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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라지 비유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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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 비유 (마 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잡초와의 전쟁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알아보았더니, 금년에는 비가 자주 내려서 다른 어느 해보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그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무척 힘이 들어 전쟁이란 말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저도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 묘소에 벌초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 말처럼 잡초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칡넝쿨이며 풍년대 라고 하는 잡초들이 얼마나 무성한 지, 벌초를 하고 난 후 며칠 까지 힘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잡초는 누가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고 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그 성장 속도가 빠르고 번식 능력의 위세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잡초가 아무리 잘 자라고 그 번식 속도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잡초는 고작해야 일년초입니다. 찬 서리가 내리고 흰 눈이 오면 잡초는 다 죽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잡초처럼 잘 자라고 일시적으로는 잘 될 수가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의 겨울이 오면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종려나무나 백향목은 일년초와 달라서 성장하는데 여러 해가 걸리지만, 그러나 성장하면 많은 열매를 맺고 귀한 재목으로 아주 요긴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자녀들이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고, 백향목처럼 자라서 귀한 일군들로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평범한 가르침으로 즉 당시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써, 하늘나라의 깊은 비밀을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놀라운 하늘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통해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통해서 오늘날 지상에 있는 교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지상 교회의 특징은 혼합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있고 심지어는 가라지 까지 밤에 사탄이 와서 뿌려 놓고 갑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문제점입니다. 

1. 좋은 씨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36절 이하에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주님의 해석이 나오는데, 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님이요, 좋은 씨란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렸다는 말씀은 현재 우리 삶의 위치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고, 주님께서 처소 처소에 심어 놓은 자리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지금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것은 주님이 자기 밭에 의도적으로 심어 놓은 줄로 믿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반드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곡식이 열매를 맺기까지 때로는 비바람이 치기도 합니다. 가뭄이 오기도 합니다. 메뚜기 떼가 몰려오기도 합니다. 병충해로 인하여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곧 우리 신앙의 결실을 방해하는 고난의 요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추수 때 열매를 내놓을 수 없다면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2. 가라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가라지는 밀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밀의 종류가 아니고 독보리의 일종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독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라지를 먹게 되면 흔히 구토증이 생기고 심하게는 생명의 위험성이 있을 만큼 아주 독한 그런 풀입니다. 가라지는 크기가 밀보다 좀 작은 것이 차이점이고, 자라나는 그 자체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가라지가 자라날 초기 단계에는 전문가들도 잘 구별하기가 어렵고, 열매를 맺게 될 때 비로소 구별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라지는 뿌리가 밀 주변으로 번져 나가기 때문에,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면 밀이 함께 뽑혀져 나오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라지를 제거하는 데는 굉장히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라지는 소량이 음식에 들어가도 쓰고 불쾌한 맛을 냅니다. 그래서 추수 때 미처 가리지 못한 것은 제분소에 가기 전에 여자들이 넓은 바닥에 펼쳐 놓고 골라냈습니다. 가라지는 비록 모양이나 크기가 밀과 비슷하지만 색깔이 짙푸르러서 눈에 띕니다. 그래도 간혹 섞일 때가 있지만, 장차 알곡과 가라지를 고르기에 전문가인 천사들은 마지막 날에 틀림없이 가라지를 골라낼 것입니다.

3. 누가 가라지를 뿌립니까?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바로 우리의 원수 마귀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밭에다 고의적으로 가라지를 뿌리는 일은 실제적으로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인도에서는 자기 원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위협이 “네 밭에 가라지를 뿌려버리겠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에덴동산을 시기하여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그 마귀는 지금 내 심령과 내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언제 무서운 독밀 곧 가라지를 뿌릴지 모릅니다. 

원수 마귀가 왜 곡식밭에다 가라지를 뿌립니까?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먼저 마귀는 자신들의 열매를 위한 씨를 번식시키기 위해서 가라지를 뿌립니다. 사탄은 자신들을 추종할 더 많은 군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천국의 열매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밭에 있는 가라지는 곡식의 거름을 다 빼앗고, 그래서 성장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원수 마귀는 주님을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열매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천국 창고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가라지를 뿌려 대는 것입니다.

