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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와 자녀 관계 거듭나기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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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관계 거듭나기 (엡 6:1-4)


어느 목사님께서 쓰신 책에 교인들이 가장 마음이 아파서 교회에 오기 싫은 달이 "5월"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 주일]에는 자식 없이 사는 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어버이주일]에는 부모를 잃은 이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이 눈물나는 주일이고 [부부 주일]은 혼자된 사람들이 가슴 아픈 주일이며,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이들이 힘드니 5월이 가장 예배드리러 오기 싫은 달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부담스러운 곳입니다. 말씀대로 사나 안사나 꾸미고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 가정의 행복을 포기한 분이 계십니까? 안됩니다. 그것은 신앙을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천국 같은 가정의 소망을 되찾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정말 모든 것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복음의 능력은 부부 관계 분 아니라 부모 자녀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부모 자녀 관계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까? 마귀의 역사입니다. 부모 자녀 관계가 깨어지면 인류는 마지막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부모 거역’하는 심각한 풍조가 만연하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딤후 3:2 “말세에 고통의 때가 이르리니 ...부모를 거역하며”
모든 축복이 다 막힙니다.
2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부모 자녀 관계에 대하여 주신 말씀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아비들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부모라 할지라도 “교회 다니지 마라, 성경 읽지 마라.” 하는 말은 순종하면 안되지만, 다른 것은 다 순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모에게 순종하려 해도 우리 힘으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쓴 글입니다. [사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른들(부모들)을 추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부모에게 불효자는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는 다 효자입니다. 돌아가신 분들과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얽힐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살아계신 부모님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계신 부모님에 대해서 미묘한 이중 감정에 얽혀 시달립니다. '부모는 끝없이 파고들고 싶고, 끝없이 찾고 싶은 고향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는 어떻게 하면 멀어질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살아계신 부모님들과는 감정적으로 얽힐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 여러분은 공감하십니까?

어떤 문화권에도 부모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 문화는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도리는 양심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느 사회나 효자보다 불효자가 더 많습니다. 
‘말세야 말세, 자녀는 당연히 부모에게 순종해야지, 너를 낳아준 분이잖아, 네가 어릴 때 어떻게 길렀는 줄 알아?’ 말은 맞는 말인데, 그런다고 순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분노하고 섭섭하고 낙심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힘든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병들어 있으니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배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결심으로 안됩니다. 노력해서 안됩니다.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동안 주의 교훈과 훈계를 ‘교회에 다녀야 한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세상 공부는 학교에서 배우지만 성경 내용도 배우게 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생활을 가르친 것이지 주의 교훈과 훈계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주의 교훈과 훈계는 ‘속죄의 축복,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기쁨, 죄에서의 자유함,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예수님과 동행함.’입니다. 이것들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권사님 한 분이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불만이 가득하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말도 잘 안 듣고, 머리도 물들이고, 이상한 옷을 입고, 일찍 들어오라고 하면 더 늦게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딸이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현관에서 맞닥뜨렸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은 옷을 한 채 전혀 회개하는 기색도 없는 딸을 보고 권사님은 불같이 화가 나 딸의 뺨을 세게 때렸습니다. 그때 딸이 두 눈을 부릅뜨고 부들부들 떨면서“아버지, 나는 아버지에게서 한 번도 예수님의 모습을 본 일이 없었어요!.”하고 확 쏘아붙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대드는 딸에 너무나 화가 났지만 아무 말을 하지 못하겠더랍니다. 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답니다. 방으로 들어가 털썩 주저앉았는데 눈물이 흐르더랍니다. 그러다가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고백하였답니다.“주님, 예수님의 모습을 갖지 못한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딸의 방을 노크했습니다. 딸이 방문을 열었습니다.“딸아, 내가 잘못했다.”아버지는 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를 용서해라. 너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을 용서해라.”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행동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처음 딸의 입에서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삶을 통하여 배웁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좋아야 내용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마음에 맺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상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기르려면 부모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충만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계시면 말로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주님 되신 삶을 살면 됩니다. 그것을 자녀들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선교사 훈련원에서 매번 선교사 지망생들을 면담하는데, 심각한 것은 선교사 지망생들의 마음 병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담당 간사가 말했습니다.“이 마음으로 선교지에 가면 현지인들 마음에 상처만 줄 것입니다.”그래서 선교사 훈련 때 내적 치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선교사만 아닙니다. 부모가 깨달아야 합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은 자신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항상 우울한 얼굴을 한 가족을 둔 가족들은 너무나 힘듭니다. 

