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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황금 시간 (막 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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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황금 시간 (막 1:29-39)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잘 살고 싶어 합니다. 인지상정이죠. 인생을 마칠 때 한 점 부끄러움도 후회도 없이 잘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만만치 않습니다. 엄벙덤벙 살다 보면 후회막심하게 인생을 끝마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루하루를 잘 살면 됩니다. 왜냐하면 하루는 일생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일생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루를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모델을 제시해 주십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루를 승리하는 법을 배우심으로 일생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의 하루 일과 : 분주함 속의 질서 

예수님은 하루하루를 되는 대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균형 있고 질서 있는 삶으로 사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보통 사람들처럼 분주하게 사셨지만, 분주함 속에서 질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21절부터 예수님의 하루 일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절~28절 보면, 마침 안식일이었는데 오전에는 예수님께서 회당이 들어가셨습니다. 먼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십니다. 29절~31절 보면, 오후에는 시몬(베드로)의 장모 심방을 가셨습니다.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친히 찾아가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32절 이하를 보면 낮 시간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수고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32절~34절.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각종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일일이 면담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아마 밤늦도록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한 가지 특기한 것은, 귀신을 내쫓고는 절대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겁니다. 왜 그랬나요? 귀신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귀신은 악한 영으로 인간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귀신같이 안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당시는 공생애 초기로 예수님께서 아직 당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게다가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안다 하더라도 득이 되는 말을 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많은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와 달리 죄는 없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갖고 계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시지 않으면 배고프고, 일을 많이 하시면 피곤하셨을 겁니다. 요4:6 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 ” 예수님은 긴 여행길에 피곤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루하루 현대인들에 못지않게 피곤하고 바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얼마나 바쁩니까?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바빠요. 방과 후에 학원 몇 군데씩 다니고, 하는 것도 많고 ... 그래서 어떤 초등학생은 귀가 시간이 밤 9시라고 하네요. 바쁘다, 바빠! 입에 붙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아예 인사를 이렇게 합니다. “많이 바쁘시죠?” 이런 인사가 오히려 상대방을 존대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고 분주하기는 한데, 생활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삶이 고달프고 공허해집니다. 이게 많은 현대인들의 문제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분주한 가운데 질서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알찬 인생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황금 시간 : 경건의 시간(Quiet Time) 

그렇다면 그저 분주하기만 한 현대인들의 삶과 분주함 가운데 질서가 있었던 예수님의 삶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하루 일과 가운데 황금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황금 시간은 다름 아닌 경건의 시간(Quiet Time)이었습니다. 35절을 보시죠.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 전날 밤늦게까지 사역을 하신 예수님!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한적한 곳(Quiet Place)에 홀로 가셔서 조용히 경건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복음서를 연구해 보면, 예수님은 새벽 시간뿐만 아니라 수시로, 특별히 밤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겟세마네 기도는 십자가를 앞둔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는 평소에 예수님이 밤이면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시던 습관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일상생활 중에는 항상 경건의 시간 혹은 기도 시간이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경건의 시간이란 하나님을 만나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흔히 Quiet Time이라 부르죠.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겁니다. 새벽 시간이 제일 좋고, 아니면 다른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하면 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규칙적으로 참석하는 겁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나서 일정 시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아주 좋습니다.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한국교회사를 보면 그 유래가 이렇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장로님이 평양신학교 재학 중이던 시절 개인적으로 교회에 나가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성도들이 하나둘 동참하게 됐는데, 나중에는 그 수가 수백에 이르게 됩니다. 기왕에 모이는 것 정규 기도회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당회에 청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새벽기도회가 시작됐는데, 1906년의 일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07년 장대현교회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이 시발됐는데, 전국교회에 확산되면서 새벽기도회도 함께 확산됩니다. 이렇게 해서 새벽기도회는 세계교회 앞에 한국교회가 자랑할 만한 대표 브랜드가 된 겁니다. 

좋은 줄은 알지만 새벽에 시간을 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이 너무 분주하다 보니까 이리저리 쫓기듯 살아가기 쉽습니다. 급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정신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긴급성 중독(emergency addiction)이라 부릅니다. 긴급성 중독에 걸리면 내가 생활의 주인인지 생활이 내 주인인지 모를 정도가 됩니다. 마치 시간의 노예처럼 사는 겁니다. 나중에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건지 모를 정도가 됩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다 불현듯 인생의 마지막이 닥쳐온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원칙을 세우는 게 좋습니다. 긴급한 일부터 하지 말고 소중한 일부터 먼저 하는 겁니다. 리더십 전문가인 스티븐 R. 코비가 쓴「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이 유명하죠. 그 가운데 3번째 습관이 바로 이겁니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First Things First) 얼마나 중요한 습관인지, 코비는 아예 이 제목으로 또 하나의 책을 썼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긴급한 것부터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소중한 것을 먼저 챙겨야 된다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상생활 중에서 얼마나 급급한 일들이 많은지! 수면, 세면, 식사 시간 등은 가장 기본적이고 긴급한 일입니다. 그 외에 학생들 같으면 숙제, 직장인들 같으면 당장 급한 업무 처리나 사람 만나는 일 등 ... 이런 일들에 쫓겨 하루하루 살아가면 정신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중요한 경건의 시간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이건 큰 문제입니다. 인간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있잖아요. 게다가 영혼이 육체를 움직여야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건의 시간은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을 놓쳐버리니까 인생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결국 인생이 망가지고 허무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쁘게 사는 게 능사가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것은 꼭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주자들이 아무리 바빠도 제일 먼저 무얼 합니까? 조율을 하죠. 초등학생이나 하는 게 아닙니다. 대가라도 반드시 조율부터 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맞추어 영혼을 조율하지 않으면 삶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시간을 꼬박꼬박 확보할 수 있을까요? 선약을 하면 됩니다. 하루 일과 중에, 한 주간 스케줄 가운데 하나님과 선약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경건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선약을 하면 어때요? 다른 일이 생겨도 피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선약을 고수하는 겁니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준다.”(마르바 J. 던) 

