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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마 5:3-10, 7:21, 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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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3-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10:7-8) 

사복음서(Four Gospels)는 하나의 ‘예수 사건’을 네 가지 관점으로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생애, 그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 아들의 구속(救贖)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거듭 제시함으로써 이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과 그분이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야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복음서입니다. 마태복음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이 책은 유대인을 위해 쓰인 것으로, 나사렛 예수야말로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다윗의 아들이며 그들의 왕이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설득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약 60번 나옵니다. 그중 40번 이상을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 부르고 있는데, 마가나 누가나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 라는 용어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천국’ 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지상의 정치적 메시야 왕국을 꿈꾸는 당시의 왜곡된 메시야 사상의 오류를 수정하고자 하는 신학적 의도를 숨기지 않습니다. 곧 천국은 현세적이고 영토적인 개념의 나라가 아니라 내재적(內在的)이고도 초월적(超越的)인 성격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보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마태복음 4장에서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본절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것은 죄사함의 복음이기 전에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모두 천국 복음이 전파될 때에 언제나 병자가 고침 받고 귀신이 쫓겨나는 현상이 동반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천국복음이 가까이 왔음을 입증해주는 것은 이와 같은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 백성은 어떤 존재인지, 그 나라 백성에게 주시는 권세와 능력, 그리고 역동적인 그 나라의 삶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더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 팔복 속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이 나타남 (= 천국 백성의 성품 목록) 

5:3-10= “심령이 가난한 자...애통하는 자...온유한 자...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긍휼히 여기는 자...마음이 청결한 자...화평하게 하는 자...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5~7장의 산상수훈(山上垂訓, The Sermon on the Mount)에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갈 그리스도인에 대한 윤리 헌장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도래는 ‘이미(already)' 와 ’아직(not yet)' 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천국은 이미 세상에 임하였고,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한 이들은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그 완성은 역사의 종말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천국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탄의 불법이 혼재(混在)하는 상태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산상수훈은 이렇게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이땅의 성도들에게 새 시대의 새 기준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입법하신 새 법입니다. 이 속에 담긴 신약 율법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과 이를 통한 새언약의 수립을 전제하고 수립된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 율법과 산상수훈의 신약 율법을 비교하자면, 전자가 일시적, 외형적, 방편적이었던 반면에 후자는 최종적, 내면적, 그 자체로서의 목적성을 갖는 특징을 보입니다. 한마디로 산상수훈은 종말론적 지평 위에서 이미 영원의 구원을 받은 자가 잠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에 가져야 할 절대적 삶의 지표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본론적 내용을 언급하시기에 앞서 팔복(Beatitudes)을 먼저 언급하십니다. 팔복은 산상수훈의 핵심이고 요약이며, 이를 지키는 자에게 임할 풍성한 복을 압축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천국 백성이 가져야 할 성품의 목록을 발견합니다. 

성도 여러분!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접하기 전에 먼저 바른 기초를 반드시 쌓아야 합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떤 ‘존재’(to be)가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 목록을 잘 살펴서 이런 것들이 여러분 안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원리는 ‘가난한 심령’ 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자신의 자원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매우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이 말씀을 믿습니까? 

2) 애통하는 자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무슨 뜻입니까? 여기 ‘애통한다’는 말은 심히 근심하며(고후 12:21) 고통스럽게 슬퍼하는 것을(마 9:15) 의미합니다. 
무엇으로 인한 애통입니까?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한 슬픔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애절한 슬픔은 철저한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케 됨으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도시와 나라의 상황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며 애통해 하는 많은 중보기도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소돔성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예루살렘을 위한 느헤미야의 탄식과 예레미야의 눈물, 동족의 불신을 깨뜨리기 위한 사도 바울의 해산의 고통은 주의 참 종들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또한 저와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를 걸을 때마다 그들의 역사적 뿌리와 그들의 현재의 타락상을 생각하면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코나 독일을 보십시오. 존 후스, 모라비안 교도들, 마틴 루터가 이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회가 100년이나 지속적으로 열렸고, 이는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지금 1000만명의 주민을 가진 독일 루르(Ruhr) 밸리에는 12개의 교회가 있지만 그들 중 200명이 넘는 교회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사탄 숭배자들은 수천 명이나 됩니다.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시를 위해 슬퍼하기 전에 우리는 결코 우리의 도시를 위해 진정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대구를 사랑한다면 대구를 위해 울게 될 것입니다. 도시의 상태가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상관 없습니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애통해하며 변화를 보기 위해 부르짖는 중보기도자입니다. 

3) 온유한 자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성경적인 온유함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약함이 아닙니다. 온유의 근본 의미는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의 유일한 관심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영예롭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만의 뿌리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겸손을 보십시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 20:18-19). 사도는 지금 자신이 모든 겸손으로 주를 섬겼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당신 자신에 관해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이 말씀을 보면 온유와 겸손에 대한 우리의 개념 중 많은 부분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사람은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자기를 매우 비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경적 온유는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는 대신에 하나님을 향해 불타는 열정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팀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며 한 도시에서 어느 교회가 가장 중요한 지에 관해 개인적, 정치적 게임을 중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들로 인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자는 온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팔복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지는 성품 목록이 계속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그리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등입니다. 
우리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을 알려면 이 말씀들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위하여는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적인 화평은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더 이상 깨어질 수 없을 정도로 회복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도 여전히 미성숙한 말썽쟁이(troublemaker)일 수가 있고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팔복의 모든 요소들이 충만하게 되기까지 계속하여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2. 표적과 치유와 축사(逐邪)가 자연스럽게 나타남 (=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 

