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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하게 사는 비결 (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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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는 비결 (전 6:1-9)


"행복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니오! 저는 지금 불행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복하게 살고자 그토록 노력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비즈니스위크지가 가장 행복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나라를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1-2위를 다투는 나라가 스위스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4만 불로 최상위권입니다. 범죄율도 가장 낮고, 의료시스템을 비롯한 사회 인프라가 최고 수준입니다. 게다가 풍부한 레저 활동거리를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의 자연 풍광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잘 구비된 나라라고 평가되었습니다.

비슷한 조사가 발표된 일이 있습니다. 독일의 슈피겔지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행복감을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이름하여 "행복지수 조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스위스가 세계에서 41위로 나타났습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가장 잘 구비된 나라 사람들이 정작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지수는 41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최하위 수준인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올라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조사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가진 조건이 좋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환경이 좋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이 적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두 조사에서 보듯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의 긍정의 심리학의 대가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족해 졌지만 행복하지 못한가?" 그리고 이렇게 풀어갑니다. "가난할 때는 행복하지 못한 원인을 설명하기 쉬웠습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럴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이 해결됐는데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풍족해 졌는데 오히려 더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조건만 갖춰지면 내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학벌을 갖게 되면 행복하고, 미인을 아내로 얻으면 행복하고, 평생 먹고 살 돈을 벌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 얻는 것일까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분은 많은 것을 잃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됐습니다. 장애인들,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몰입"이라는 것입니다. 이 몰입이란 일을 하다가 거기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감각조차 일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순간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몰입의 순간 그 마음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몰입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행복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비록 삶의 조건이 도무지 행복할 수 없어 보이는 사람도 올바른 마음의 자세만 준비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삶의 조건이 행복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도 마음의 자세가 잘못되면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갖추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갖추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마음 자세를 갖출 때 행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1. 만족하라.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 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한 마디로 만족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고, 반대로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만족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 23:5를 보면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모든 것이 만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모든 것이 자기에게는 과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이것입니다. 바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고백하며 살 수 있을까요? 내 잔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내 잔이 크다고 생각하면 여간 큰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그 잔이 넘친다고 고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잔이 작다고 생각하면 작은 은혜에도 잔이 넘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은 그가 쓴 [행복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 실제로 자신의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며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답니다. "아, 나는 이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떻게 이런 복이 내게 왔을까?" 그러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놀라며 감격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답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어째서 내게 이런 불행이 겹친단 말인가?" 그러면서 대체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그랬습니다. 시 8:4를 보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다윗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신은 들에서 양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결코 왕이 될 자격도 자질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결코 이 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존재를 낮게 평가하니 모든 것이 과분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잔이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아내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내 아내는 정말 과분한 사람이야"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생각하며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내 남편은 정말 과분한 사람이야" 이렇게 고백하며 사는 부부 사이에 행복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마음속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누리라.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지 아니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많은 것을 감사함으로 누리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릴 때 행복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린다는 말은 어원적으로는 발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린다는 것은 믿음의 눈을 열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올바로 보고 그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고 즐기고 나누고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 정말 좋은 것을 받았고, 정말 많은 것을 받았고, 정말 소중한 것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감사하면서 사용하는 동안 행복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한국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목적 지향적인 인생을 삽니다.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는 나머지는 그 목적을 위해 과감하게 희생합니다.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도 오직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인생의 소중한 청소년기는 오직 대학입시를 위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 경험해야 할 것들 그 시기에 누려야 할 많은 행복들 대입이라는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되고 있습니다. 등산도 그렇습니다. 정상정복이라는 목적을 정해 놓고 그저 정상을 위해 오르고 또 오를 뿐입니다. 오르는 도중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계곡의 시냇물에 발을 담그는 그 작지만 소중한 경험들은 안중에 없습니다.

이렇게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 인생을 살다보면 그 목적이 지나간 뒤 너무도 허탈해 집니다. 목적을 이루어도 또 다른 목적을 향해 달려야 하기 때문에 그 행복은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목적 달성에 실패하면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그 패배감이 깊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기가 힘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소중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들 다 소중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인간관계들 다 소중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가진 모든 것들, 처한 모든 상황들 다 소중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하게 받고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 스탠리 스타인은 [이제 나는 외롭지 않다]라는 책으로 미국인에게 용기를 준 작가입니다. 그는 나병환자이면서 눈까지 멀어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비관하며 절망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게 남은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자기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하나씩 손꼽아 보았습니다. 아직도 참 많은 것이 남아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건강한 정신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강한 정신으로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없는 습작을 거듭하며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늘 음악을 들으며 건강한 정신이 있음을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그는 이 책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절망적 조건 속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대신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것을 활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내게 없는 것만 보고 그것을 더 가지려고 세월을 허비하다보니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귀한 열매도 거둘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나아가 그것들을 누리십시오. 어느덧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3. 평안하라

본문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평안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도 평안이 깨지면 행복 역시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옛날과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던 전쟁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감당하기 버겁던 그 많은 노동으로부터도 대부분 해방됐습니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도 많은 부분 벗어나 있습니다. 의식주도 과거와 달리 힘들이지 않고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와 달리 각종 정신질환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각종 통계조사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인의 70-80%는 각종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경쇠약이라고도 하는 노이로제이고, 우울증, 신경강박증, 불면증, 정신분열증 등 많은 증상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삶을 살면서도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조금만 정신 놓고 있으면 뒤처지게 됩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치열한 경쟁에 밀려서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행복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불안입니다. 이 불안을 이기고 평안을 찾고 그 평안을 이어가는 삶이야말로 현대인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요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을 베푸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만찬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보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중에 하나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저들에게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평안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 주시는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채워주실 때 우리 마음속에 가득하던 불안, 염려,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마치 촛불이 켜지면 방안의 어둠이 사라지듯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 평안 속에 우리는 참된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비결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선 만족해야 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그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평안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받고 그 평안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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