4. 언제 가라지를 뿌립니까?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잠잘 때가 언제입니까? 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잠을 잘 때에, 밤에 사탄은 와서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밝은 빛 아래서 일하시지만, 사단은 어두움 가운데서 활동합니다.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밤에, 실직하여 고통을 당하면서 애쓰는 그 밤에, 이런 저런 시험의 밤에 사탄 마귀는 와서 가라지를 뿌립니다. 마귀는 어두울 때 우리의 영이 어두워 잠잘 때, 곧 우리가 신앙의 잠을 잘 때 의심의 가라지 불신앙의 가라지를 덧뿌리게 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기도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일어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잠자고 있을 그 때에, 기도하지 아니한 그 때에 사탄은 가라지를 자꾸 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영혼이 잠자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만이 사탄이 가라지를 뿌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5. 곡식과 가라지는 함께 자랍니다.

가라지는 잡초 속에 자라지 않고 좋은 곡식 가운데 자랍니다. 가라지는 풀숲이나 자연적인 들과 산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꼭 좋은 곡식 가운데 전혀 구별하지 못하게 자랍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불신자들 세계에 들어가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꼭 잘 믿는 성도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꾀이는 것입니다. 잘 믿는 신자들에게 가서 계속 부정적인 말로 기존 진리를 비판하는 것으로서 그들은 존재합니다. 그들은 좋은 곡식 사이에 교활하게 위장하고 살아갑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세상은 천국의 은혜와 지옥의 악취가 한데 섞인 혼동되어 있는 회색 지대입니다. 가라지와 곡식은 같은 밭에서 자랍니다. 같은 농부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같은 영양을 먹고 자랍니다. 모든 여건이 동일합니다. 그러나 씨종이 다르기 때문에 자란 후에는 엄연히 구별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같은 진실한 성도들도 있지만, 가라지와 같은 거짓 신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알곡 신자와 가라지 신자도 반드시 구별될 때가 옵니다.

6. 교회의 완전성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씨를 뿌려 놓은 교회 안에도 사단은 가라지를 뿌려 놓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중에 완전한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초대 교회 안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담의 집에는 가인과 아벨이 섞여 있었고, 이삭의 집에도 에서와 야곱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 악한 자의 아들들이 나타나도 당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가라지가 좋은 곡식 가운데 있을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7. 형식과 모양만으로도 훌륭한 신앙인 인척 할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향한 봉사와 전도도 하지만, 내적으로는 냉담한 육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곡식도 가라지 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위장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자고’라고 하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다른 새의 흉내를 잘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새가 알을 품고 있으면, 이 자고 새는 낳지도 않은 알을 품은 체 합니다. 그러나 다른 새는 새끼를 까지만, 자고새는 새끼 까는 것까지 흉내를 내지는 못하고 낭패를 당합니다. 이처럼 신앙을 모양만 내고 비슷하게 흉내만 내다가는 마지막 날 지옥 불에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8. 가라지는 잠시 동안 그대로 둡니다.

