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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선한 고백 (딤전 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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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한 고백 (딤전 6:11-12)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모든 것이 믿음에서 출발하여 믿음으로 성취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실을 믿으며, 오신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한 자들입니다.
교회는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 영광의 하나님께 예배하며 헌신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예배할 때 함께 임재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마 18:20), 약속대로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 임하셔서 하늘의 능력과 평강을 부여해 주십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늘의 능력을 받아내는 유일한 초자연적 모임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 응답을 체험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성도의 믿음은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무기입니다. 이 믿음으로 모든 악한 영의 화살들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닫힌 문들을 열고 열린 문들을 닫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으로 담대히 증언(證言)하는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빌라도 앞에선 예수님의 모습이나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의 선한 고백에 관하여 더욱 알고자 하는 충동을 갖습니다.

본문은 바울사도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권면하며 명령하는 내용입니다. 3~10절에서 바울은 목회자의 자세에 대한 소극적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본서의 일차 수신자이며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를 향하여 ‘온전한 신앙을 가지라’ 는 보다 적극적인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13절에서는 바울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령한다고 말함으로써 그 명령이 사도적 권위를 지니는 엄숙한 명령임을 분명하게 각인(刻印)시킵니다. 놀라운 것은 바울이 디모데의 선한 증언(12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증언과 결부시키고 있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부터입니다. 십자가 고난 앞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선한 고백과 주님으로부터 믿음의 선한 싸움을 배운 사도 바울, 그리고 신앙의 선진들의 선한 고백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선한 고백

13절=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본절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엄숙히 명령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령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 그가 아직 젊고 열정적인 바리새인 사울이었을 때, 그는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서 심문 받는 장면을 눈으로 목격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강력한 전승에 의하면 사울은 예수님의 선한 고백을 직접 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사도 바울이 되었을 때도 눈에 선했을 것이고, 30년간 사역을 하는 내내 떠올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동일한 선한 고백을 지켜 나가라”(13-14절)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선한 고백이 십자가 처형 직전의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선한 고백은 대제사장 가야바가 심문했을 때 행해졌습니다. 

마 26:63=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당시 예수님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은 매 맞고 멸시당하고 조롱당하는 무력한 죄수처럼 결박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그분에게서 도망쳐버렸습니다. 주변 상황을 보아서는 그분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정황이 그 반대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실패자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몰린 예수님을 향하여 확신에 차서 비웃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한번 보시오. 당신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당신은 완전히 종교적인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 거요. 당신은 하잘 것 없는 존재요. 모든 능력과 권세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린 당신을 죽일 수 있소. 당신의 제자들을 보시오. 모두 당신을 내버려두고 뿔뿔이 흩어졌지 않소. 당신이 그들과 함께 위대한 왕국을 건설한다고? 웃기지 마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면 어디 한번 입증해 보란 말이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당당하게 대응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오감(五感)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단지 자신이 하신 믿음의 선한 고백을 지키셨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라고 묻자 예수님은 자신 있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틀림없이 그 사람이다.”

헬라어 원문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네가 말했느니라” 또는 “네가 말한 대로다” 정도가 아닙니다. 그건 너무 약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틀림없이 그 사람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투지가 넘치는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 주님의 눈에서는 대담하고 영광스러운 믿음이 뿜어져나왔습니다. 

마 26:64=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가야바의 심문 후에 원수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때의 예수님의 몰골은 전혀 왕같지 않았습니다.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땀과 뒤섞였고, 등은 로마 군병의 채찍으로 수없이 맞아 살이 찢기고 피가 낭자했습니다. 손은 결박당했고 머리에는 조롱의 상징으로 가시 면류관이 얹혀 있었습니다. 적들은 예수님께 멋대로 온갖 행패를 부렸습니다. 

