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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03:54

쫓아내지 못하면 (삿 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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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내지 못하면 (삿 1:27-2:5)


짓궂고 장난기가 있는 한 청년이 자기 집에 있는 큰 거울을 신촌 사거리에 세워 놓고 남자가 거울을 더 많이 보나, 여자가 더 많이 보나 체크를 했습니다. 그 청년의 생각에는 여자들이 거울을 더 많이 볼 줄 알았는데,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대개 그냥 지나가는데 남자들은 거울을 보더니 그 앞에 서서 넥타이도 만지고 머리도 다시 만졌습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여자들은 집에서 거울을 보고 두드릴 것 다 두드리고 만질 것 다 만지고 나오는데 남자들은 대강 보고 나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단 집에서 나오면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나, 머리 스타일은 어떤가 하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느라 자기는 볼 사이가 없는데, 남자들은 그래도 무게가 있어서 자기를 다시한번 본다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가 너무 바쁜 것 같습니다. 빠른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한 핸드폰이 있고, 어디서나 온 세계의 정보를 확인하고 그 정보를 주고받는 컴퓨터가 있습니다. 일처리 하기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너무 바쁩니다. 사업장을 돌아보는 일, 직장을 돌아보는 일, 친구를 돌아보는 일, 그 밖의 일들로 인해 너무 바쁩니다. 또한 남의 허물은 잘 보이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주요하지만 예수님은 권면하시기를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하셨습니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를 뽑으려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 말씀의 거울 앞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사사기 2장 3절에 길갈에서 온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가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1. 삶의 유익한 가시가 있습니다.

찌르는 가시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가시가 내 삶에 있어서 큰 유익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가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시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를 바울사도에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9절 말씀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성경을 열세권이나 기록한 위대한 바울사도에게는 육체의 가시 즉 질병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일평생 겪었던 질병이 무엇일까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은“심각한 안질이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간질병이었을 것이다.”라고 추측을 합니다. 바울사도가 기도할 때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일평생 고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가 바울사도의 주치의로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가시는 바울사도를 겸손하도록 하기 위한 가시였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 가시로 인해 겸손하게 되고, 이 가시로 인해 하나님께로 날마다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곁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시 울타리가 곧 바울사도의 몸에 주신 가시였습니다.

2. 사탄의 미혹으로 인한 가시가 있습니다. 

이 가시는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 곡식의 잡초처럼 내 영혼의 성장과 성숙을 가로 막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2절에“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가시떨기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 밭에 심어 놓으신 복음의 씨앗이 결실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의 가시떨기로 인해 신앙의 농사를 망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 롯, 에서, 사울 왕, 아간, 게하시, 가룟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 모두가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디모데전서 6장 7절~12절에 권면하시기를“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매개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탄이 열개의 병을 들고 한 청년을 찾아와서 제안을 했습니다. 여기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의 병에는 독약이 들어 있는데 꿀물이 들어 있는 병을 찾아 마시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돈이 아무리 좋다 해도 생명과 바꿀 수는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유혹하는 사탄의 말에 이 청년은“열병 중에 딱 한 병인데...”하며 떨리는 손으로 병 하나를 골라 마셨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난 청년은 큰돈을 받아 들고, 사탄에게 다시는 자기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또 찾아와서 이번에는 아홉 개 중 하나를 마시면 돈을 두 배로 더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번에도 병 하나를 마셨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큰 돈을 받아든 이 청년은 쉽게 번 돈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급기야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 등 허물어져 가는 생활 속에 계속 사탄의 유혹을 따라 살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두려움마저 사라졌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두병을 앞에 두고“돈 벼락이냐, 죽음이냐.”하며 마지막 인생의 승부를 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청년이었던 그는 이미 나이가 들어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병을 택하여 식은땀을 흘리며 꿀꺽 삼켰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아! 나는 이겼어. 끝까지 살아나고야 말았어! 이제 어서 돈을 내놔.”하며 승리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몰랐습니다. 사탄은 노인 앞에서 마지막 병을 스스로 마시면서“허허, 처음부터 독약이 든 병은 없었지, 그러나 너는 이미 돈이라는 독약에 죽어가고 있었어! 너는 너의 젊음을 돈이란 종에게 얽매어 살다가 영원한 것을 잃어 버렸어. 이제까지 받은 돈의 대가를 지불해야만해! 그것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영원한 고통을 함께 받는 것이지.”라고 했습니다.

