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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나 (요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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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나 (요 13:12-17)


과학이 많이 발달돼서 옛날 원시인의 문화와 삶도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00년 전 숨진 학봉장군 부부의 미라를 얼마 전에 발견해서 고대 교수인 김한겸 교수가 연구를 했습니다. 미라 하나 가지고 모든 것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분은 1420년 출생했습니다. 키는 167.7cm로 밝혀졌고 턱수염과 콧수염이 많았다라고 밝혀내고 있습니다. 털 하나 없지만 다 찾아냈습니다. 그는 육류와 채소를 갖춘 음식을 골고루 먹었고 민물고기를 날로 먹었다 라는 것도 그 미라에서 찾아낸 겁니다. 그는 폐질환을 앓았고 각혈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애기부들꽃가루를 자주 삶아서 먹여가지고 약이 몸 안에 있는 것도 찾아낸 겁니다. 그래서 남편은 42살에 돌아가시고 아내는 53세에 돌아가셨다라고 과학자들이 찾아냈습니다. 600년 전 시신이지만 시신 하나 가지고 다 찾아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주님은 우리에게 시신을 남긴 것도 아닙니다. 그의 주거지를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도 아닙니다. 의복 한 벌 남겨주신 것도 아니지만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은 주님의 삶을 감추지 아니하시고 오픈하셔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하셨는가에 대해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도 배우지만 그의 삶도 본받기 위해서 성경 속에서 주님의 삶을 찾아야 하고 또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연구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흥미를 가지고 예수님이 무엇을 잡수셨을까, 무슨 옷을 입으셨을까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삶도 우리는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나는 나대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살라고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삶은 일치합니다. 아시아에 있든 유럽에 있든 남미나 북미에 있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고 나의 구주가 되고 주님은 나의 목자가 되고 스승이 되고 감독이 되시고 나의 지도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옷을 입어라 구체적으로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주님은 이런 생활을 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라. 이 정도의 수준으로 이렇게 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기 때문에 이 광야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걸어가신 길로 가야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치 있고 보람된 인간의 삶, 그리고 우리가 모두 찾는 행복은 예수 그리스의 삶을 본받는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죄에 빠진 인류를, 죄에 갇힌 인류를, 죄에 매인 인류를, 사탄에게 지배와 고통을 당하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할 자는 이 지상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지구의 불이 꺼져 있는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빛이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을 비추시고 어둠에 있는 인류를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냐고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우리를 모든 저주와 멸망과 죄악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오,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또 하나의 주님의 삶의 목적은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본을 보여 주시는 모델이 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참인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야 되지않습니까? 가치 있게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영광스럽게 살아야 되는데 그런 삶을 우리에게 본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르쳐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디에 있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본입니다. 너도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도 서로 집에서도 발을 씻겨주고 밖에서도 발을 씻겨주고 남을 향하여 섬기고 봉사
하고 낮아지고 이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발 씻겨주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
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
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내 멍에, 내가 주는 짐을 져라. 이 짐은 가벼운 짐이라. 네가 (죽지 않고)사는 짐이야. 너의 행복이 이
짐을 지는 데 있다 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하나 한 일들을 유심히 보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교양도 없고 또 배운 것도 없는 분들이지만 예수님을
그대로 따라 가면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인류역사에 예수님의 제자들 같이 귀한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본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히딩크 감독이 와서 우리나라 국위도 올려놓고 우리나라 축구를 세계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중
에 가장 큰 것은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과 이영표라는 선수를 길러낸 것입니다. 두 제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우리나라를 얼마 전에도 방문하면서 지성이를 보고 싶어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 제자가 있는 것입니다. 지성이는 히딩크 감독을 따라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을 따라 본받아 살면 예수 안에서 믿음의 지성이가 되고 예수 잘 믿으면 예수의 영표가 될줄 믿습니다.
