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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의 가치 (삿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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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가치 (삿 2:6-15)


한 스승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제자에게 보석을 하나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제자는 먼저 야채 가게에 들러서“이 보석을 드리면 내게 무엇을 주겠소?”하고 물었더니“배추 두 포기를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대장간으로 갔습니다. 대장장이는 평소 보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꾀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의 했지만 제자는 거절하고 보석상으로 들어갔습니다. 보석을 유심히 살펴본 보석상 주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이 보석은 돈으로 계산할 수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제자는 이 말을 듣고 스승에게 돌아와 자초지종 설명했습니다. 제자의 설명을 들은 스승은 말하기를“사람은 자신을 하찮은 배추 두 포기에 팔아넘길 수도 있고, 얼마만큼의 돈을 받고 팔아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가치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비유해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어떤 이는 배추 두포기, 어떤 이는 몇 푼의 일당, 어떤 이는 돈으로 계산할 수없는 엄청난 가치로 여깁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는 생명보다도 귀하게 여기기에 믿음을 위해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되기도 합니다. 

一.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가치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섬기지 않는 것의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내어 쫓아내고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이란 사람이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세워둔 신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복을 줄 것으로 알고 섬기며 복을 빌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배추 두포기 정도로 생각한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결과를 통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것에 대해 본문 11절~14절에 기록하기를“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1~2계명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이 1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5절에는“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2계명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의 결과에 대해 출애굽기 20장 5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후손 3~4대까지 저주를 받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잘 섬기면 후손의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돌려드릴 사랑을 빼앗기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미움 받는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전쟁에는 위장술이 있습니다. 군인들의 복장을 보세요. 나뭇잎과 유사합니다.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들의 옷을 보세요. 사막의 색깔과 비슷합니다. 스키부대의 군복은 흰색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전략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교묘하게 숭배하도록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완고한 마음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23절 말씀에 기록하시기를“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상식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완고한 마음은 사신 우상 앞에 절하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이 덫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완고한 사울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사울은 가문이 몰락하는 처참한 패망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내 경험도 버려야 합니다. 배운 지식도 버려야 합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가 하나님의 어리석음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무형적 우상숭배는 탐심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하셨습니다. 

심리학에“대체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의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의자가 하나만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탐욕이 자리한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탐심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재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교회에 와 있을지라도 이권과 관계된 경우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버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우상숭배의 결과는 패망입니다.

본문 14절~15절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 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파시매 대적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정복했던 대적에게 도리어 정복을 당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재앙이었습니다. 괴로움이 극심했습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불행이었습니다. 멸망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들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상숭배를 일삼는 민족이나 국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二. 자녀에 대한 신앙유산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습니까? 그 까닭은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의 부재였습니다. 자녀들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시켰더라면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18절~21절에 말씀하시기를“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 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본문 7절과 10절에 밝히기를“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아를 섬겼더라...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아를 알지 못하며 여호아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후손들에 대한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후대들의 가슴속에 그 소중한 신앙심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현재 받아 누리고 있는 축복에 도취되어 신앙의 소중함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심리학자들이 말한“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의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대체의 법칙”과 같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녀들에게 신앙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금지옥엽(金枝玉葉)같은 우리자녀들에게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기도록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축복의 유산입니다. 이것은 성공유산입니다. 이것은 행복유산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유산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유산이겠습니까?

1. 주일 예배의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학생은 책가방을 들고 날마다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학생의 큰 표징입니다. 만일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극장이나 오락실로 들어간다면 성실한 학생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면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표징을 자녀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에스겔서 20장 12절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내가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하셨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표징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만 일방통행처럼 드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감사를 올려드리고, 정성을 올려드리고, 찬송을 올려드리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반면 동시에 하나님께서 오시는 길도 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하늘에서 교회로 내려오는 길이 있습니다. 성령의 생수를 내려주시고,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아이디어도 내려주시고, 능력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는 천사가 바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천사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기록하기를“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배시간에 천사가 우리의 기도와 감사와 찬송을 가지고 올라가서 하나님께 드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말씀과 응답과 사랑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주일 예배 시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은 언제 어디서든지 자기의 일은 뒤로 하고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너무 사랑하셔서“내 종 다윗, 내 종 다윗”하시는 말씀이 성경에 800여 번이나 나옵니다. 그 다윗은 안식일은 물론이고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씩 반드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게을리 했던 롯은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에서는 축복의 반열에서 밀려나갔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사울 왕은 패망했습니다. 반면 정성을 다해 예배드렸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은 승승장구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배가 성도의 표징이요, 예배가 내 영혼을 잘되게 하여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예배가 내 사업을 복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업을 위해서도 예배에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승리자는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되며, 신앙생활의 승리자 반드시 삶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2. 기도의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식사시간에 기도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아서 피우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주여! 하고 하루를 주님께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를 살고 잠들 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아, 피곤하다.”하며 양말도 벗지 않고 잘 수 있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기도 방석에서 하루를 회개하면서 오늘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듭니다. 

