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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축복됨 (갈 4:4-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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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축복됨 (갈 4:4-7, 18~20)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가 내 삶의 전부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똑바로 봐야 한다. 우리는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을 때 의로워지고 또한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을 경험한다. (갈3:5)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신 사람들이다. 

그러면 신분면에서, 권리면에서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1. 종에서 아들이 된 자들이다. (갈4:6)

우리는 본래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에 있었던 종이었다. 율법 아래에서 신음하는 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속량하셨다. 롬8:4의 말씀과 같이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나의 의로 대신할 수 없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예수의 십자가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다. 

갈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다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제 종의 멍에를 예수께서 벗겨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자가 되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주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는 신분이 바뀌었다. 종의 신분에서 자유자, 아들의 신분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종에서 아들로서의 신분의 변화, 고아와 같은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나타났다. 이 신분의 변화는 주체할 수 없는 은혜다. 주체할 수 없는 사건이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 사건보다 더 큰 기적의 일이다. 나는 종이 아니다. 이제부터 아들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이다. 자신의 신분이 종의 신분인줄 알면 안된다. 나는 아들이다. 자랑스런 하나님의 아들이다.
  

2. 상속자가 된 아들이다. (갈4:7)

갈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리스도인은 신분만 변한 것이 아니다. 그 신분에 걸맞는 축복의 권리가 주어져 있다. 그것이 유업, 즉 상속권이다.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아들이 되었다. 맏형이신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양자로 입양되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나를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권리가 주어졌다. 법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이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상속을 받는 것이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려 주실 유업은 얼마나 놀라운 것일까? 맏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상속은 무한한 영광의 나라다. 더군다나 물려 받을 상속물은 틀림없이 누리게 되는 유업이다. 

로마의 법에 나와 있는 양자의 법은 상속에 대한 특별 보호법이 있다. 로마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집에 들어온 종을 양자로 삼으려면 본인에게 묻고 부모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렇게 해서 양자가 되기를 수용하면 로마 법정에 가서 양자 호적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주인은 아버지가 된다. 양자가 되어 살다가 주인의 집에 어려움을 당해 폐가하게 되면 아들에게 물려줄 유업이 없게 된다. 그러나 아들에게 줄 것은 없어도 양자는 법적 보호 장치가 되어 있다. 빚쟁이에게 다 내어주는 일이 일어나도 양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가져갈 수 없다. 그것이 양자가 누리는 보호법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을 자가 없다. 우선 순위로 상급을 받고 아버지의 상속자가 된다. 이 얼마나 확실한 보장인가?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양자로서의 축복을 누리는 권리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신분만 바뀌는 것이 아니고 권리가 주어져 있다.

어떤 고아원에 있는 아이가 어느 날 양자를 두고 싶어하는 사장님 집에 입양되었다. 자상한 아버지는 불쌍한 고아를 데려다가 호적을 올리고 잘 준비된 방과 이불, 음식을 주면서 “다 너의 것이다.”라고 하였다. 멋진 정원과 수영장, 앞마당에서 키우는 토끼 한 마리까지도 다 너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나는 너의 아버지다!

그런데 이 아이는 포근한 침대에 누워 방안의 서재와 온갖 좋은 것들을 바라보았다. 어느 한 가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왜 저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지...’ 믿어지질 않았다. 신분이 변하고 소속이 변하고 법적 권리가 변하여 양자가 되어 상속자가 되었는데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이튿날 조심스럽게 일어나 사장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모든 것을 갖고 계신 아버지이지만 그에게는 아저씨였고 이웃 사장님일 뿐이었다. 

우리가 믿지 못하면 아들이면서도 종처럼 산다. 권리를 지닌 상속자이면서도 종처럼 산다. 아버지의 집에 머물면서 아들로 살지 못하는 불신의 삶, 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 일인가? 우리 모두는 아들이다.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다. 그리고 하늘의 모든 기업을 물려 받는 상속자이다. 이 법적 권리를 뺏을 수 있는 자는 없다.
  

3. 성장하고 성숙해야 할 아들이다. (갈4:19)

그리스도인은 신분이 아들이고 권리가 보장된 아들이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지만 그 아들이 존재면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교회의 기쁨이고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주님의 기쁨이 되려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야 한다. 아주대학교 병원에 많은 환자들이 찾아가는데 성장하지 않는 문제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성숙해야 하는데 지혜와 인격이 항상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키는 커지는데 정신적으로 성숙해지지 않는다. 이것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기쁨이 되려면 아들이 아들답게 성장해야 한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그렇다. 자녀된 아들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된 이후 그리스도와 닮은꼴이 되어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눈, 예수 그리스도의 향취와 기름이 그리스도인에게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참된 성장이고 성숙이며 그리스도인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성숙해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는 특별한 아들들이다. 왜 자라야 하는가? 엡4:14~15의 말씀을 보면 ① 어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② 유혹과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다. ③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는 신분을 바꾸어 주셨고 권리를 보장해 주셨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계속 자라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오늘까지 어린 아이같이 아이 신앙으로 응석 부리고 자기 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자라나자. 오늘까지 이렇게 저렇게 별 것도 아닌 일에 흔들리고 요동하는 신앙 생활이었다면 흔들리지 말자. 심지를 굳게 박은 뿌리 깊은 나무가 되자. 싸우고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을 뒤로 하고 사랑이 나타나는 참된 생활을 하자. 아들된 것 때문에 감사하고 상속자가 된 것 때문에 기뻐하는 아들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참된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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