3. 불순종으로 인해 생긴 가시가 있습니다. 

본문 사사기 2장 1절~5절까지의 말씀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내 삶의 고통을 말합니다. 본문인 사사기 1장 27절~3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쫓아내지 못하매, 쫓아내지 못하고”라는 말씀을 거듭 일곱 번이나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대다수 지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 7장 16절에 당부하시기를“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2장 2절~3절 말씀에도“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33장 55절에도 똑같은 말씀입니다.“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멸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눈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며, 그들의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함정으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자손들은 벧엘을 공격하고 그 벧엘 성을 진멸했습니다. 잘 한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습니다(사사기 1:22~26).

그러나 나머지 자파들인 므낫세 지파, 에브라임지파, 스불론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도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신 백성을 진멸하지 않고, 헐라고 하신 단도 다 그냥 두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거주했습니다(사사기 1:27~33). 
심지어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빌려 산지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떨었습니다. 점령이 아니라 도리어 점령을 당했습니다(사사기 1:34~35). 

자기들이 결심하고“하나님이여, 저들을 정복하게 해주옵소서.”하고 하나님께 간구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능력을 주셨을 것입니다. 힘이 필요하면 힘을 주시고,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아이디어를 주시고,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주시고, 우박이 필요하면 우박을 내려서라도 적을 진멸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쫓아내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순종하지 않고, 헐어버라고 하셨는데도 헐지 않고, 같이 살지도 말고 언약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과 언약 했습니다. 

사사기 2장 1절~3절 말씀에 의하면 그 때 길갈에서 온 하나님의 사자가 그 백성들에게 말씀합니다.“너희가 어찌하여 너희들은 내 명을 어기고 그들과 언약하고 그들의 단을 혈지 않았느냐? 나도 그들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서 찌르리라, 그들의 우상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이 말씀을 전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슬피 울며 그곳의 이름을 보김이라 부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슬픈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교훈은 철저하게 순종하지 않는 부분이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철저하게 추방해야 될 것을 추방하지 않는 그것이 훗날 우리를 찌르는 옆구리의 가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대충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도 정성을 다해 시간 시간 드려야 합니다. 주시(主時)가 아니고 주일(主日)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날은 주일을 지키되 너무 인간 편의 위주로 지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잭슨은 주일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잭슨 대통령은 해마다 대승전한 전쟁 기념일에 전우들과 같이 그 전쟁터에 가서 그 날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는데, 한 해는 기념일이 주일이었습니다. 그 해에도 대통령의 전우들은 모든 기념 준비를 다해놓고 말했습니다. “각하, 그 승전지로 가십시다.” “오늘은 못 가네. 오늘은 주일이네. 교회로 가야 되네. 내일 가세.” 많은 사람들이 만반의 준비를 다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교회로 가서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승전지로 가면서 하는 말이 “승전 기념일은 바꿔도 되지만 주일은 바꿀 수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철저하게 주일을 지켰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그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나 다른 말씀은 잘 지킨 것 같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 이름을 붙이는 것은 잘한 것 같은데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그것 하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어긴 바로 그것이 자기들을 찔렀습니다. 

예수님께 한 관원이 찾아와서“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누가복음 18:18)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그 관원의 반응에 대해 누가복음 18장 22절~23절에 기록하기를“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한 가지가 부족하여 예수님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누가복음 18:24)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는 다 쫓아내지 못한 대적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 족속을 다 추방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들은 죄악의 덩어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기에 있으면 그들의 죄가 스며들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을 앓고 있는 사람 곁에 건강한 사람이 가까이 있을 경우 그 전염병이 전염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내가 짓는 열 가지 죄 중에 아홉 가지는 버렸는데, 한 가지는 지금도 짓고 있다면, 그 한 가지가 내 옆구리의 가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한 가지, 다른 것은 하나님 앞에 떳떳한데, 그 한 가지, 하나님 앞에 께름칙한 그 한 가지 때문에 내 옆구리에서 피가 난다는 말입니다.

