에 처음 부임했는데 바닷마을 고기잡는 어촌마을입니다. 그 교회가니까 교인이 2-30명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남신도회가 월례회를 한다고 해서 남신도회에 갔더니 몇사람 모여 있습니다. 총무 한 분이 나와서 보고하는데 다른 회계보고 그런 것 없습니다. 여러분 개가 잘크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박수를 막 칩니다. 뭐하는거냐 그랬더니 남신도회서 1년에 한번씩 개를 잡아 친교를 하는데 강아지 한 마리 얻어와서 어느 집사님이 키우고 있는데 많이 커서 가을이면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것을 보고하고 박수를 치고 끝내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한 남신도회가 다 있다. 

여신도회에 갔더니 여신도회는 보고를 하는데 작년에 가져온 젓갈이 다 안팔렸다고 그리고 가져간 사람은 돈 빨리 내라고 그러더니 실랑이 하다가 끝나더라는 겁니다. 회장한테 여선교회가 선교는 안하고 젓갈만 파냐고 했더니 전도사님 모르는 말 하지 말라고 우리가 젓갈팔아서 교회주방에 숱깔도 사 놓고 전도사님 생일도 채려드리고 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분이 처음 부임했을 때 그런걸 봤다고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남녀신도회를 없앴다고 합니다. 지금도 없다고 합니다. 전도하는 구조로 바꿔졌다고 합니다. 

남녀신도회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 교회 본질이 뭐냐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본질은 선교라는 것이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4장 19절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뭐라고 하십니까. 나를 따라오거라 내거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 자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도 마가복음 2장 38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마을에 가서 전도하자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 내가 전도를 위해서 왔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존재하는 목적은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전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본질이라면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요 저와 여러분의 본질이 아닐까요. 

그런데 종종 설문조사를 해보면 교인들이 건의사항에 이런걸 씁니다. 목사님 전도설교 그만 좀 하면 안될까요. 교회나오는 건 즐거운데 전도하는날이 너무너무 싫어요 부담스러워요. 왜 죄의식을 자꾸 갖게 하시는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시자마자 승천하시면서 오늘 이 명령을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선교명령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15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선교의 명령, 전도의 명령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 명령은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했습니다. 지리적인 제한이 없습니다. 이쪽동네만 가라 어느나라만 가라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온 천하. 그것이 아프리카든, 인도든, 브라질이든, 방글라데시든, 따지지말고 주님이 명령하면 가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선교사는 가야하는 것입니다. 온천하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 지리적 제한이 없고 종족적 제한이 없습니다. 어느 종족에만 복음을 전해라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만민에게 그가 누구이든지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땅끝이라는 게 뭡니까? 지구의 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 복음이 필요한 곳, 그곳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종족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지막명령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가스펠, 굳뉴스, 기쁜소식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속죄하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다시 재림하신다는 사건,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전합니까? 당신을 위해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당신의 죄가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당신은 영원한 생명과 부활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라. 복음을 전파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교의 현장에서도 그런 안타까운 일들을 봅니다.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를 증거합니다. 자기 교파나 교단을 증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 선교사가 가면 장로교 교리를 가르치고 성결교에서 가면 성결교 교리를 가르치고 순복음 선교사가 가면 순복음에대해 설교하고 그러나 우리는 복음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전도할 때 교회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만 우리교회로 오라는 말 이전에 당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라는 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종종 세상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면 우리가 너무 열심히 증거하다보니까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전도하러 가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당신 교회 새로 건축했으니까 교인 채우려고 전도하러 왔구나 나를 사랑해서 온것이 아니라 당신 교회가 빈자리가 많으니까 빈자리 채우려고 헌금 늘리려고 교회 살찌게 하려고 왔구나. 우리는 교회를 채우기 이전에 그리스도가 주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교회 안나오셔도 좋습니다. 다른 교회 가셔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받는 구원과 축복에 대해서 증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제한이 없습니다. 

두 번째 선교명령의 특징은 선교명령의 결과는 구원과 심판을 갈라놓는 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믿지 않으면 정죄를 받을 수 있다. 정죄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는다는 것은 내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만드는게 구원을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은 주어졌습니다. 선물로 주어진 복, 믿음의 손을 뻗쳐서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으로 증거로 세례를 받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세례를 받아야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외적인 표시, 내가 지금 구원받았습니다하는 것을 공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세례를 받는 것이지 세례 자체가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병상에서 세례받는다. 그 세례 의식보다 더 중요한것은 병상에서 예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한 그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 우리가 물로 세례식을 베푸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때 구원이 이르는 겁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거절해서 그가 받지 않으면 그는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전도자의 특권이 대단한 것아닙니까. 선교사가 어느지역에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복음을 영접하면 그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복음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개인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복음을 들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있습니다. 전도자의 특권은 천사도 흠모하는것입니다. 천사도 전도할 수 없는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도 있고 지옥으로 방치할 수도 있습니다. 전도자의 특권입니다. 