선생은 제자를 사랑하는 것이 선생의 가장 큰 기쁨인 것입니다. 좋은 제자를 만나서 제자가 잘되는 것
이 스승의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기쁨이 바로 우리에게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
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도 주님이 주신 영광과 축복으로 나라와 민족과 세계에서 우리는 멋진
슛을 살리고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생활하신 그 삶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먼저입니다. 하나님 중심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겁니다. 땅의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늘의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우선했습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짧은 생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겁니다. 우리는 이틀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1년도 하루가 모여서 365일이 되고 10년도 하루가 모여서 3650일이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하루가 끝나면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하루가 없는 나라, 영원한 하루인 하나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땅에 사는 하루하루는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데서 하루를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이 27분입니다. 대원군과 광해군을 제외하면 25분이라고 합니다. 임금님의 일상생활은 많은 것이 다 감추어져 있지만 하루에 일과가 시작되는 것은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일과를 보내셨는가 하는 것은 다 밝혀져 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첫 번째 하는 일이 대비마마에게 가서 문안 인사하는 것입니다. 임금님이 제일 높지만 임금님도 낳은 분에게 가서는 인사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성공했다할지라도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는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은 하나님께 있다 라는 겁니다. 우리의 축복은 하나님께 있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된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사는 길이 하나님이 동행해 주셔야 된다라는 겁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면 내가 너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음침한 골짜기일지라도 우리는 피곤치 않고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 위로부터 주신 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고 성령을 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은 볼 수 없는 힘, 안의 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안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
다. 구원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기쁨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힘은 안에 있습니다. 무기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총칼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군사력도 정치력도 돈의 힘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힘이 2천
년 동안 내려온 것은 우리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안도
안에 있고 우리의 기쁨도 안에 있고 우리의 소망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겉에 보이는 것이 아무 소망
이 없어도 내 안에 소망이 있고, 내 주변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 안에 기쁨이 있기 때문에 늘 기
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보이는 것 가지고 기뻐하니까 한 시간에도 좋았다가 울었다가 기뻤다가
슬펐다가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반복하는 일이 없습니다. 항상 기쁨으로 살고 항상 평안을 가지고 살아
가는 것은 내 안에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의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마
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광야 길을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목마르지 않은
것은 우리 안에 주님의 성령이 주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
고 기도 하는 성도는 안이 부유합니다.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왜 저분이 행복하게 사느냐?
저 조건이 저런 데서 어떻게 찬송할 수 있느냐. 그것은 세상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우리는 안에 축복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막을 통과하는 동물은 낙타밖에 없습니다. 낙타는 아라비아 광야, 사하라 사막 다 통과할 수 있습니
다. 몇 달을 통과해도 갈 수 있는 것이 낙타입니다. 낙타는 다리도 든든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것은 낙
타는 이틀을 물먹지 않아도 40도, 50도를 견디면서 사막을 통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이나 사
람은 물을 먹지 아니하면 피가 진해가지고 그다음에 죽습니다. 피가 진하면 돌지 못합니다. 수분이 끊임
없이 공급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은 못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물은 못 먹으면 죽습니다. 물
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낙타가 물을 먹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낙타의 체질은 몸 안에 있는 모든 수분이 모자라면 전부다 공급을 한답니다. 낙타에게 물혹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과학자들이 물혹은 아닌데 지방이지만 그것도 역시 공급이 된다 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어려울 때는 전부다 공급이 돼서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든다 라는 것입니다. 낙타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물이 있기 때문에 목마름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은 목마를 때 신기루를 찾다가 다 죽는데 낙타는 신기루로 안 간다는 것입니다. 꼭 길을 따라 끝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신기루를 처음 봤습니다. 세렝게티라는 곳에 가서 보니까 눈으로 볼 때 저쪽에 물결이 치는 겁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물결이 쳐서 그쪽으로 가니까 완전 사막인 겁니다. 그래서 광야를 걸어가다가 사람도 죽고 동물도 다 죽는 것은, 목마르니까 그렇습니다. 거기는 물이 일체 없는 곳인데도 물로 보여 가지고 가보면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는 겁니다. 낙타는 자기 안에 있는 물 때문에 목마르지 않기 때문에 통과하는 것입니다.

오늘 물이 아닌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에 목말라서 헛된 사랑을, 신기루의 사
랑을 찾다가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정욕에 목말라 가지고 세상 욕심에 목말라 가지고 세
상으로 갔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걸어갈 때 목마르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가 내 안에서 강같이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말씀합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안에 양식이 있는 것입니다. 밖
에 양식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안의 능력인 것입니다. 위로부터 능력은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내가 너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우리
는 만 가지가 어려운 데도 항상 평안하고, 세상은 만 가지가 좋은데도 항상 불평하고 평안이 없는 것입
니다. 평안을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기쁨을 찾아 헤매지만 이 세상 신기루에서 무슨 기쁨이 있습니까?