저는 나의 삶이 나의 생각대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음에 의하여 되어짐을 알았습니다. 기분과 감정이 나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예수 믿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나의 마음은 나 자신의 의지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마음 만은 당신 마음대로 하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셨는데, 우리는 그 자유를 몽땅 죄와 마귀에게 넘겨버리고 종노릇하고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유럽 유학생 수련회를 갔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유럽에 가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얼마나 복받은 학생들입니까? 그러나 겉보기만 그렇지 하나같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환경도 아니었고 학업도 아니었고, 재정도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도은미 사모님이“여러분의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 중, [소외감, 열등감, 쉽게 포기, 좌절감, 죽고싶은 마음] 다섯 가지 중 세 가지 이상인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했을 때, 거의 다 손을 들었습니다. 유학을 갈 때 자신도 주위에서도 기대는 컸는데, 좌절도 크고 열등감도 크고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상처로 인한 어려움.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금방 우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기도를 할 때도 처음에는 기도 소리가 없었습니다. 벽을 대하듯이 답답하고 메말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었고 나중에는 통곡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처가 다 어디서 옵니까? 부모와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가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 마음의 상처가 예수님 안에서 치유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1-3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마음은 썩을 대로 썩으셨습니다. 미움, 원망, 배신, 수치, 고통, 슬픔, 근심, 거절감 모두를 십자가에서 끌어 안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왕으로 모시게 되면 마음의 상처가 눈녹듯이 사라지게 됩니다. 누구도 예수님처럼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치유받게 됩니다.

너무나 마음이 뒤틀린 중3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성격이 난폭하고 화를 잘 내고 동생들을 때리고 어머니의 근심거리였답니다. 자신도 끊임없이 죽고 싶었답니다. 죽으면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복수심으로 더 죽고 싶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명절에 기도 많이 하시는 외숙모가 집에 찾아오셨는데, 자기를 위하여 기도를 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방언으로 한참을 기도하시더니 통역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해주시더라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다.”그 말을 듣고 이 아이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길에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은 순간에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집에서 뛰어나와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기도실에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예수님, 정말 저를 아세요? 예수님, 정말 저를 사랑하세요? 왜 저를 사랑하세요?”그 시간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정말 자신을 위한 십자가인 것이 믿어지더랍니다.‘예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구요.’너무나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그리고 저절로 감사가 나오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더랍니다. 그 때 생각은 자신이 목사가 되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생각나지 않아서 목사가 되기를 약속하였답니다.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수지에 있는 목양감리교회 김완중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저도 간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온유하신 분이 그런 학생이었다니.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자녀를 화나지 않게 하라, 우리 힘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것이 진심이냐는 것입니다. 정말 결단하셨습니까?
다시 여러분에게 전도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것인지 아닌지 분명히 합시다. 정말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정말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왕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누구를 고치려고 하지도 말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요구하지도 마십시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몸부림치지도 말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면 그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윤이라는 청년 자매의 간증입니다.
자신의 엄마에 대해 분노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일부러 엄마 속을 뒤집어 놓고 엄마를 공격했습니다. 그런 자신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 속에 울음이 가득차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은혜 체험하고 어린 3살 때 사건이 기억 났습니다. 윤이는 어릴 때 많이 울고 보채는 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릴 때 아버지가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날이었는데 그날 집안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겠죠. 그날따라 비도 추적추적 오고 있었는데 3살 된 윤이는 더 많이 보채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 때 갑자기 친할머니가 윤이한테 화내면서 “얘가 애물단지야!” 윤이를 집어 들고는 비가 오는데 대문 밖에 진흙탕 속에 버렸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겠습니까? 그 때 엄마가 진흙에 버려진 자신을 그대로 놔두고 집에 들어가더랍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할 수 있으시다 해도 엄마만큼은 나를 지켜주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엄마에 대해 이유도 모르게 증오하고 반항하고 미워하게 된 마음의 깊은 상처를 알았습니다. 그 때 마음에서 예수님께서 “엄마를 용서해라!”하시는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가슴의 통증이 사라지고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자신의 가슴 속에 가득한 울음이 없어졌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뀐 척 하는 것은 더 부담스럽습니다. 죽은 척 하는 것은 서로 힘듭니다. 순종하는 척, 사랑하는 척, 공경하는 척, 정말 힘듭니다. 상대방에게도 힘듭니다. 다 압니다.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노력의 한계요 지식의 한계요, 결심의 한계입니다.
죽은 척하는 것과 진정 예수님으로 사는 차이는 사람에게서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정말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시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되어집니다.
나도 살고 배우자도 살고 부모도 살고 자녀도 삽니다.

마음 속에 빛으로 오시옵소서.
숨어 있는 미움, 원망, 배신, 수치, 고통, 슬픔, 근심, 거절감 모두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평안과 기쁨, 사랑을 품습니다.
예수님 나의 왕입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만 믿고 삽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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