그 한 가지가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교만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사업이 잘되어서 재물이 많아도, 권세가 높아도, 명예가 높아도 그것 때문에 교만하면 안 됩니다. 잠언 16장 18절에“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중국의 선교사였던 헤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의 부인은 정말 귀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겸손하게 충성하니까 많은 부인들이 물었습니다. “사모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그렇게 충성하실 수가 있으세요? 우리는 아무리 해도 그렇게 충성하지 못하는데 사모님은 그토록 큰 충성을 하시니 솔직히 교만한 마음이 좀 생기지요?” “제가 무슨 충성을 했다고 교만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충성한 것이 있는지 저는 몰라요. 저는 제가 한 일은 다 잊어버리고 앞으로 할 일만 생각하며 삽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충성하고 그것 때문에 교만하면 안 됩니다. 충성하고 교만하면 자기가 힘써 쌓아 놓은 공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영적으로 은사가 있어도 교만하면 안 됩니다. 방언한다고, 통역한다고, 그것 때문에 교만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늘 “나는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라며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것을 아는 어느 목사님이 말했답니다. 나는 방언은 하는데 통역은하지 못하니 당신이 한번 통역해 주실래요?”“통역하지요.”목사님이 영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했더니 회개하라는 둥 엉뚱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영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했소.”라고 했더니 얼굴이 발개지더랍니다. 

절대로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함정을 파는 심히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은사를 많이 받으면 더 내려오고, 사업이 잘 되면 더 내려오고, 교회에 충성하면 더 내려와서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낮은 곳에 계십니다. 교만하면 그것이 나를 찌르는 옆구리의 가시가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도 우리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라고 하시는데“나는 안 될 거야. 나는 망할 거야, 내 사업은 안 될 거야. 내 자식은 망할 거야.”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긍정적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이 세계적인 기업을 이룬 고 정주영 씨 같은 분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절대적인 긍정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할 때도, 집안에 문제가 생겨도“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 잘 되겠지,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시는데 잘 되겠지, 혹 망해도 다시 일어나겠지.”하고 항상 긍정적인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내시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원망도 추방해야할 죄입니다. 불평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마귀에게 삼킴을 당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향해 광야를 지나다가 왜 멸망당했습니까? 그 원인은 단 한 가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독수리에게 제일 먼저 잡혀 먹히는 새가 두루미라고 합니다. 두루미들은 아주 시끄럽게 떠들면서 다닙니다. 그러니까 독수리가 자다가도 떠드는 소리에 깨어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어떤 두루미들은 입에 돌을 물고 다닌다고 합니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고양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마침 꾀 많은 원숭이가 이 광경을 보고 참견을 했습니다. “내가 공평하게 나눠주겠다.”고양이들은 원숭이에게 고기 덩어리를 가져다 줬습니다. 원숭이는 일부러 크기에 차등을 두어 둘로 나눴습니다. 작은 것을 받아든 고양이는 자기 것이 작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는 큰 것을 받아들고 한 조각을 베어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고양이가 자기 것이 작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원숭이는 또 다른 것을 한입 베어 먹었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계속하고 나니 남은 것은 겨우 고기 한 점이었습니다. 그제야 고양이들은 자기들의 욕심과 불평과 다툼을 후회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불평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는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는 거룩한 헌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가룟유다는 거룩한 헌신을 하는 자리에서도 낭비한다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5절~6절에 이 사실을 기록하기를“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사탄에게 미혹되어 망할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의 화살입니다. 그 화살이 성도의 영혼의 심장을 찌릅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하고 싶은 마음을 쫓아내어야 합니다. 불평하는 마음이 자기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남을 찌르는 가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에게 어떻게 진노하셨는가를 민수기 26장 9절~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러니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여호와께 패역할 때에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 오십 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고”했습니다. 고라가 모세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역하다가 결국 그것이 자기 옆구리를 찔러서 땅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 안에 추방해야 되는데 아직 추방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까? 그것이 지금은 편리하고 좋게 보일지라도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면 그것은 훗날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 술 담배를 추방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술 담배의 맛을 알듯 기도의 맛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귀한 사실을 하나 더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길갈에서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길갈에서 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길갈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초기지입니다. 정복한 다음에 다시 와서 재정비 하는 곳이 길갈입니다. 우리에게도 길갈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싸우고 다시 돌아 와서 재정비하는 곳, 오늘 우리의 길갈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몸인 우리 교회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에 나가서 싸우고 다시 주일에 찾아 와서 재점검하고, 새 힘을 얻고 돌아가는 곳이 길갈 즉 교회인 것입니다. 이 길갈을 통해 승리하며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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