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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을 받는 길 (신 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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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는 길 (신 30:9-14) 

 
자녀들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참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부모들은 몹시 화가 나게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할 때는 정말 화가 나지 않습니까? 설령 자녀들이 잘못했을지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빌면 대체로 부모들은 용서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를 내는 까닭이 더 이상 잘못하지 않도록 바로 잡아 주려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뉘우치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지 않습니까?

또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순종할 때 부모들은 더 좋은 것을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육신의 부모들이 그렇다면 하늘 아버지께서는 과연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늘 아버지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비록 죄를 범하면 벌을 주시지만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 같으면 은혜와 복으로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늘 아버지시라는 말입니다. 

오늘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하여 진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앞으로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백성들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잘못된 길로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을지라도 다시금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는 이 말씀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참 소망을 주는 귀한 약속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 말씀을 보면 집을 나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을 염려하며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아들이 돌아올 길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직 거리가 멀지만 아버지는 금방 그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 나갑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으면 유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쓰고 집을 나간 그 아들을 달려 나가 맞이합니까? 바로 그 마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선지자 이사야도 소리 높여 외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아무리 악할지라도, 아무리 불의한 일을 저질렀을지라도 그 생각과 행동을 버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는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모세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것입니다. 모세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 30:11) 하나님 말씀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킬 수 없는 명령을 내리고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폭군과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30) 주님이 요구하시는 멍에는 쉽습니다. 그 짐은 가볍습니다.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계명들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명들이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 말씀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키기 어려운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을 따르려고 할 것 같으면 성령을 통해서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도와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 말씀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손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2~14) 그 말씀은 바다에 있거나 하늘에 있거나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심히 가까워서 우리의 입과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철학이나 과학과 같은 이 세상의 학문들은 전문가들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다가갈 수 있고 또 그 말씀을 따라서 행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하나님 말씀은 친근하고 대하기가 쉽습니다. 시편 기자도 복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접하기 어려우면 주야로 묵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곁에 두고 묵상할 수 있도록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하나님 말씀을 더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길 것 같으면 항상 그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찍이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마음 판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돌 판에 쓴 것이 아니라 마음 판에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안에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늘 동행하며 그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주님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관계 같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몇 년전에 현역 헌법학 교수 중 최고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한양대 법대 양 건 교수가 제헌절을 하루 앞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그 놈의 헌법 때문에...’라는 발언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공개적으로 ‘그 놈’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패륜적 발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사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소산입니다. 6월 항쟁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사건 아닙니까? 그리고 그 6월 항쟁의 가시적 결실이 지금의 헌법이고 이 헌법 때문에 노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의 그 발언은 선을 넘어도 너무 심하게 넘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매우 성숙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그런 발언에 쉽게 동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독립적인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심히 걱정이 된다고 양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법은 지킬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그 법을 지킬 때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가 확립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소는 누가 뭐래도 복을 받고 받은 바 그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아 누리도록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지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할 것 같으면 주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뿐만 아니라 그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신령한 복과 은혜를 지금 여기서부터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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