요 18장에서 빌라도는 관정으로 들어와 죄수로 잡혀 있는 예수님과 이야기 합니다. 37절에서 빌라도는 드디어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은 즉시 대답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선한 고백(good confession)입니다. 믿을만한 전승에 의하면 사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이라서 이 모든 사건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선한 고백은 사울의 마음을 찔렀고, 사울은 남은 생애동안 이 고백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 또한 예수님의 고백을 듣고 예수께서 의로우신 분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과감하게 일어나 주님의 말에 동의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손을 씻고 이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이 말씀이 디모데에게 뿐 아니라 오늘 말씀을 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능력으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2. 바울의 선한 고백

13-14절=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우리는 본절에서 사도 바울의 믿음의 고백을 듣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셨을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이던 사울은 예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 뒤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하셨던 선한 고백을 직접 들었고, 자신의 두 눈으로 놀라운 싸움을 하시던 이 믿음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구약에 정통한 랍비들은 시편 22편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잘 알았습니다. 시편 22편은 1,000년 후에 오실 메시야가 어떠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인지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고, 최고의 랍비였던 사울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믿음으로 모든 약속을 요구하시며 그분의 모든 유업을 얻기 위해 싸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괴롭고 어두운 십자가의 고통의 순간에도 상황에 굴복하지 않으셨고, 믿음을 통해 이를 이겨내셨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행 9:4~5=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사건을 통하여 바울이 구원받고 성령께서 그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을 때, 성령님은 그에게 예수님의 선한 고백을 생각나게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야, 나는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 나는 가야바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선한 고백을 늘 기억할 것이다. 디모데야, 너는 늘 이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분이 오실 때까지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이것을 지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회심 후 한 평생 이 믿음의 고백을 지켰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의 이런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9:19~20=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그의 변화는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행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그의 변화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심지어 얼마전까지 함께 하던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행 9:23~24=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사도행전 후반부에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목회자들을 불러 권면하는 가운데 자신의 신앙을 감동적으로 고백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행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2장에서 바울은 백성들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는데, 이 말을 듣던 백성들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22절). 

행 23장에서는 밤에 주님께서 직접 바울의 선한 고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11절). 참으로 놀랍고 영광스런 일입니다. 

행 24장에서는 바울이 총독 벨릭스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벨릭스 부부에게 매우 껄끄러운 주제인 ‘의와 절제와 심판’에 관하여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25절). 

그리고 행 26장에서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매우 용기있는 증언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9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엄숙히 명령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사도는 한평생 믿음의 선한 고백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제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디모데에게 자신처럼 선한 고백의 사람이 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저와 여러분을 향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3. 우리의 선한 고백

오늘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의 형편은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기막힌 환경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과연 얼마나 선한 증언들이 있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예수님처럼 아무리 두렵고 떨리는 상황 속에서도 일관되게 진리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언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를 알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먼저 베드로를 보면 됩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는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며 호언장담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위기 상황이 오자 참으로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던 것입니다(마 26장).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이런 베드로를 보고 비웃을 자격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일 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 있을 때조차 우리의 고백에 힘이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행 1:8). 그리고 동시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면 주님께서도 그를 부끄러워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8:38).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생명 속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유업을 얻게 하는 능력과 마귀를 무찌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권세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 증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을 유업에 대한 권리 증서를 가지고 악한 자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선한 고백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깊은 반응이었음을 봅니다.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주님께 기도합시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갈지 주님께 말씀드리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저는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주님의 온유하심, 자비하심, 사랑하심을 닮고 싶고, 투지 넘치는 믿음에서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싶습니다. 
주님, 사도 바울의 선한 고백을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도는 주님으로부터 믿음의 싸움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예수님을 영광스런 모범으로 삼아 주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통해 이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의 믿음을 원합니다. 주님처럼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탄 왕국을 침공해 들어가는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주님의 교회들이 사방에서 마귀와 귀신들을 무찌르고 추방하는 일을 보게 되기 원합니다. 
주님, 제게 믿음을 주옵소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위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구서현교회, 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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