마태복음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권세와 능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면에서 우리의 주의를 끕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는 표적과 치유와 축사가 드물지 않게 나타나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고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마 10: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주님의 명령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 병든 자를 고치는 일, 나병환자와 같은 불치병을 고치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일,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과 같은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놀랍게도 이 엄청난 사명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성실하게 수행해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뿐 아니라 모든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주시면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신 것을 봅니다. 데가볼리와 예루살렘, 유대와 수리아 온 지방, 그리고 요단강 건너편에서 온 큰 무리가 병고침을 받고 귀신에게 고통받던 많은 이들이 자유함을 얻었습니다(마 4:23~25).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고,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처럼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강력하게 나타내었습니다. 그들은 능력으로 사탄 왕국을 향해 돌파해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 돌파는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7-8).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강력한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통해 이방 세계로 돌진했고 많은 나라들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사실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강력하게 진군하는 곳마다 언제나 강력한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따랐고 지금 이 시간에도 대추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 11장 초두에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신 주님은 11절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라고 하셨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2절)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 ‘당하다’ 라는 동사는 수동태이기 때문에 본절의 가장 적합한 번역은 ‘하나님의 나라는 공격을 당한다’ 라고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마귀가 즉각적으로 맹렬하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인류의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로 마귀는 불법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를 차지해왔습니다. 예수님은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으며 이미 그분은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말이나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마귀에 대한 전쟁 선포이고, 또한 마귀가 계속해서 주님께 속한 모든 것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것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됩니다. 
누군가가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거나 그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순간에 지옥에서는 알람(경보음)이 울립니다. 지옥의 영들은 그들의 영토를 빼앗길까봐 두려움에 떱니다. 동시에 적들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고수하려고 힘써 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진군시키려 하면 여러분은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공격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더 강하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며, 주님과 초대교회는 언제나 그렇게 했습니다. 
보십시오. 역사상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비록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아직 사탄 왕국을 흔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순간부터 주님은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사탄 왕국의 모든 세력들은 예수님을 대항했습니다. 주님은 하늘 아버지의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이 땅에서 그들에게 더욱 강력하게 공격하심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이 치유받고 위선과 더러운 죄악들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진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진군시킬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침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최초의 침노자이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주님처럼 침노하는 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모든 공격에 굳게 서서 확신을 가지고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처럼 하늘에 속한 자원을 예수 이름으로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왕 되신 예수님의 전권대사이고 너는 단지 지옥에서 온 귀신에 불과하다. 이제 나는 주님의 전능하신 이름으로 너를 대적하노라. 이제 주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내가 여기 서 있으니, 너는 이곳을 떠나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겨야 할 싸움은 바울이 말한대로 ‘선한 싸움’(good fight)이고 믿음의 싸움입니다(딤후 4:7). 이 싸움에는 표적과 치유와 축사(逐邪)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고, 그것이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종류의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도 아닙니다. 그저 친목 단체에 불과한 모임일 뿐입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교회는 표적과 기사와 이적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실 수 없거나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시면, 우리가 천국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매우 담대하게 말합니다. 

마 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0: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여러분 모두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탄 왕국을 공격하는 주님의 군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외적 행동보다 내적 경건의 능력이 나타남 (=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의 삶)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의 또 다른 특징은 그 나라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삶이 외적 행동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외적으로 좋게 보이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내적으로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는 기준입니다. 예컨대 모세의 율법에서는 사람만 죽이지 않으면 내적으로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만일 내적으로 누군가에게 화를 내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이미 살인자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와같은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성에 대해 음욕을 품어도 외적으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음욕을 품기만 해도 여러분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제거해야 하고,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더러운 음욕의 영들을 내어쫓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시간 우리 집을 찾아 온 매우 저돌적인 영업사원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집 안으로 들어와 내가 원하지 않는 물건을 팔려고 합니다. 그는 물건을 사라고 내게 엄청난 압력을 가합니다. 내 마음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물건을 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음 속의 정욕에 대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로 내 안에 있는 이 저돌적인 귀신 영업사원의 멱살을 잡고 집 밖으로 던진 후에 문을 닫아버려야 합니다. 이 영업 사원은 당분간 떠나지는 않고 초인종을 누르고 창문을 두드리며 “제발 좀 들여보내 주세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를 대적할 힘이 생겼습니다. 나는 “안 돼”라고 말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영적 전투이든 전투에 참여하기 전 우리는 이것을 다뤄야 합니다. 귀신들은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면 우리 안에 약한 부분을 찾아 반격합니다. 만일 내가 진실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인 삶을 산다면 전투의 장소는 더 이상 내 안이 아니라 밖이 될 것이며, 귀신들은 나를 피할 것이고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언제나 승리를 경험할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처음 시작하셨고 지금까지 확장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 사역에 부름받았습니다. 산상수훈, 특히 팔복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 백성의 품성을 더욱 함양시킵시다. 
그리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무장하여 사탄 왕국을 향해 공격해 들어갑시다. 우리 앞에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질병이 치유받고 우리의 어눌한 입술에서 새 방언이 터져나올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많은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영광스러운 평화와 공의 그리고 긍휼을 우리의 곤고한 세상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끝에 재림을 통해 모든 것을 성취하시기 전에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하시고, 많은 세대동안 황폐해진 것들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우리 도시들은 마귀적인 행동을 하는 지옥과 같은 도시가 되는 대신에,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위대한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대구서현교회, 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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