개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따라갈 때 누가 참 주인인지 몰라도 갈림 길에 서면 누가 주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개는 주인이 가는 쪽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잘 몰라도 주일이 되면 알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은 교회로 오고, 세상 사람은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 에 오고, 또 날마다 때마다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된 큰 증거입니다. 조지 워싱턴 장군이 미국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합니다. 그는 일생 한 번도 주일을 범한 적이 없는 주일성수에 성공한 사람이고, 또 기도의 용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허쉬 계곡을 통과할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장래도 불안했고 적의 총탄이 날아와서 언제 자기의 인생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계곡을 건너다가 숲 속에 들어가서 기도드렸습니다.“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미국을 도와주세요.”하며 얼마나 간절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 드렸던지, 그 기도소리가 들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들렸습니다. 

들에서 일하던 농부가 소리쳐 기도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가 저렇게 기도를 드리는가 궁금해서 가보니, 워싱턴 장군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가드라는지 뺨에는 땀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때 농부는 큰 감동을 받고 아내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여보, 조지워싱턴 장군은 반드시 성공할거요. 우리는 반드시 독립이 될 거요.”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나는 보았소. 나는 워싱턴 장군이 기도드리는 것을 보았소. 뜨겁게 기도드리는 것을 내가 보았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워싱턴장군의 기도를 들어 주실 거요. 그는 반드시 성공할 거요. 틀림없어요.”그 농부의 예언은 딱 맞았습니다. 워싱턴은 독립 운동에 성공했고 미국 대통령으로도 성공했고 신앙인으로도 성공해서 오늘까지 미국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있는 사업은 무너지는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나고, 위하여 기도하는 보모가 있는 자식은 절대로 꺾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무리 바빠도 기도 시간은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 여러분 남편의 기업, 자녀의 기업, 가정의 기업을 위해 하나님 앞에 호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3. 순종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복된 효자는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불효자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복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의 종이 하는 거룩한 사역에 힘써 협력하며 순종합니다. 

젊은 청년 두 사람이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를 찾아 왔습니다. “원장님, 우리는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신앙을 배우고 수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이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 때 프랜시스는 한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채소밭에 데리고 가서 채소를 다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잎을 땅에 묻고 뿌리는 하늘을 향해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프랜시스가 시키는 대로 거꾸로 심었습니다. 잎을 흙 속에 묻고 뿌리를 위로 향하게 다 심었습니다. 다른 한 청년은 똑똑한 청년이었습니다. “아하, 프랜시스가 신앙은 좋고 인격은 훌륭하지만 농사짓는 데는 무식하구나. 배추를 심으려면 뿌리를 흙에 묻어야지, 잎을 흙 속에 묻고 뿌리를 위로 향하게 심으면 죽지.” 그래서 그는 불순종하고 모두 바로 심었습니다. 얼마 후 프란시스 원장이 왔습니다. 거꾸로 심은 청년에게“자네는 합격일세. 오늘부터 우리 수도원에 들어오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심은 청년에게는 “자네는 자격이 없네. 불순종하는 자는 우리 수도원에 필요 없네.”하며 내쫓았습니다. 

어디서든지 순종하는 사람은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똑똑한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제일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주님을 사랑할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순종하느냐, 어디까지 순종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순종의 정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2)고 하셨습니다. 상식 밖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은 순종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이 망했습니까? 아닙니다. 죽을 이삭이 살게 되고 아브라함은 더욱 빛나는 복을 받은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망하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 도와주시므로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망하는 것 같아도 반드시 홍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사람도 올바른 사람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점령했던 대적에게 도리어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 원인은 세상 부귀에 도취되어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전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귀한 것이 신앙유산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신앙유산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행복이 있고, 삶의 성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날 주일을 성수하는 것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리는 것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을 사랑하는 것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물 십일조 드리는 것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에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에게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부모님이 먼저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후손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 위에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0-09-25 20: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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