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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배로운 산 돌 (벧전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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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운 산 돌 (벧전 2:1-10)


본문 1절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한 연결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 바로 앞에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지난 시간에 거듭난 새 생활의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고 죄악에서 구원하셨는데 그 구원은 금이나 은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말씀을 순종하여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늘 마음에 두고 잠시 왔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삶을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보여지는 새 생활의 첫번째 특징입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인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거짓없는 사랑으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위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며, 아래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들이 서로 마음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세상을 향하여는 구별된 삶을 살며, 형제들을 향해서는 거짓이 없는 사랑을 하는 생활입니다. 

거룩함과 형제 사랑 이것이 거듭난 새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두 가지 특징입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그러므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함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요지입니다.

첫째로,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야 할 것은 꼭 잡아야 합니다. 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입니다.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즐겁고 기쁜 일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괴롭고 슬프며 고통스럽고 억울한 일도 만납니다.나를 환영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날 뿐 아니라 나를 미워하며 비방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만 나를 오해하고 무고하게 비방하며 괴로움을 주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1세기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미움을 받으며 억울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입니다.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처음에는 너그러움으로 참아주고 견뎠지만 한계점에 이르면 기어코 폭발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잘 참고 견뎠는데 끝이 없는 시련에 지치고 곤하여 자주 넘어집니다.견디다 못해 거룩한 성도의 삶을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거룩한 말을 하고 은혜로운 찬송을 하던 그 입에서 악에 바친 저주와 욕설과 악담이 터져나옵니다. 교우 여러분, 나의 언행은 어떠합니까?

베드로는 말합니다.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였지만 우리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접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맛본 여러분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고 진실로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깨달아 체험하였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전에 하던 것처럼 아직도 속임수와 겉치레를 하며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한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 나라의 기업이 없고 산 소망이 없었을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이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그때는 내가 남보다 더 잘 살고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하여 속임수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등치고 속이는 이것이 바로 궤휼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려고 나를 꾸미고 과대포장하여 겉치레로 속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외식행위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하며 축복하지 못하고 못된 마음으로 시기하며 미워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약점이나 부족함을 드러내어 헐뜯고 험담하는 것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였고, 이웃의 어려움을 동정하고 실패를 걱정해주는 척하며 속으로는 즐거움으로 삼았던 비방자였습니다.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추한 죄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후에 이 모든 것이 악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썩지 아니할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은 모든 악독과 모든 속임수와 겉치레와 시기와 모든 험담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방하는 악행이며, 거룩한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악을 버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을 본 받아 사는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입니다. 

모든 악한 것을 버린 다음에 적극적으로 가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갓난 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생명의 양식으로 여기고 엄마 품에 매달려 즐겁게 젖을 먹는 것처럼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합니다. 앞에서 열거한 악한 것들이 부패하고 부정한 음식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고 신령한 양식입니다. 불량식품에 맛들인 어린이는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 주는 건강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가려면 우선 불량식품을 끊어야 하며 다음에 엄마의 정성스런 음식을 즐겁게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십시오.주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  날마다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그 말씀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합니다. 악한 마음으로 남을 속이고 시기하며 비방하는 그 시간에 그 에너지를 가지고 순결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고 또 묵상합시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하였습니다.그리스도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렇게 해야 마땅합니다.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거듭난 새 사람의 두 가지 특성, 거룩함과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합시다.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또 사랑이십니다.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 세상에 대하여 구별되어 다른 모습으로 살고, 이웃과 형제를 향하여 적극적인 사랑을 보입니다.

