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신적 신앙을 극복하자 (요일 4:1)

  • 잡초 잡초
  • 252
  • 0

첨부 1


광신적 신앙을 극복하자 (요일 4:1)


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선한 면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칼로 환자를 수술할 때, 그 칼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쓰이게 됩니다. 이 때 칼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다음으로 악한 면입니다. 예를 들어 강도가 칼로 사람을 해칠 때, 그 칼은 생명을 죽이는 도구로 쓰이게 됩니다. 이 때 칼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나쁜 도구입니다. 그래서 칼은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선한 면입니다. 건강한 신앙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복된 인생을 살게 해 줍니다. 이 건강한 신앙은 사람을 저 천국으로 이끌어 줍니다. 다음으로 악한 면입니다. 병든 신앙은 사람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이끌고 참담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 병든 신앙은 사람을 저 지옥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신앙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병든 신앙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광신”(狂信)입니다. 영어로는 “fanaticism”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라틴어 ‘fanaticus’에서 왔습니다. 그 말은 ‘어떤 신성(神性)에 의해서 미친 듯이 날뛰는 열광에 돌입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성을 잃고 비정상적인 짓을 저지르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난 7월 29일자 신문보도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서울 동작경찰서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A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사당동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범행사실을 인정했고,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주기 위해서...” 경찰은 A씨가 정신 병력은 없었는데, 특이한 사항은 전날부터 방언을 하며 괴성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광신입니다. 가정에서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릴 정도로 신앙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사랑해서 천국 보내드린다고 죽였습니다. 그 신앙이 병이 들어 멀쩡한 어머니를 신앙의 이름으로 죽인 것입니다. 
이런 광신은 사람을 구원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게 됩니다. 신앙이 사람을 살리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신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의 생명과 삶에 해가 되는 신앙이 있습니다. 바로 광신적인 신앙입니다. 신앙 안에 광신적 경향이 자리 잡고 있는 신앙 형태를 말합니다. 
이런 광신적 신앙 형태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로, 지나치게 계시에 집착하는 신앙형태입니다.
어떤 분들은 꿈을 꾸고 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계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궁금해 합니다. 

한 번은 어떤 분이 호들갑을 떨면서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대입을 앞에 두고 준비하고 있는데 꿈에 어떤 대학 정문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학 저 대학 정문을 찾아다녀 보았답니다. 결국 꿈에서 본 대학 정문과 같은 것을 찾았는데 바로 서울대학교 정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서울대학교에 보내시겠다는 계시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실력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겨우 입학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 삼아 말했습니다. “요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 다 서울대학입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조금 떨어져 외곽에 있는 대학이 서울 외대이고,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이 서울 상대입니다. 괜히 아이에게 계시라고 해서 부담감 주지 마십시오.”

이렇게 지나치게 하나님의 계시에 민감하다 보면 상식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둘째로, 지나치게 기적을 기대하는 신앙형태입니다.

어떤 분들은 매사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을 믿고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미국 유력 일간지 시카고 선타임스는 시카고 대학이 의사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신앙이 환자치료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설문조사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미국의 의사들 가운데 75%가량은 환자의 신앙심이 병마와 싸우고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며, 환자에게 희망적인 마음상태를 갖도록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33%의 의사들은 종교를 가진 환자들 중 치료를 거부하거나 미루는 등 자신의 건강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이 치료를 방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신자들 중에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미루거나 거부하고 오직 기도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을 과신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치유의 역사를 믿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약을 먹거나 병원 치료를 받으면 믿음이 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을 먹거나 병원 치료를 통해 치료할 수 있는 병을 키워서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셋째로, 지나치게 교회 일에만 몰두하는 신앙형태입니다.

어떤 분들은 오직 교회 일만이 주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 일, 직장 일,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은 등한히 하고 오직 교회 일에만 매달립니다.

어느 부부가 신앙 때문에 심하게 다투다 이혼까지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남편은 일주일에 딱 하루 주일에만 교회 가는 선데이크리스챤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부흥회 참석하고 큰 은혜를 받고 특별히 전도의 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는데 매일 전도하러 다닌다고 제대로 돌보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 퇴근한 후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붙잡고 “광신자!”라고 몰아 부칩니다. 아내는 남편을 “주의 일을 방해하는 마귀!”라고 싸웁니다. 