본래 주인은 좋은 씨를 뿌렸으나, 원수가 가라지를 뿌림으로 자라면서 점차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우리가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인은 “가만 두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심판 때 곧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 두어라”는 말씀은 심판을 안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추수 때 주님 자신이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까지는 교회 안에 곡식과 가라지가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까지 가라지를 남겨 두는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1)곡식과 가라지가 유사하여 착오로 뽑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밀과 가라지는 전문가들까지도 잘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외식하는 자로 정죄해야 할 사람도, 더 깊은 곳에 생명의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날 수 있고, 의인으로 인정받던 사람 속에 깊은 거짓이 있어서 최후에 쭉정이로 판명될 수도 있습니다. 진실이 미숙한 삶 때문에 정죄되고, 외모의 진실성을 표방하는 기술 때문에 의인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성경은 말씀 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2)뿌리가 한 곳에 얽혀 있어 곡식이 상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밀은 보통 밀보다 뿌리가 대체로 더 강합니다. 구별도 힘들지만 구별했다고 하여 쉽게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라지를 뽑을 때 오히려 그냥 두는 것보다 곡식에게 더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원수가 그 불타는 시기심과 악의를 가지고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릴 때, 쉽게 뽑아버릴 만큼 적게 뿌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가라지를 다 뽑으면 그 밭은 훤하게 곡식까지 뽑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라지와 같은 남편을 뽑으면, 신실한 그의 아내와 착하게 성장하는 자녀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가라지와 같은 악한 자식을 죽이면, 선한 그의 어머니가 고통을 당합니다. 가라지와 같은 악한 기업가를 뽑아 버리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그 직원이 고통을 당하고, 그 가족들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악행하는 가라지와 그의 가족들 중에는 의인이 있어 서로 뿌리가 심각하게 엉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주님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그냥 두시는 하나님에게는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9. 반드시 추수 때가 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번성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합니다. 속이는 자가 다스리며 정직한 자가 눌려 신음합니다. 불의한 자가 의인이 되고 진실한 자가 정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급한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갔느냐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그의 공의 칼은 영원히 잠자지 않습니다. 반드시 추수 때가 옵니다. 추수 때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말합니다. 성경 전체에 약 360번 정도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어서, 평균 3장에 한 번씩 종말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역사의 사건과 인류의 모든 개인적인 행위와 동기는 그리스도의 표준에 의해 결판나게 됩니다. 그 날이 주의 날 즉 성도들에게는 찬란한 영광의 날이지만, 악인들에게는 무서운 환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성도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모든 가라지에 대하여 인내해야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더 이상 가라지와 함께 있고자 하여도 있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속히 악의 역사를 끝내고, 의의 역사 자유와 평화의 역사를 이룩하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성급한 욕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교훈은 추수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라지를 싫어하시지만, 자기가 사랑하시는 좋은 밀 때문에 추수 때까지 참으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들의 분리는 완전합니다. 추수꾼들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수천 가마니 곡식 중에 있는 한 알의 가라지도 여지없이 골라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눈을 피해 하나님의 곡간에 들어갈 가라지는 없습니다. 선인의 무리 중에 있다고 모두가 선인은 절대로 아니 듯,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있다고 모두가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염소가 양 무리 속에 섞여 있다고 양인 것 같이 안심하면 안 됩니다. 많은 인조보석이 있습니다. 껍질만 맥기 칠한 것도 많습니다. 가짜일수록 위장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위장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불꽃같습니다. 그 누구도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가라지의 최후는 파멸입니다. 못된 가라지는 결국 불에 태워지듯이, 악인은 여지없이 가차 없이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영원한 불못 속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알곡은 모아서 하늘의 곡간에 간직할 것입니다. 좋은 곡식은 타작하고 풍구질하는 연단은 있어도 주인의 창고에 들여지듯, 알곡 같은 성도들은 비록 세상에서 모진 비바람과 많은 시련을 겪는다 할지라도, 최후에 하나님의 천국 창고에 다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교훈을 찾아보았습니다. 좋은 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이 씨를 뿌리는 분은 인자이신 예수님이시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이 씨를 뿌리는 자는 원수 마귀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어느 때에 가라지를 뿌립니까? 밤에 곧 신앙의 잠을 잘 때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함께 자랍니다. 그러므로 현실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또한 곡식과 가라지는 매우 비슷합니다. 신앙을 형식과 흉내내는 모양으로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가라지를 지금 당장에 뽑아 버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곡식에 대한 피해 때문입니다. 알곡과 같은 성도들이 가라지와 엉겨 있어, 가라지를 뽑게 되면 의인들이 큰 슬픔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추수 때는 오고야 맙니다. 그 때에 가라지는 지옥의 풀무 불에 던져져 완전히 타지도 않고 슬퍼하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추수에 대비해야 됩니다. 추수 때를 어떻게 대비해야 됩니까?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내 마음속에 불신앙의 가라지, 탐심의 가라지, 의심의 가라지, 쾌락의 가라지가 뿌려져 있지는 아니한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곡식은 곡식이로되 알알이 잘 영글은 알곡인가, 아니면 곡식의 모양은 다 있는데 그 안에 알이 제대로 차 있지 못한 설익은 쭉정이는 아닌가 우리 자신을 반성해야 됩니다. 

흔히 현대를 일컬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확실치 아니한 시대에 확실치 아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불확실한 시대, 불확실한 삶 속의 확실한 것 즉 ‘사람은 한 번 죽는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라는 두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에는 모르는 것 셋, 아는 것 셋이 있습니다. 

전자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라는 것이요, 후자는 ‘반드시 한 번은 죽는다.’ ‘아무도 함께 가지 못한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알곡 신자가 되어서,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언제 여러분들에게 지상 최후의 순간인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한 분도 빠짐없이 천국 창고에 다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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