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멘 신앙 (고후 1:15-24)

  • 잡초 잡초
  • 456
  • 0

첨부 1


아멘 신앙 (고후 1:15-24)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이 미국에 유학 가서 리더십 강의를 한 학기 들었습니다. 강의 내용 가운데 리더십 지수와 자질을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200명의 학생이 수강을 했는데 교수님이 한 사람 당 7분씩 앞에 나와서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연설을 하든 사람들 앞에 자신의 리더십을 확인시켜 보라고 말했습니다. 

발표하는 과정을 보면서 리더십의 능력을 A,B,C,D로 나누겠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주어진 7분 안에 어떻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도 유학을 간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도 제대로 되지 않고 또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특별한 재능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매 강의 시간마다 학생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맘껏 뽑냈습니다. 그 목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발광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말하는 자신도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광을 하고 순서를 마쳤다고 합니다. 

200명의 학생들이 발표를 하는 시간을 매우 길었고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발표를 다 마치고 리더십 지수와 자질을 중심으로 A,B,C,D 등급으로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제대로 한 것이 없어서 당연히 D 등급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A 등급으로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당황스러웠지만 A 등급의 자리로 이동을 했습니다. 

학생들 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결과가 아닌 다른 결과를 보면서 의아해할 때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리더십 지수와 자질을 구분하는 기준을 말해 주었는데 그 기준의 의외였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리더십의 지수와 자질의 기준은 발표 내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들으며 보이는 반응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7분이라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다른 사람이 발표할 때 호응하는 자세를 주의 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의 발표에 동참하는지를 본 것입니다. 발표할 때 웃어주고, 발표가 끝났을 때 힘차게 박수를 쳐주고, 끝나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 등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자세를 보았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은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웃고, 박수쳐 주고, 하이 파이브를 하며 격려했던 것입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리더십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리더십의 지수와 자질은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며 힘을 불어 넣어 팀을 공동체를 활기차게 만드는 능력, 즉 긍정적인 사고라고 정의를 내리며 강의를 끝내더라는 것입니다. 매우 충격을 받은 강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볼 때 여러분들의 리더십 지수와 자질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 안에서 생활하면서 어떤 얼마나 높은 리더십 지수와 자질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까? 남들을 향해 조그만 일에라도 힘차게 박수를 쳐주고, 활짝 웃으며 격려할 수 있는 것은 긍정의 마음을 소유했을 때 가능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격려하거나, 공동체를 활기차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생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긍정적인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지친 사람들,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며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너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고 칭찬해 주셨고, 병자를 치료하실 때에도 단순히 말로만 하지 않으시고 몸을 만지고 쓰다듬으며 매우 적극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셨습니다. 

구약의 창세기에 보면 최초의 사람인 아담에게 뱀이 나타나서 그를 유혹합니다. 뱀은 부정적인 사고의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뱀이 아담을 유혹하면서 하는 말을 보면 매우 부정적인 말를 가지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말합니다. 아담은 뱀이 부정적인 말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에 결국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됩니다. 부정적이고, 불순종함으로 순간적으로 더 많은 것, 좋은 것은 얻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약의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할 때 그곳에도 사단이 등장해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사단은 아담을 유혹할 때와 똑같이 먹는 문제와 높아지는 문제를 가지고 유혹합니다. 사단이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말로 세 가지 유혹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말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긍정적인 말씀을 가지고 사단의 부정적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긍정적이고, 순종적이되면 순간적으로 손해보고, 어리석어 보여도 결국은 더 많은 것을 얻는 축복이 됩니다. 

부정적인 마음의 사람은 쉽게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 사단의 종 노릇을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단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아담의 부정적인 마음에서 멸망이 시작되었다면 예수님의 긍정적인 마음에서부터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매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다니지 않습니다. 아주 무거운 분위기로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항상 웃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아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믿음을 이야기하고, 성령 충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뭔가 신앙의 내용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영어에서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impossibl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impossible은 I'm possible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의 중심에는 바로 긍정적인 마음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서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긍정 마음을 소유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2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예’로 대답을 했지 ‘아니요’라고 대답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예’로 순종했습니다. 그런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예’ 즉 ‘아멘’으로 응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 가운데 ‘아멘’은 긍정적인 믿음을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아멘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진실로, 정말로’ 그런 뜻입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멘은 가장 긍정적인 믿음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에게 ‘아멘하는 신앙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27장 26절의 말씀을 찾아서 함께 읽어봅시다.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좋게 들려오든지 경고로 들려오든지 아멘으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을 찾아 읽어봅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은 아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긍정적인 마음을 순종함으로 구원을 이루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장 20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그러니까 성경의 약속된 모든 말씀은 모두가 다 예라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은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고백하고 고백해야 하는 신앙의 단어입니다. 아멘은 천박한 신앙의 사람들이 하는 표현이 아니라 가장 건강한 믿음의 사람들의 단어입니다. 아멘은 절대로 부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단어가 될 수 없습니다. 아멘은 긍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단어입니다. 

여러분, 그랭이질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옛날 한옥을 지을 때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습니다. 땅에 주춧돌을 묻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기 때문에 주춧돌이 판판하게 잘 다듬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주춧돌은 자연석 그대로 씁니다. 다듬지 않아서 윗면이 울퉁불퉁합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주춧돌을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주춧돌의 울퉁불퉁한 면에 맞춰 기둥의 밑동을 파냅니다. 물론 대 목수 중에서도 최고의 기술을 가진 도편수가 맡아서 합니다. 

도편수가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잘 맞도록 기둥의 밑동을 파내는 것을 그랭이질이라고 합니다. 돌과 나무, 성질이 전혀 다른 두 물체를 접착제 없이 하나로 만드는 것이 그랭이질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중심으로 그랭이질을 하느냐는 중요합니다. 집의 주춧돌로 삼았다면 주춧돌을 깎고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 주춧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 정신이 아름답고 귀합니다. 집의 중심은 주춧돌입니다. 주춧돌을 중심으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그랭이질을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주춧돌로 예수님을 세우고 그 분위에 내 인생 집을 짓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집을 짓기 위해 기둥을 세우는데 기둥을 편하게 세우기 위해 주춧돌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 삶의 중심으로 선택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고르고 맞추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그랭이질의 한 속성이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긍정적인 생각을 배우는 것입니다.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예’를 하고 아멘이 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아멘의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됩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아멘의 가정이 됩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아멘의 교회가 됩시다. 하나님의 긍정적인 사고를 대표하는 천국의 언어 ‘아멘’이 살아 있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