선교란 그와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명령에 순종할 때 우린 사람들을 구원과 축복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선교명령의 특징은 선교명령에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17절 18절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른다.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이런 기적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으며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믿고 순종해서 나가서 예수님을 증거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은 떠나갈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귀신에게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기도할 때 복음을 증거할 때 그를 묶고 있던 귀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도 제자들 70명이 전도하고 돌아와 예수님께 처음한 보고가 무엇입니까.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제자들 특별한 사람들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예수의 이름으로 나갔더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고 도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쁘게 보고했습니다.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할 때 귀신을 내어 쫓을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새 방언을 말하며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방언을 통해서 새 언어를 통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십니다. 18절에 보니까 그들은 종종 뱀을 집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선교하러 가는데 광풍을 만나 배가 파손되었습니다. 간신히 그들이 도착한 섬이 멜리데라는 섬이었습니다. 그 섬에서 구조를 받고 모여 앉아서 불을 피우는데 불속에서 독사가 뜨거우니까 튀어나오면서 사도바울을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도바울 저주받았다고 너는 죽는다고 독사에게 물렸으니, 그러나 사도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대로 뱀을 집으며 뱀을 집어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 했습니다. 또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했습니다. 그 섬에 추장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서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열병이 떠나가고 건강을 회복한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땅에 일어나지만 특별히 선교지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종종 청년들이 선교갔다가 아픈환자를 위해 기도했는데 앉은 뱅이가 걷기고 하고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선교지에서 특별한 은혜를 더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모든 것들은 선교명령에 순종하는 자의 특권인 것입니다. 예수의 명령을 믿고 순종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런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의 선교활동속에 나타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도하는 사람 하나님이 이런 기적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선교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축복인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20절입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뒷받침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예수님과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주께서 역사하사. 마태복음 28장에도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성령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여러분이 선교하러가든 전도하러가든 그 가운데 성령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에 보니까 그런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불가운데 지날지라도 불이 너희를 사르지 못할 것이며 너희가 물가운데 지날지라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니라. 선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선교할 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선교하는 사람의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앞에 나와 있습니다만 청년들이 파송받으려고 하는 캄보디아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앙코르와트라는 관광지로 유명한데 캄보디아의 수도는 프놈펜입니다. 언어는 카메루어 정부형태는 입헌군주제 그래서 지금도 왕이 다스리는 그런 나라입니다.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습니다. 2007년 현재 인구는 140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8년에 739불이라고 합니다. 북한보다 조금 낫든지 비슷한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아주 180번째로 가난한 나라가 바로 이 캄보디아입니다. 

종교는 전 인구의 90프로이상이 불교 소승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위치는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 중간쯤에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역사속에서 킬링필드라는 불행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1975년부터 1979년까지 3년반동안 크메루루즈라는 무장단체에 의해서 엄청난 학살이 저질러 졌습니다. 그때 캄보디아 인구가 700만명이었는데 3분이 1인 200만명이 죽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700만명중 200만명이 3년반동안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상처를 딛고 캄보디아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희망은 어린이 들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돈이 없어 학교를 못갑니다. 그래서 임만호 선교사님같은 분들이 희망의 학교를 세워서 학교못가는 아이들 3백여명정도를 모아서 초등학교 과정을 무료로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교복을 다주고, 책을 주고, 밥을 주고 무료로 학교오면 다 공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작년에도 희망의 학교에가서 아이들을 섬겼습니다. 올해도 그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프놈펜의 세군대의 어린이집 다른곳을 방문해서 어린이들을 섬기고 도와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것입니다. 바로 캄보디아의 희망은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심을 때 바로 캄보디아 땅에 불교국가에 이 어두운 죽음의 땅에 생명의 빛이 비칠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그 일을 위해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해 왔던 것입니다. 

선교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선교입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나온 물이 이제 강을 따라 흘러가는데 강 주위에 죽었던 나무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강에 죽었던 고기들이 살아나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는 생명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 복음의 빛, 사랑의 빛을 증거하는 것이 선교인것입니다. 

어느 아프리카 한 마을에 선교사님이 오셔서 일생동안 선교하셨습니다. 일생을 헌신하다가 그분은 거기서 죽으셨습니다. 마을 사람은 너무 고마워서 그분의 장례를 잘 치러드리고 마을 입구에 그분의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워 드렸습니다. 그 비석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아시지요. 선교사님, 선교사님이 우리마을에 처음오실 때 이 마을은 어두움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이 우리곁을 떠난 지금 이 마을은 빛가운데 있습니다. 그 빛이 무슨 빛입니까? 복음의 빛, 생명의 빛, 사랑의 빛,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은 어두움가운데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그 일을 위해서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멀리 가지 못하더라도 뒤에서 기도 후원자가, 또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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