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보혜사 (保惠師) (요 14:15-24)

  • 잡초 잡초
  • 345
  • 0

첨부 1


보혜사 (保惠師) (요 14:15-24)  
 
 
1. 제 딸이 캐나다에서 공부하다가 여름방학에 돌아와서 두 달간 함께 생활했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훨씬 밝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또 캐나다로 돌아가야 할 때 제 마음이 좀 안스러웠습니다. 저 어린 것이 아직 부모 품에서 자라야 하는데, 부모를 떠나 낯선 땅에서 어떻게 공부할 건가? 이제 고3인데,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딸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해주는데, 목이 메여 간신히 기도를 끝냈습니다. 물론 거의 매주 한 번씩은 화상통화를 합니다. 인터넷으로 얼굴을 보며 통화하지만, 그것이 어찌 함께 사는 것만 하겠습니까?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도 이와 비슷한 심정을 갖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몇 시간 후에 대제사장이 보낸 하수인들에게 붙잡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몹시 착잡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신 말씀의 일부입니다. 그 핵심은 보혜사 성령님을 너희들에게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달라고 성부 하나님께 구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보혜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가 되십니다. 
보혜사는 헬라어 원어로 paraklētos 라고 하는데, para는 ‘...곁에, ,,,가까이에’ 란 뜻이고, klētos는 kaleo에서 온 말인데, ‘부르다’ 란 뜻입니다. 불러서 곁에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 가까이에 있게 하십니다. 불러서 가까이에 있게 하는 목적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혼자 있으면, 쉬 넘어지고 실수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가까이 두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할렐루야!

이런 의미를 지닌 paraklētos를 우리말로 ‘보혜사’ 라고 번역했습니다. 보혜사란 한자대로 풀이하면 보호하고 도와주는 스승 이란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helper(도우미), counselor(상담자), comforter(위로자), Adovocate(변호인)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24시간 대기조처럼,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필요에 응답하시고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상담자요, 힘들 때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변호사가 되십니다. “아버지, 제가 이 형제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형제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보혜사 되시는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인사합시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부모 없는 자식처럼 텅빈 마음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의 빈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덧입혀 주셨습니다. 성령충만한 제자들은 하나님의 권세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라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사람을 고치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며, 슬픔에 잠긴 자들에게 기쁨을 회복시켜주고, 낙심한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3.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50%를 넘는 기적을 일군 것은 아마 서자로 태어난 주인공 김탁구가 모진 인생이지만,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실력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김탁구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만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차가운 현실에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탁구 아버지 구회장과 부인 서인숙 사이의 서먹서먹함, 그렇게 부유하지만 가정의 분위기는 늘 싸늘한 가운데 힘들게 자라나는 구회장의 아들 구마준, 그리고 두 딸들, 이 모습이 우리 시대의 많은 가정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외로우면, 남편이나 자식보다 말 잘 듣는 애완견을 키우지 않습니까? 
외로우니까 인터넷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마음의 진심을 털어놓을 데가 없으니 술집을 드나들지 않겠습니까? 
2년 전에 우리나라에 토크 바(talk bar)가 생겼습니다. 여자 바텐더들 앞에서 술 마시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털어놓도록 한 술집입니다. 3-4시간씩 앉아서 넛두리를 해도 술집 아가씨들이 다 들어줍니다. 남자들이 술집에 자주 가면 부인들이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내 남편이 많이 외롭구나.’
시인 정호승씨가 쓴 시 제목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처럼, 우리 모두 외로움으로 속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4. 이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17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도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성령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술로 달랩니다. 일에 미치도록 매달림으로 외로움을 이겨냅니다. 그러다가 일중독자가 됩니다. 혼자 방에 콕 박혀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압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너희와 함께” “너희 속에”
성령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을 위로해주십니다. 여러분의 한숨과 탄식을 들어주십니다. 무슨 넛두리를 해도 주님은 다 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술집에서 넛두리하지 않고 주님께 나아가서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풉니다. 돈 한 푼 안 들고, 건강 잃지 않고 문제도 해결되니 일석삼조입니다. 할렐루야!

18-20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떠나가겠지만,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다시 오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지만, 제자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네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있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살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영, 성령께서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과 교제합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이요, 거듭난 삶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호흡하고, 주님과 함께 식사하고, 주님과 함께 일하고, 주님과 함께 자고, 주님과 함께 휴식하고, 주님과 함께 시련을 이겨내고, 주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주님과 함께 사랑을 나눕니다. 

우리는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삽니다. 주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5-6)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떠날른지 모르나,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우리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5. 그런데, 주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우리는 때로 주님 없이 외롭게 나 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왜 일까요? 뒤집어 말하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늘 경험하며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주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계명이란, 주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주님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주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실 환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지난 주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더 많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더 많이 기도하신 분들은 지난 주간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간증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성령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매일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거리가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6. 진리의 성령님,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 오늘도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재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