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듭난 새 생활 (벧전 1:13-25)

  • 잡초 잡초
  • 277
  • 0

첨부 1


거듭난 새 생활 (벧전 1:13-25)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지난 주일에 이어 하늘나라에 산 소망을 두고 사는 선택된 나그네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말씀을 통하여 살펴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나그네로 살고 있다면, 그리고 이 땅에서 만나는 시련을 기쁨으로 견디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산 소망 가운데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선지자들도 천사들도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피는 영광스런 구원의 백성을 살고 있다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주께서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받는 자세입니다.  허리를 동이는 것은 일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주인의 명을 기다리는 충성스런 하인의 몸가짐입니다.  치렁치렁한 옷차림으로는 달리기를 할 수 없고 순발력 있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느슨하게 풀어진 채 세상에 정신을 쏟고 허송세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택함을 받은 나그네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부지런히 연구하였고 살폈던 구원을 선물로 얻은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날에 그 구원이 어떻게 완성될까 궁금하여 하늘의 천사들도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영광스런 구원을 선물로 받은 성도라면 마음이 해이하게 풀어진 채 지낼 수 없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단단하게 동여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베드로의 편지를 정리하면 거듭난 새 사람의 생활에 두 가지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거룩함과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내가 수양을 쌓고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고 (레11:44-45),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8).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변함이 없는 말씀을 순종함으로 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거룩함과 사랑에 촛점을 맞추어 오늘 말씀을 상고합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첫째는, 순종하는 자식처럼 살아야 합니다.  1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택하신 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전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이 자기 정욕을 따라 사는 모습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4:3)  전에는 빛되신 주님을 떠나 어두움의 자식으로 살았지만 이제 아버지께 돌아온 작은 아들처럼 순종하는 자녀로 살도록 불러주셨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하였을 때 내 욕심에 이끌려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를 부르신 거룩한 하나님을 본 삼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셨습니다.  세상의 수 많은 민족과 나라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택하여 부르신 하나님은‘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시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 부르고 자기 백성을 삼으셨습니까?  가장 약하고 비천한 자들이었지만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외모를 보시고 부르심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거룩한 백성 삼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조건을 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학력과 재력과 권력 그리고 미모와 가문 등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내세우는 것들을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판단하시는 분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동시에 마지막 날에 심판대에 앉아 모든 사람을 판단하시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은 대단한 공적을 세우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 이름을 세상에 날리는 것으로 우리를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정결한 자녀로 살았는가를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옛 조상들이 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값을 주고 산 구원이 아닙니다.  오직 흠이 없고 점이 없는 어린 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마지막 때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믿음과 소망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있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재판장의 자리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피로 값주고 사신 자녀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물으십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들이 마음의 허리를 단단히 동이고 근신하여 깨어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대적 마귀의 먹이감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5:8).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공포가 아니라 거룩한 경외감입니다.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정결한 백성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로마의 물질 문화와 육체의 쾌락과 번영을 추구하는 이교도의 영향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의 방식과 많은 점에서 대치되었을 것입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말은 구별되어 다르게 산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이라고 나도 덩달아 넓고 쉬운 길을 따라가면 멸망의 길이 될 때가 많습니다.  거룩한 삶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르는 삶입니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좋지 않은 사건과 사고 소식들 중에 그 불법한 일에 연루되었거나 핵심  인물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심심치 않게 밝혀집니다.  그때마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실까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며 아들의 피를 뿌려 우리를 대신 살리셨는데 거룩하게 살아야 마땅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불법과 비리의 핵심 인물로 드러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독실한 불교인이던가 공자 맹자의 제자라는 말은 밝히지 않는데 유독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강조합니다.  반기독교 정서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의 불을 더욱 지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더욱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변명할 여지는 없습니다.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를 선발할 때 엄격한 윤리 기준을 두고 사람을 찾는데 능력은 뛰어나지만 깨끗한 사람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 모양입니다.  요즘은 병역기피자나 탈세자, 위장전입자, 부동산 투기범보다 더 부적당한 대상은 기독교인인 듯합니다.   다른 조건이 다 좋아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거기다 그 사람의 윤리적인 단점이 드러나면 그 즉시 기독교 성토장으로 변합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이중적인 인간들이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팽배합니다.  교회가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 가라지를 함께 뿌렸기 때문이며 그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 알곡들보다 더 눈에 잘 뜨이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교회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먼저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성도이고 오래 믿은 신자들인데 교회 밖에서는 불신자들과 다름이 전혀 없습니다.   도리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간이라는 오명만 들을 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어린 양의 피뿌림을 받아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히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으며 쇠하지 않을 기업이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 땅의 썩어질 것에 마음을 두느라 그 마음이 더러워졌다면 그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거나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손에 이끌리어 어릴 때부터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 뭐합니까?   목사면 무엇이고 선교사면 무엇이며 장로와 권사와 집사면 뭐합니까?   영원한 하늘나라 기업에는 마음이 없고 오직 이 땅에 목을 매고 갖은 술수와 반칙을 일삼으며 불신자들보다 더 타락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겉으로는 천사처럼 은혜롭고 거룩한 말을 읖조리며 그럴듯하게 살지만 그 속은 탐욕과 미움과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하니 어찌 그것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 기업을 바라보는 사람이 이 세상의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들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살고 있다면 내가 과연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힘쓰는 주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의 첫번째 순종의 삶입니다.

