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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추기 (엡 2:8-10)
    

유명한 설교가이며 성서학자였던 F.B. 마이어 목사님이 배를 안내하는 예인선을 탔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이 탄 예인선은 커다란 원양 어선을 좁은 항구로 예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인선이 잘못 인도하면 그 큰 원양어선이 부두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은 안개 낀 밤이라 조마조마하게 앞뒤를 살피고 있는데 정작 예인선을 몰고 가는 선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노련하게 어선을 항구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은 신기해서 ‘선장님은 어떻게 이렇게 좁은 길을 그것도 안개가 짙게 껴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밤에 여유롭게 저 큰 배를 인도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선장은 ‘예, 선생님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기 앞에 불빛들이 보이지요? 저기 세 개의 불빛이 일렬로 정열이 되면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만약 세 불빛 중에 하나라도 삐뚤어지면 빨리 각도를 맞춰서 바르게 잡으면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삶을 살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나 말들이 올바른 것인가를 판단하는데도 세 개의 불빛 주파수가 맞춰져야 합니다. 첫째는 내적인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비추어 내 안에 기쁨과 평안이 있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공동체의 유익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확신이 있어도 교회와 공동체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 그리고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세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내적 외적인 확신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개의 불빛이 나란히 맞춰질 때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주파수가 잘 맞추어진 것입니다. 신앙인의 기쁨과 능력은 세상의 주파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출 때 그곳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흔들리거나 낙심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문제가 더 커 보이고, 나는 이제 틀렸어 라는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분이 있습니까?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내 삶의 기준이 세상의 주파수에 맞추어져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고정해 보십시오. 하늘의 위로와 기쁨이 내려옵니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허락해 주십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고, 주님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고집하는 주파수를 중심으로 채널을 고정해 놓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찾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계속 요구한 것이 있습니다. 표적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서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말씀 한 곳을 찾아서 읽어봅시다. 요한복음2장 23-24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무엇을 보고 믿었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상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직접 본다면 압도되지 않을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다’는 말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신뢰할 수 없기에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시므로’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표적을 쫓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또는 다른 표적이 따르지 않으면 언제나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시기에 그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선동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가장 크게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며 겉옷을 벗어 길가에 깔았던 이유는 놀라운 표적과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환호와 호응이 원망과 저주로 순간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표적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것일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며 ‘내가 너의 믿음을 보니 내 마음을 줄 수가 있겠구나’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미안하지만 너의 믿음이 미덥지 않아서 아직 내 마음을 줄 수가 없구나. 네 믿음을 안심할 수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음을 놓으시고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시면서도 이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적을 통해서는 그의 믿음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적은 주로 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징표입니다. 반면에 믿음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하나님과 나와 끊을 수 없는 신뢰의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마음의 신뢰를 주지 않는 외적인 순간의 변화는 믿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정한 기적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이적을 통해서 마음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온전히 변화되면 그것은 진정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이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의 흥분이고 호기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기적이 아닙니다. 단 한 번의 기적이 마음을 변화시키면 또 다른 표적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적이 마음의 변화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표적이 계속 따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불신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표적을 계속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보면 불안정합니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합니다. 혹시 어느 곳, 어떤 사람이 신령하다고 하면 그런 곳을 쫓아다닙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세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계속되는 표적을 원합니다. 그 표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지지 않으면 안절부절 합니다. 매우 신령하고 열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대사를 지냈고, 2008년부터 1년 동안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하중 장로님이 쓴 자서전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정성스런 기도 가운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47세 때에 회심을 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공직을 감당하면서도 신비하고 놀라운 영적인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책을 읽어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역사가 그분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기도를 통해 병자들이 치유함을 받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분이 믿기 전에는 폭탄주를 마시곤 했는데 믿고 나서 술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공무상 마시는 포도주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것 정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식 석상에서 포도주로 건배를 하는데 잔을 쥔 팔이 올라가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아서 몸을 숙여서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구토가 일어났습니다. 

그날로부터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영적인 놀라운 일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분의 책을 읽고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영적인 부분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보는 것은 그 분의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부분을 어떤 자세로 임하는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그분의 신앙을 긍정적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그분은 ‘이적을 쫓는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적이 쫓아다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적을 쫓아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곳에 신령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 머리를 들이 밀며 안수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기적과 이적의 사자’라고 선전하며 집회를 인도하는 목회자와 교회가 있습니다. 소위 기도를 많이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적을 쫓아다니며 이적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이적을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이적이 그 사람을 쫓아다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믿음을 일상생활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깊은 산골과 어느 신령한 곳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어느 이적을 만나는 곳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은 다른 곳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인 가정과 직장, 교회, 그리고 이웃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신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 가정이 말씀 안에서 변하며, 직장과 교회가 변화됨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적이 있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미리 계획하고 계신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삶을 살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며 이적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이적을 쫓아 전전긍긍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이적을 만들어 내는 삶이 진정한 믿음의 삶입니다.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가 사계의 권위자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막 시작되었는데 줄이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연주가 한참 계속되고 있는데 또 줄 하나가 뚝하고 끊어집니다. 연주가 절정에 다다랐을까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줄 하나가 팅 소리를 내며 끊어졌습니다. 파가니니는 그의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마지막 한 줄! 그 줄을 가지고 남은 곡을 멋지게 연주했습니다. 조바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수많은 청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로 파가니니를 칭찬했습니다. 그를 격려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확신하고 붙잡고 있던 인생의 줄들이 갑자기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토록 믿었던 사람이 배신합니다. 인간관계 줄이 끊어집니다. 직장과 사업의 줄이 끊어집니다. 물질의 줄과 건강의 줄이 끊어집니다. 때로는 사랑의 줄이 끊어집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세상의 모든 줄은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줄이 끊어질 지라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든든한 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줄입니다. 옆에 계신 분께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모든 줄이 끊어져도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있는 한 여러분들은 인생을 멋지게 연주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이적을 쫓아다니는 삶이 아니라 이적이 쫓아오는 삶이 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의 줄을 가지고 삶을 연주하는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믿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재하시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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