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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작업 (창 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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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1절 ~ 8절) 

   
지난주 서울시는 ‘뜬구조공법(USEM)'이란 최첨단의 신공법을 이용하여 시청 본관 건물을 공중에 띄워놓고 그 밑에 터파기 공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 엄청난 건물(5,810톤)을 띄워놓고 밑에서 흙을 파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땅속에서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북한의 국제친선전람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묘향산 지하를 6층까지 뚫어 7만 여평을 확보하여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 총 27만 5천 점을 전시해 놓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크기인지 상상이 가십니까? 아름다운 묘향산 밑에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건축물을 땅 깊은 곳에 세웠던 것입니다.

이 땅밑작업과 의미가 비슷한 단어가 있습니다. 물밑작업입니다. 이 물밑작업은 정치계를 위시하여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끊임없이 진행되는 작업들입니다. 사실, 바깥으로 드러난 어떤 일보다 드러나지 않는 물밑작업이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도 이런 물밑작업을 하실까요? 대답은 ‘예스(Yes)’입니다. 하지만 물밑작업이란 이 단어의 뉘앙스가 인간들의 행동과 연관이 되면서 음습한 의미를 주고, 권모술수(權謀術數)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물밑작업을 ‘하늘작업’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작업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 꿈을 꿉니다. 이 꿈과 관련하여 두 가지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첫째는 애굽의 그 많은 점술가와 현인들이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창 41:8). 애굽의 점술가, 현인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저들이 지금까지 답을 못한 것이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너무 답답해서 점술가나 무당들을 찾아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봤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은 그가 꾼 꿈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아 술객, 점쟁이, 술사들을 모두 불러서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하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왕은 자신이 꾼 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적당하게 해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둘째는 이 꿈을 계기로 요셉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술 맡은 관원장이 이 년 전 감옥 속에서 요셉이 꿈을 해석해주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바로는 즉시 감옥에 갇혀있는 요셉을 부르고 꿈을 해석하도록 합니다. 어떻게 이 사건을 설명해야 할까요? ‘하늘작업’입니다. 애굽 왕 바로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명백한 꿈 앞에서 애굽의 술객들로 하여금 마치 사자굴 속의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봉했듯이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히 뇌리에서 사라졌던 요셉을 이 년 만에 그 꿈을 통해 떠올리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의 그 많은 술객들이 해석할 수 없었던 바로의 꿈을 술술 막힘없이 해석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업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셉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바로 왕을, 술객들을,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을 움직이고 계십니까? 그 출발점이 어디입니까? 어떤 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일하십니까? 어떤 자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감옥 속에 던져져 있던 요셉 앞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등장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서 근심의 빛이 있음을 발견합니다(창 40:6).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창 40:7b). 요셉의 처지는 한마디로 ‘내 코가 석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다가가서 저들을 돕고자 합니다. 이 작은 관심, 이 작은 사랑이 하늘작업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며 그들의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고 그를 도와주려 할 때 나를 향한 하늘작업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본능적으로 나보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럴수록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어려운 사람과 함께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다가가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괴로워하는 사람, 얼굴빛이 어두운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말 한마디라도 격려하며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그것이 단초(端初)가 되어 하나님의 하늘작업이 시작될 것입니다.

요셉은 단순히 꿈만 해석해준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창 40:14). 요셉은 간절한 마음으로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부탁했습니다. 사람에게 이렇게 간절히 부탁한 요셉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요셉은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그가 요셉을 떠올립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창 41:9). 술 맡은 관원장을 위한 요셉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한 기도였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작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하늘작업을 하셨습니다. 바로 왕을 움직이시고, 술객들의 입을 틀어막으시고,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까지 감동시키셔서 하늘작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요셉의 무엇을 보시고 이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까?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 마음은 남을 위해 기도해 주는 태도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세겹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작업을 진행하실 것입니다. 어디서 그 출발점이 시작됩니까? 하나님이 내 곁에 두신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이 내 곁에 두신 자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작업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바로와 같은 권력자를 움직이실 것입니다. 술객과 현인과 같은 지혜자들을 간섭하실 것입니다. 배신자들의 마음까지 움직여서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를 맛보는 이번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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