이제 오늘의 두번째 주제로 넘어갑니다. 베드로는 갑자기 돌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는 돌,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식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돌입니다.우리 한국인들에게 당신은 돌이요 하면 욕이 됩니다. 머리 나쁜 사람을 가리켜  돌이라고 하는데 오늘 성경은 아주 좋은 뜻으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돌이라 부르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 역시 돌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돌들의 모임입니다. 돌은 돌이로되 보배로운 산 돌(the living stone)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돌이 아니라 산 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 역시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고 합니다. 이 돌들은 견고한 반석을 의미하며 집을 세우는 든든한 기초석이 되고 벽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집을 짓는 건축자이십니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돌들을 건축자가 직접 선택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이시며 우리 역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산 돌이 되어 하나님의 신령한 집을 짓는데 한 모퉁이를 감당합니다. 신령한 집의 기초석이 되신 주님과 연결된 우리가 그 집의 돌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사28:16) 예언하신 말씀대로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유대인들은 그를 미워하고 버렸으며 로마인들이 그를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실 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분이십니다.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버림당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외톨이가 되고 비웃음 당하는 것이 두렵습니까?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것이 두려워 불의한 세상과 친구하며 타협하지 맙시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 하실 것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삽시다.사람들에게 버림 당하는 것은 두려워 하지만 하나님께 버림 받음이 얼마나 비참하고 두려운 일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7:23) 하시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건축자들에게는 쓸모없어 버려진 돌 같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령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시118:22).똑같은 돌이지만 사람에 따라 그 가치와 용도가 다릅니다. 함께 신령한 집을 지어져 가는 사람에게는 모퉁이의 요긴한 기초석이 되지만 말씀을 순종치 않는 사람들은 그 돌에 부딪히고 걸려 넘어집니다(사8:14).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반석이시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윗돌이 됩니다.   

바울도 로마서9장33절에서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고전1:23).유대인들은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였는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여전히 구세주로 전파되고 있으니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들은 이방인들은 남을 위하여 대신 죽는다니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세상에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더욱 미련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빈정거리거나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도움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9절을 봅시다.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들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모든 나라들 가운데 구별하여 거룩한 나라와 백성을 삼으시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왜 그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부르셨을까요?   어두운 데서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빛 가운데 살게 하신 그 아름다운 덕을 온 세상에 선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구세주가 오시게 할 계획이 있었으며, 그들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대하셨습니다.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런 사명입니까?   

제사장이 어떤 이들이었습니까?   구별된 하나님의 일군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후손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그의 네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이스라엘의 첫 제사장들이 세워졌습니다.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 레위 지파를 또 다시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소에서 거룩한 일을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제사장은 많은 무리들 중에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보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면 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그들의 죄가 어린 양 혹은 송아지에게 전가되어 피 흘려 죽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이렇게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수종드는 중보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과 이방 민족들 사이에 서 있는 제사장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세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하는 중보자로서의 거룩한 사명을 받은 특별한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받아 구별된 삶을 살아야 마땅한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에 물들어 버렸고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알려야 할 제사장이 오히려 세상의 죄악에 물들어 세상과 하나가 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럽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하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세상 민족들을 부르셨습니다.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단번에 드림으로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셨고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서심으로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피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구주로 믿고 돌아오는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며 새로운 족속과 제사장, 새로운 나라와 백성을 삼으셨으니 오늘 우리들이 그 백성 중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혈통으로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백성입니다.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가족과 제사장과 나라와 백성을 삼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했지만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입니다. 

신령한 하나님 집의 제사장인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든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책임과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돌아봅시다. 나는 그곳에서 구별된 제사장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각자 가정에서 제사장이며, 직장과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다함이 없는 사랑을 전파하는 영광스런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명하신 성찬식을 거행하며 다시 한 번 그 뜻을 음미합니다. 큰 대제사장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린 주님은   이 떡은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 하셨습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한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다.이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산 돌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신령한 하나님의 집, 성전을 지어가는 성도 여러분은 그 신령한 하나님의 집에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일군입니다. 어찌 우리 몸을 더러움과 죄악에 함부로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방탕에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하였습니다. 모든 악을 버리고 순전하고 신령한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을 받아 먹는 복된 아침이 되기 바랍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오늘 주께서 주시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심으로 주님과 하나가 됨을 감사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한 떡과 한 잔을 먹고 마시는 주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게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참 구주가 되시고 우리를 살리는 산 돌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참 보배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사를 날마다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힘써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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