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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난 중의 부르짖음 (삼하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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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의 부르짖음 (삼하 22장) 
 
 
오늘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1) 다윗이 드린 찬양을 통해 신정왕국에서 왕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먼저 찬양의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합니다(2-3). “반석 … 요새 … 건지시는 자 … 피할 바위 … 방패 … 구원의 뿔 … 높은 망대 … 피난처 …구원자”라는 상징들은 “흉악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다양한 구원 방식을 생각하게 합니다. 각각의 상징 앞에는 “나의”라는 말이 반복되었지요. 다윗의 하나님은 그저 조상들의 하나님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삶에 역사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제였습니다. 다윗의 찬양은 성경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찬양은 미사여구의 나열이 아니라 그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언어들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해 이처럼 다양한 언어로 찬양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여호와께 기도할 때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4). 전투 같은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목가적인 삶을 동경합니다. 고즈넉한 들판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커피 향을 즐기는 낭만적인 신앙생활을 그리지요. 하지만 다윗의 삶과 시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그 역시 “사망의 물결”이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들이치며, “음부의 줄”이 휘감고 “사망의 올무가” 덮치는 치열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5-6). 그의 신앙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7).

사무엘하 끝자락에 있는 6개의 세부 단락들은 다윗의 기도로 시작해서 다윗의 기도로 마감됩니다(21:14; 24:25). 사무엘서 전체가 한나의 기도와 찬양에서 시작하여 다윗의 기도와 찬양으로 마감되지요. 한나의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시작해서 다윗의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끝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해 보이는 다윗도 사실은 자기 삶조차 감당하기 벅찬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 환난들 속에서 다윗은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부단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왕이었다는 점에서 신정 왕국의 왕 다윗은 이방의 왕들과 구별되었습니다.

환난 속에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 같지만, 믿음이 없이는 그리고 겸손하지 않고서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없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하나조차 감당하기가 어렵지요. 기도 행위 자체가 자신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겸비함의 표현입니다. 내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왕이 계심을, 우리 삶에 경험되는 다양한 환난에서 구체적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인물들은 예외 없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성도의 삶을 구별되게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다윗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때,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습니다. 다윗의 원수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8).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위엄과 권능 중에 강림하셔서, 원수들을 “흩으시며 … 파하셨”습니다. 그분의 “꾸지람과 콧김”이 땅의 기초를 드러낼 정도였습니다(9-16). 다윗의 구원은 천지가 격변하듯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므로” “물”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습니다(17-20). 이 노래는 ‘다윗의 승전가’라는 제목 붙기도 하지만 다윗은 그저 건짐 받았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승전하셨고 다윗은 그 승전의 기쁨에 참여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다윗이 부르짖을 때마다 구원의 권능을 보이셨을까요?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21-23). 이 고백은 의로운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간에 체결된 언약관계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고대 종주권 계약에 따르면 종 된 국가가 순종의 의무를 신실하게 행하는 한 주인 된 국가는 보호의 의무를 신실하게 행해야 했습니다. 언약에는 상호 의무가 있었지요.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하셨지요. 다음으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신 28:1, 7, 15, 25)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행해지는 독재자의 변덕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언약의 신실한 시행입니다. 그래서 당신님의 백성이 그분께 순종하고 있는 한, 왕이신 그분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되었다는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언제라도 환난 중에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요청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므로 그분과의 관계가 올바른 상태, 곧 의로운 상태라야 보장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의를 따라 상”주셨다는 고백은 다윗이 언약대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하나님께서도 언약대로 응답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런 중에 다윗은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26-27) 보이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웁니다. 또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는 분이심을 체험합니다(28). 이처럼 환난 중에 부르짖고 응답받았기에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노래할 수 있었지요.

이제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고 고백합니다(29). 등불이 놓치면 곧바로 흑암이 됩니다. 반면 등불과 함께하면 흑암도 밝아집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어도 그분을 놓치게 되면 당장 흑암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반면 아무리 짙은 흑암 중에 있을지라도 그분께서 밝게 하실 것을 또한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있었기에 그는 담대하게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치하고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30).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실한 신뢰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모습은 모든 성도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31)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만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피하는 나에게도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2-3)십니다. 문제는 이것이 이론이 아닌 실제기 되어야겠지요.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부르짖음은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32)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구원을 경험한 다윗을 하나님께 “인도”하시고 “높은 곳에 세우”시고 “싸우게”하셨으며, 다윗은 그 때에 “놋활”을 당겼습니다(33-35). 다윗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곳에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강한 힘과 능력을 쓰는 삶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런 그를 “크게”하셨고, “걸음을 넓게” 하시며 “실족지 않게” 하셨습니다(36-37). 그러면 다윗은 원수를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않았지요(38).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그분의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 행위를 통해서 다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능력으로 띠 띠우사” 원수를 굴복케 하셨고(40-42), 다윗은 그 능력으로 원수를 밟았습니다(43). 이렇게 그를 건지시고 보존하셔서 다윗을 “열방의 으뜸”으로 삼으시고 그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그를 섬기게까지 하셨지요(44). 다윗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왕국의 모형을 보이신 것입니다(45-46). 조화로운 하나님과 다윗과의 이러한 관계는, 부르짖음 속에서 구원 받으면 불순종하다가 패망을 경험했던 사사시대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다윗 왕국을 그 시대와 다르게 했던 것은, 신정왕국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순종하는 왕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다윗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다윗의 뒤를 이어야 할 열왕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했지요.

사무엘서의 시작과 함께 한나의 노래 마지막 구절에 갈망되었던 통치자인 “왕”과 “기름부음을 받은 자”(삼상 2:10)가 다윗의 노래 마지막 구절에서 “왕”과 “기름부음 받은 자”로 다시 언급됩니다(51). 한나의 예언적 노래가 일차적으로는 다윗에게서 성취됩니다. 하지만 그 후로 거의 모든 이스라엘 열왕은 신정왕국의 왕 역할에 실패합니다. 소수의 왕에게서만 가끔 그 모습이 보이다가 자취를 감추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지요.

신약의 성도들은 모두가 이 땅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통치하는 나라가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세움 받은 왕적인 존재입니다. 이를 위해 신실하게 부르짖으며 신실하게 순종하는 백성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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