두 사람 다 문제입니다. 두 사람 다 주의 일에 대해 무지합니다. 남편은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몰라서 무지합니다. 이에 비해 아내는 가정 일도 주의 일임을 몰라서 무지합니다. 특히 다른 일들을 뒤로 하고 교회 일에만 매달리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은 광신적 신앙은 자칫 신앙이 좋은 것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은 신앙의 병적인 현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 문제가 생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광신적 신앙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영적인 일이라고 해서 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있지만 악한 영들의 역사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은 분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신적 신앙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적인 일이긴 해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앙적인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런 광신적 신앙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광신적 신앙은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영적 교만을 물리쳐야 합니다.

광신적 신앙을 가지게 되는 원인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영적 교만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과시합니다.

우선 자기는 남다른 영적 은사가 있는 것처럼 과시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기도를 많이 하고, 영적 체험을 많이 했다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려고 합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환상을 통해 앞일을 내다 볼 수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풍깁니다. 

다음으로 자기는 남다른 이적을 체험한 것처럼 과시하려고 합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기도의 응답을 많이 받았고, 자기에게는 남다른 특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려고 합니다. 

또한 자기는 남들보다 교회 봉사를 많이 하는 것처럼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다른 열매를 나타내 보이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영적 교만입니다. 이런 영적 교만이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광신적 신앙이 되게 합니다.

12세기 이태리의 프란시스는 성자로까지 추앙을 받는 신앙인입니다. 이분은 자기 안에 줄기차게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영적 교만을 물리 쳐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는 바로 시체에서 영적 겸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비결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시체를 어디라고 갖다 놓아보시오. 시체는 어디에 놓여지는가에 대해 불평하지도 않고 또한 자랑하지도 않소. 이런 사람이 진실로 겸손한 사람이오. 그는 그가 어디에 놓여있든지 꺼리지 않소. 그 자리 때문에 자랑하지도 않고 또 그 자리 때문에 부끄러워하지도 않소”

그렇습니다. 갈 2:20 말씀처럼 우리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체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체는 자기를 드러내면 혐오스러울 뿐입니다.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면 결국 추한 꼴만 드러내게 됩니다. 그저 주님만 드러내고자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겸손할 때 광신적 신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둘째, 영적 체험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입니다. 예배의 감격과 기쁨 때문에 큰 감동을 느껴본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와 같은 영적 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 고침 같은 특별한 이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기도 응답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신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영적 체험을 남다르게 한 사람들입니다. 너무도 놀랍고 뜨거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문제는 이 영적 체험이 불순물로 혼합되어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영적 체험에 혼합되는 가장 대표적인 불순물이 욕망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체험케 하시는 영적 체험을 자기 욕망대로 조종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자기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영적 체험을 이용하고 싶어합니다. 

다음으로 영적 체험에 혼합되는 또 다른 불순물은 자기 의입니다. 자기이기에 이런 영적 체험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토록 뜨겁고 간절히 기도했기에 이런 영적 체험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영적 체험이 이런 불순물들이 섞이게 되면 영적 체험이 변질됩니다. 지나치게 영적 체험에 집착하게 됩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이 병들어 광신적 신앙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영적 체험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 영적 체험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둘, 영적 체험 후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영적 체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셋, 영적 체험의 과정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고 늘 회개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주 앞에 서야 합니다.

넷, 영적 체험 후에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체험을 건강하게 관리할 때 광신적 신앙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종의 이중국적자입니다. 천국 백성임과 동시에 이 세상나라의 국민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나라 살림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두 나라 살림 모두가 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베풀어주십니다. 물론 믿음 안에서 천국의 저 풍성한 은혜도 받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성실하게 국가 발전을 위해서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천국 백성으로서 교회를 중심으로 특별한 사명도 맡겨주셨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광신적 신앙은 이 둘은 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국의 삶이 더 중요하고 세상의 삶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천국의 삶만이 의미가 있고 세상의 삶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의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각에 균형이 깨져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시각에 균형이 깨지니까 가정을 돌보는 일에 소홀하게 됩니다.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요셉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 가운데 어린 시절에 종으로 애굽에 팔려가게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이주시키시기 위해 그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의 일을 위해 애굽으로 이주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갑니다. 보디발의 장군 집에서 성실하게 일해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모함을 받아 옥에 투옥되었지만 옥에서도 성실하게 일해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바로 왕의 눈에 들어 애굽의 관리로 발탁돼서도 성실하게 일해서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국무총리가 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이주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세상나라에서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천국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천국의 일을 위해 더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의 일도 세상의 일도 다 주의 일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 일도 가정 일도 직장 일도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광신적 신앙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건강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병든 신앙은 우리를 망치고 우리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특히 광신적 신앙은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영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체험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또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