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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 (고전 9: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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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하나님의 사랑 (고전 9:14-23)

  
구원의 유일한 길을 알고 있는데 그걸 말하지 않는다면 화가 있을 것이다. 구덩이가 있는데, 그걸 알리지 않는 죄. 죽는 길과 안전한 길을 알고도 증거하지 않은 죄.. 전하지 않으면 피값을 찾겠다고 하셨다. 전하지 않았던 에스겔 선지자도 피값을 찾겠다고 하신다. 구원의 길을 확실히 알고 있는데 전하지 않는자는 피값을 찾겠다고 하신다. 
  
지오디의 길. 어디가 길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기쁨이 뭔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한 기쁨이 아니다. 예배의 기쁨, 선교의 기쁨, 생명의 기쁨을 알고서도 전하지 않는다면, 죽겠다.  
  
강박관념을 가져야 한다. 많은 기회, 능력을 주셨는데, 안한다면..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태도와 생각은 무엇일까? 
  
1.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중심적인 외로움. 여러 모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 이유는 그들을 건지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이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죄와 비판은 자기기준대로 생각하면 된다. 자기 멋대로의 기준은 누구에게나 있다. 
  
살리고, 격려하고 도우려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힘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약한자는 약한자같이..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세계속에 같혀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신다. 
  
인간이 범죄하기 이전에도 악이 존재했다. 혼자사는 것. 독처하는 것. 외로운 것.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외로움. 중독, 통증의 원인은 외로움이다.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도 외로움이다. 세상은 해결해줄 수 없다. 무능하게 만들어버린다. 외롭다고 치고 나와서, 섬기고 교류해야 한다. 
  
성 쌓아놓고 성 이름을 에녹성이라고 지었다. 우울증은 집밖에 안나온다. 엄청난 능력과 은혜를 다 탕진하고 성 쌓고 들어가 있다. 상대를 넘어뜨리려고 한다. 
  
우리는 외로우면 안된다. 섬기고, 교류하는데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 혼자 힘으로 하는게 잘난게 아니다. 산모가 혼자 아기를 낳으려는것은 악한 것이다. 자기 죽고, 아기 죽으면 악한 것이다. 

좋은 차, 좋은 가방은 외로워서 그런 것이다. 걸어다녀도 행복하다. 라면 먹어도 행복하다. 
교회도 외로우니깐 자기 중심적인 교회일에 빠진다. 우리교회 우리교회, 섬겨야 할 일을 도외시하게 된다. 

자기 문제에 매몰되어 있으면, 자기 중심적인 외로움을 성령의 불붙는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2. 자기 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자신의 정당함에 발버둥칠때가 많다. 내가 욕먹는 것에 대해서 연연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체면과 평판에만 의지한다. 자기 의에 힘써 복종한다. 사랑 외에는 사람을 세울 수 없다. 살리는 것이기에 법을 어길 수 밖에 없다.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를 건져온다. 살리는 사랑의 특징은 내가 고통당하고 내가 아파하고 십자가 없이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사람은 못살린다. 진짜 살릴려면 비난, 초라한 모습, 오해에도 빠질 수 있어야 한다. 
  
구약에서 나무에 매달리는건 저주다. 죄인은 죽어야 한다. 우리를 살려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예수님께 모든 죄를 덮어씌우면서 우리를 살려주셨다. 십자가의 모순, 공의와 사랑. 율법주의자들이 비난을 한다. 살리는 곳에는 십자가의 정신이 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거든,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전도의 길, 무시 당했다. 내 정당성, 내 영광을 말할 때는 한명도 살릴 수 없다. 무조건 희생, 오해, 무시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엔도 슈사카의 침묵. 영혼 살리는데 자기 의를 버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죽인다. 포루투칼의 페레이라 신부가 일본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했다. 로드리고 신부가 밀물에 고문당했다. 성화를 밟으라고 한다. 페레이라가 배교하라고 한다. 자신의 명성과 구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신앙의 오점을 남긴다는게 두려운게 아니냐? 도전한다. 니 순수성이 죽더라도 복음을 전해라. 

그 발의 아픔만으로 충분하다. 그것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배교했는데 배교한게 아니다. 자기 증명의 자리로 나아갈 때가 참 많다. 내가 얼마나 경건한 목사인지. 믿음 좋은 목사, 영광스런 사역을 했는지. 오해, 초라함. 비난 받으면 어떤가? 영혼 살릴 수 있다면 살리는데로 나아가야 하는거 아닌가? 정말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품어줘야 하는게 예수님 기뻐하는 일이 아닌가? 사역에 있어서 원리원칙, 정당해서 어떻게 영혼을 살릴 수 있겠는가? 자기 의 내 정당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는가? 
  
우리의 정당성이 존재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의 규칙들을 다 어겼다. 자기 중심적인 외로움을 깨버리고 나아가야 한다. 나 하나 정당성을 유지하려고 다 죽일 것인가? (전병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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