19세기 미국의 골드러시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캘리포니아 인근의 강바닥에서 금이 발견됐습니다. 소문이 퍼지면서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1849년에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중남미에서까지 찾아왔는데, 한 해 동안 무려 5만명 이상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위험한 시대라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무리지어 가다 보니까 빠르니 느리니 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독실한 크리스천이 주일을 지키느라 처졌습니다. 마차를 멈추고 예배도 드리고 쉬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당연히 늦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먼저 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벌써 왔다 갔나 생각했더니 며칠 후에야 도착했는데, 보니까 얼굴이 핼쑥한 모습입니다. 알고 보니까 쉬지 않고 무리하다가 지치고 병들어서 그런 겁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대로 주일을 지킨 게 훨씬 더 좋은 것임이 판명됐습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무조건 안식하며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위해 확보해 둬야 합니다. 달력에 이미 표시되어 있잖아요? 빨간색은 Stop Sign입니다. 일단 멈춰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경건의 시간이나 주일을 확보하지 못하는데, 가만히 보면 핑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낭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별 유익이 없는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심지어 해가 되기까지 TV 시청하는 데 시간을 소모합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황금 시간입니다! 

부디 예수님처럼 이 시간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삶 : 승리하는 인생의 모델

황금시간을 철저히 지키신 예수님의 삶을 과연 어떠했을까요? 한 마디로 승리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모델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딤전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profitable unto all things)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현대인들이 육체의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 시간을 확보합니다. 약간의 유익을 위해서! 그런데 경건의 시간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① 능력이 있는 삶 :

황금 시간을 확보하면 능력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능력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 능력을 관리하셨다면 연약한 우리는 얼마나 더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하겠습니까?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게 바로 경건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영적인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인들은 예외 없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졌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새벽마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시간에 얻은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두 사람이 장작을 패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쉬엄쉬엄 일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열심히 한 사람보다 작업량이 더 많았습니다. 이상해서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 시간에 쉬면서 도끼날을 갈았다는 겁니다. 도끼날을 가는 시간은 소모적인 시간이 아니라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경건의 시간을 통해 늘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영적인 능력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병든 자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고 무슨 일이든 해결하실 수 있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능력 받아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목적이 있는 삶 :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자 난리가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심지어 새벽에까지 옵니다. 감당이 안 되니까 제자들이 한적한 데 나가신 예수님을 찾으러 나섭니다. 가서 혼자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는 데까지 찾아옵니다. 

그때 예수님의 반응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36절~38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만 계속 하다 보면 정말 예수님이 해야만 되는 고유 목적을 놓치기 쉽습니다. 십자가 대속과 복음 전도! 이게 예수님의 지상 생애 목적입니다. 

사실 인기가 높아지니까 기분은 좋죠. 하지만 거기에 유혹이 있습니다. 당시 무리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류에 휩쓸리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인기나 얻으러 오신 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운명 장면이 아주 감동적입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33년의 짦은 지상 생애를 마쳤지만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실 정도로 아무런 후회도 없이 사셨습니다.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 인생의 바른 방향 즉 인생의 목적의식을 상실하지 않고 사신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프로 축구 이영표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당시 16강 진출을 확정했을 때 경기장에서 두 팔 벌리고 나오면서 “주여! 주여!” 하던 모습이 기억나십니까? 그의 신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니 홈피 대문에 이런 글 게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순종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않겠다는 겁니다. 오직 인생의 목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그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다 지난 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FC에 입단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교 목적으로 갔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경건의 시간을 통해 이와 같이 목적이 분명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기쁨이 있는 삶 : 

사람이 정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소유나 일의 성취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기쁨은 일시적, 표면적일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을 통해 부어지는 신령한 기쁨이 진짜입니다. 환경 조건조차 초월하는 근본적인 기쁨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겁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게 바로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성화들을 보면 대개 엄숙한 얼굴이나 고통 중에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일상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환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고 즐겁게 지내셨습니다. 이것 역시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찰 때 육체도 강건해지고 모든 삶에서 형통할 수 있습니다. 

요삼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러므로 여러분, 늘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요15:1~8)를 기억하시죠. 포도나무는 예수님, 가지는 성도들입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입니까? 붙어 있는 겁니다. 그렇게만 하면 만사형통입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바쁘다고 핑계 대는 습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것은 다 하고 삽니다. 아파 보세요. 당장 병원으로 달라가잖아요. 배고파보세요. 당장 식당으로 달려가잖아요. 역설적으로 바쁠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 받고 인생의 목적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요즘 더 바빠진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많은 시간 기도할 필요를 느낀다.”(마틴 루터) “당신이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정말로 너무 바쁜 겁니다.”(If you are too busy to pray, you're too busy.) 아무쪼록 예수님처럼 어떤 경우에도 매일, 그리고 매주일 황금시간을 꼭 확보하심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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