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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 비유 (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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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비유 (마 13:31-32)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식물의 씨앗 속에 들어 있는 생명력은 정말 신비합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씨앗 속에 있는 생명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언제든지 발아하기에 적당한 조건만 형성되면 새로운 싹을 틔웁니다. 많은 식물의 씨앗은 잠자는 기간인 휴면기를 가지고 있는데, 적당한 조건, 즉 산소, 물, 온도의 조건이 맞으면 싹이 틉니다. 씨앗은 살아 있는 개체이기 때문에 휴면기에도 숨을 쉬고 물질대사를 한다고 하는데, 개중에는 수백 년 동안 생존한 씨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씨앗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한 과학 잡지에 실렸습니다. 이스라엘 ‘루이스 보릭’ 국립의학연구소 ‘사라 살론’ 박사팀은 이스라엘 마사다의 헤롯 왕의 요새를 발굴하다가 찾은 대추야자 씨앗 3개를 2005년에 심어, 이 가운데 하나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사이언스’ 2008년 6월 13일 자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자들이 발굴에서 찾은 씨앗 가운데 2개를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하여 본 결과, 이것은 대략 2,000년 전의 씨앗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씨앗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여름이 덥고 건조한 마사다의 기후가 생체 분자를 파괴하는 활성 산소의 발생을 억제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발아해 키가 121cm인 이 대추야자는 ‘므두셀라’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씨앗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2,000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발아한 이 대추야자 나무의 씨앗 속에 그런 놀라운 생명력을 넣어 주신 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씨앗 속에 그런 생명력을 넣어 주신 분이 우리 마음속에 능력으로 역사 하신다면, 우리의 심령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 ‘겨자씨 비유’를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겨자씨 비유의 배경

겨자씨 비유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천국입니다. 우리는 분명 우리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우리가 거하게 될 영광스런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다. 둘째는 상태적인 천국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주님이 통치하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귀신이 쫓겨 가고 주님의 통치가 임한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세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거부되고 경시되는 세계는 그 어떤 개념으로든지 천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거부되는 곳에 어찌 인간의 자유와 희망과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유대인들은 이 땅에 불의한 인간의 나라 대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언젠가는 구세주를 통하여 실현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주님 당시나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먼 미래에 닥치는 ‘종말의 나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으면 천국 갈 텐데 이 땅에서야 어떻게 살면 어떠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물질적이며 현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룟 유다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써 압제자 로마 제국을 쳐부수고, 예루살렘 성전에 열두 보좌를 베풀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천국운동을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아주 영광스럽고 장엄하게, 아주 힘 있고 강력하고 멋지게 성장할 줄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보면, 제자들의 낙담, 실망, 좌절감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이 땅의 빵과 검을 외면하는 듯 보이는 예수님께 실망을 하고 주님을 배신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생들이 보기엔 겨자씨처럼 하찮게 보이지만, 큰 권세와 능력으로 성장해 갈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2. 겨자씨 비유의 내용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 나라의 시작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라고 하신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이 땅에 시작된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 가고, 죄인이 용서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악은 패배당하기 시작하고, 인생들에게는 하늘의 신령한 빛이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인류의 역사에서 없었던 전대미문의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2)하나님 나라의 요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무력일까요? 권력일까요? 재력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했습니다. 겨자씨는 이 세상의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들의 하나라고 합니다. 씨앗은 외견상으로 무척 작고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씨앗에는 그 어떤 것에도 없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씨앗은 조그만 한 알갱이의 모습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는 신비하고 놀라운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로 비유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작은 겨자씨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요소는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그 인격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상, 하나님 나라는 기필코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특히 겨자씨는 복음의 시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초라하게 말구유의 아기로 초림 하셨던 예수님과, 사회적으로 미천했던 제자들과, 초대 교회 공동체의 미약함은 겨자씨에 비견될 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씨앗과 같은 생명력이 있다는 데에 참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도들의 믿음 또한 성도들의 존재는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그 작은 겨자씨 한 알 속에 감추어 있는 생명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원자력보다 더 강한 세력을 가진 복음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린 부활의 생명력입니다. 씨앗의 생명은 겨울의 추위도 이겨내고, 굳은 땅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힘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력이 곧 복음의 생명력이며,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담대히 신앙을 지키는 생명력입니다. 이처럼 생명력 있는 신앙의 소유자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자라납니다. 기독교는 성장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교회나 성도들의 삶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말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력은 무한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가 성장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자라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비정상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신앙의 병에 걸렸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자라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회개해야 합니다. 

3. 겨자씨 비유의 교훈

1)하나님 나라의 확장성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것은 천국 혹은 기독교의 출발이 얼마나 미미하게 시작되었는지 암시해 줍니다. 겨자씨는 씨가 아니라 차라리 티끌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천국을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하신 것은 천국 또는 기독교의 출발이 아주 미미함을 나타내 줍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아주 오래 전 성지 순례를 다녀오면서 겨자씨를 가져 왔는데, 교인들이 그것을 구경하려고 데려다 보다가 그만 숨결에 날아가 버리고 찾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서울의 사랑 교회에서 목회할 때 교회 장로님이 저보다 먼저 성지 순례를 다녀오면서, 겨자씨라고 하는 것을 가져왔는데 봉숭아 씨나 무우 씨만큼 제법 크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다음 해 성지순례 때 제가 직접 겨자 나무에서 겨자씨를 채취해 보았더니, 채송화씨보다 훨씬 더 작아요. 여기에 제가 가지고 있는 겨자씨가 있는데, 눈이 안 좋으신 분들에게는 아마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습니다. 그러니까 장로님이 가져왔던 봉숭아 씨만큼 큰 씨앗은 많은 사람들이 겨자씨를 찾으니 속여서 팔았던 것이지요. 