두번째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살아야 할 나그네의 삶은 또 무엇입니까?   22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 사랑, 이것이 거듭난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두번째 특징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이라 하였으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겉으로 사랑하는 척하는 거짓 사랑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랑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입니다.   

내가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나의 선택이나 나의 공로가 아닌 것처럼 내가 주의 자녀로 거듭남 역시 나의 선택이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임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중생하게 만드셨습니다.  내가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피붙이가 된 형제를 거짓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답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그네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할수록 이 사랑이 더욱 중요합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에 고린도전서 13장을 공부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상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힘주어 말씀합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를 가지고 일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이 하는 모든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 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섬길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그 사랑이 모든 은사와 섬김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 안에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의 말처럼,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요일3:10하; 4:7).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고, 거듭남의 기쁨과 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반증입니다.  사랑이 기초되지 않는 설교, 사랑이 없는 기도, 사랑이 사라진 찬양과 땀흘리는 봉사… 이 모든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의 자랑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바울처럼 예수님과 한 시대를 살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받들어 살던 사도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사랑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애틋한 남녀의 사랑이나 친구간의 친밀한 우정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무조건적인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줌으로 남을 살리는 그런 사랑이 우리 주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보이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를 사랑했습니까?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사랑을 조건 없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오직 순종만이 있었습니다.   진리되신 우리 주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진리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더러운 죄악으로부터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그 순수한 영혼으로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의 할 일은 광야의 나그네 길에 서로 사랑하고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새 사람은 주 안에서 서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새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사도 요한의 위대한 선언을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도다’(요일4:7-11)

조금 뒷 부분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19-21)   

우리는 이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 나그네의 삶을 두려움으로 살고 있습니까?    사랑해야 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견딜 수 없는 분노로 치를 떨며 마음으로 열 번도 더 살인하였던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러고도 주일이면 예배당에 나와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구한다면 내가 얼마나 두꺼운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편리한대로 풀이하여 나의 주장과 행동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위하여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형제들을 섬기고, 우리 교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뜨거운 사랑으로 영접하며, 모든 이들과 함께 주 안에서 참 사랑으로 교제합시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닙니다. 썩어질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육신이고 썩지 아니할 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중생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하신 말씀처럼 우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입니다.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힘을 얻고,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까?  

거룩함이 없는 사랑은 맹목적이거나 정욕적인 사랑이 되고 사랑이 없는 거룩함은 건조한 종교적 교리와 외식행위가 되기 쉽습니다. 거룩함과 사랑, 믿음과 행함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면서 동시에 사랑이심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은 공의와 사랑을 함께 실천하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거듭난 새 사람입니까?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가져오실 은혜를 전심으로 바라며 살아갑시다. 베드로는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더 자세한 실천방식을 이 다음 장에서 계속 말씀합니다. 한 주간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며 기쁨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