주님은 천국을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이러한 겨자씨에 비유하심은 이유가 있습니다. 즉 겨자씨와 같이 작은 씨앗이, 싹이 나서 자란 후에는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도 비록 작고 미미한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장차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천국 또는 기독교회는 처음에는 아주 미미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천국 복음을 심으셨으나, 그것은 겨우 팔레스틴이라는 지구촌의 한 구석에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심으신 주님도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아주 미미한 분이셨습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갈릴리 나사렛 촌 동네 출신이요, 비천한 목수의 가정에서 나신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주님께서 행하신 일도 하찮게 보이는 일입니다. 

십자가에서 강도들과 함께 처형당하셨으니, 그 분의 행하신 일이 사람들에게 위대한 일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또 그 분이 훈련시킨 제자들의 면면과 그 수효는 어떻습니까? 모두 서민이거나 무식한 어부 출신이었습니다. 그 숫자도 12 사도를 포함해서 겨우 일백 이십 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출발할 때의 실상입니다. 이러한 기독교가 세계적인 대종교가 되고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종교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 제일의 종교가 되었고, 세계 인구 1/3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심으신 천국 복음이 지닌 위대함입니다. 마치 겨자씨가 씨앗 중에 가장 작지만 나중에는 3m까지 자라는 것처럼, 천국 혹은 기독교도 처음은 그처럼 미미하게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도록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2)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목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했습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다 피곤하여 지친 새들은 크게 성장하여 그늘까지 제공하는 겨자나무의 가지에 앉아서 쉼을 얻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뇌와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안식처를 찾아 헤매다,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참된 안식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부한 사람도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가난한 사람도 있고, 낙심한 자들도 있고, 병든 자들도 있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이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두 와서 깃들일 수 있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혼의 안식과 쉼을 얻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3)복음 전파의 사명

주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예언하신 대로 지상의 하나님 나라인 기독교회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천국 운동은 무명의 목수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12제자로, 70문도로, 120문도로, 3000명으로, 5000명으로, 큰 무리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사도행전을 보면 6:7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11:21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허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2:24에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14:1에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6:4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9:20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했습니다. 실로 사도행전은 전도행전이요, 성령행전이요, 부흥행전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교회의 성장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 언더우드, 아펜셀러 등의 선교사로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현재는 9 백만 성도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질적인 것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양적인 것이어야 하느냐? 이 같은 질문은 어리석고 무지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우리 교회는 한 300명 모이는 가족적인 교회를 만들자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신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 교회의 규모를 미리 제한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 하는 것이 잘못된 인본주의라고 한다면, 교회의 규모를 자기 취향에 맞게 미리 정하는 것도 똑같이 잘못된 인본주의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아예 숫자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지상 과업은 전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나 숫자에 아주 무관심한 성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일에 태만한 신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교회의 부흥을 위해 전도도, 기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수적인 성장에 열망을 갖고,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 겨자씨 비유에 대한 교훈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이 비유는 천국 운동의 확장성, 곧 교회와 성도들의 성장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하늘나라는 아주 작은 데서 출발하지만, 성장하면서 커져 열방이 거기에 모여 들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그러나 자란 후에는 3. 4m나 되는 큰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크게 자란 겨자나무에는 온갖 새들이 찾아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회도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아주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겨자씨와 같은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심겨지자 온 유대에 복음의 열매가 맺혔고, 한 사람 빌립 집사의 전도에 원수지간이던 사마리아가 복음화 되었으며, 유대인들의 핍박에 온 세계로 흩어졌던 미미한 성도들로 인해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에 복음의 열매가 맺혀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109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이만큼 자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앞으로 더욱 자라나야 합니다. 그 성장에는 어떤 제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 교회의 신자는 70만이라 하고, 콜롬비아의 보고타에 있는 ICM(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 교회는 4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들은 그토록 많은 신자들이 모이니까 이제 전도하기를 그만 두어야 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교회들이 더욱 전도에 열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우리 주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천국 운동은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앞으로 끊임없이 더욱 성장하여 큰 나무처럼 자라서, 큰 나무에 많은 새들이 깃들이듯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안식을 얻고, 축복을 받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해를 거듭할수록 구원받은 백성의 수가 크게 더 많아지는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서, 어려운 이웃과 교회도 더 많이 돕고,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우리 총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계에도 큰 감화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 기도합시다.

그리고 사 60:22에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고 했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겨자씨 한 알 같은 존재일지라도, 생명력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서 달마다 해마다 성장하여 자란 후에는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와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라고, 그리하여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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