우리의 기쁨은 안의 기쁨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은 안에 있는 것입니
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 조건이 없는데도 항상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광야를 걸어가도 주님이 지켜주심으로 항상 새 힘을 얻어서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너무 피곤하다고 합니다. 애들 때문에 피곤하고 남편 때문에 피곤하다고 합니다. 남편보고 밖에서 밥 먹고 들어오라고 그러고 밥해 주는 게 피곤하다 라는 겁니다. 제일 나쁜 남편이 삼식이라고 합니다. 세끼 다 먹는 남편이 제일 나쁘다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제일 좋은 남편이 무식입니다. 집에서 안 먹는 남편이 좋다는 말입니다. 남편 때문에 교육 때문에 피곤하고, 전부 피곤하다고 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겁니다. 왜 이렇게 피곤합니까? 이렇게 좋은 세상 왜 피곤합니까? 우리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면 늘 소망을 가지고 살고 기쁨을 가지고 살고 메마른 땅이지만 광야지만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살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에서 최고로 잘 사는 데도 너무 짜증내고 불편해 하고 괴로워하는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오는 영적인 궁핍입니다. 영적인 핍절로 오는 병인데 이것을 육적으로 자꾸 해결하려고 하니까 더 피곤해지고 더 갈급해지고 더 목말라지는 겁니다. 오늘 대학이 다 피곤해하고 정치가 다 피곤해하고 기업이 다 피곤해합니다. 이 피곤이 어디서 왔냐, 무엇 때문에 피곤하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영적인 힘이 없으면 피곤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심령은 목마릅니다. 정욕에 목말라서 정욕을 쫓아 헤매니 정욕을 채워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내 심령, 내 영혼의 축복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 있거나 없거나 높거나 낮거나 다 광야의 길을 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메마른 땅을 걸어가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도움을 받고 하나님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 중심해서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마음에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그런 게 없다 라는 겁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라는 겁니다. 왜? 안에서 생수가 나오고 안에 기쁨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기쁨을 준다 그러니 결혼하고 일주일 만에 헤어지는 겁니다. 남편이 주는 게 아닙니다. 아내가 주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광야 생활을 한평생 걸어가는 모든 성도들의 승리의 삶은 영적인 강건한 하나님 중심의 삶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건강도 하나님 경외하면 건강해진다 라는 겁니다. 북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보세요. 산삼, 북한에 있는 거 혼자 다 먹어도 건강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만을 위해서 세계에서 좋다는 것 다 갖다 주고 묘향산, 차령산맥, 백두산에 나는 좋은 산삼 몇 백년 된 것, (여러분이 먹는 풍기인삼은 그런 거에 비하면 삼도 아닙니다) 몇 억짜리를 먹는데도 건강한 게 아닙니다. 왜? 사람은 꼭 고급 먹어야 건강한 게 아닙니다. 좋은 병원에 가야 건강한 게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다 지키고 경호해도 북경 갈 때 기차 타고 가고, 비행기가 겁나서 비행기 못 타고 기차 타고 가는 거 보세요. 불안한 겁니다. 다 지켜줘도 하나님이 안 지키면 불안한 겁니다. 기쁨조가 얼마나 있는데도 기쁜 것 봤습니까? 날마다 기쁘게 하려고 기쁨조가, 부대가 있는데도 기뻐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무슨 근심이 그렇게 많나 싶고,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 믿는 우리는 산삼 안 먹고 풍기삼 먹어도 얼마나 기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은, 이 인간의 행복은 평범한 데 있습니다. 제일 좋은 약, 쑥뜸 해 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쑥 떠도 안 되면 그것은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회개하고 쑥뜸 떠보세요. 쑥떡 먹고 쑥차 마셔봐요. 민들레차 먹어 보세요. 민들레 먹으면 다 좋아집니다. 질경이 국 끓여 먹어 보세요. 얼마나 몸에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 데서 다 병이 낫습니다. 현대의학, 약 채취하는 것도 다 그런 데서 나옵니다. 

여러분이 맛있게 먹으면 약이 됩니다. 맛있게 먹고 맛있게 자고, 예수님 삶 보세요. 배 위에서도 자지 않습니까? 항상 만왕의 왕이시지만 어디서든지 누워 잘 수 있으면 그거 복 받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좋은 데 가서 자야 되는거는 병입니다. 좋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잡수시는 것도 디베fi 바닷가에서 물고기 가져다가 구워 가지고 나무에다 구워 잡수셨습니다.
여러분 물고기를 재에다 구우면 완전히 잿덩어리입니다. 예수님은 잿덩어리 잡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
을 좀 낮추세요. 오늘 현대인의 병은 영적으로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으면서 육적으로 자꾸 고급화하고
높여가지고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고 입을 옷이 없어가지고 오는 병입니다. 여자분들 쇼핑할 때 보면
옷 한 벌 찾는데 종일 걸립니다. 아무거나 입으세요, 평범한 것 좀 입으세요.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라고 크게 살아
도 안 되고, 돈 벌었다고 우리가 돈 가지고 사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면 돈 없는
사람은 죽습니까? 돈 없어도 얼마든지 예수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라는 겁니다.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삶을 사실 때 육신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 필요 없다, 입을 것 필요 없다,
돈 필요 없다, 교육 필요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다 육신의 것을 취하고 사셨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최고로 고급화하고 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부인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시고 다
섬기시고 가까이 하시되 꼭 최고의 사람만 사귀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친구 한 명이
나오는데 나사로라는 친구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내 친구 나사로가 지금 아프다고 찾아가신 겁니다. 여
러분이 꼭 최고의 높은 사람만 사귄다고 해서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평범한 사람을 사귀면서
만족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최고의 인물이어서 최고로 높이 올라가서 그것이 성공적인 삶은 아
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지신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남에게 줘서 도와주고 사랑해 주고 불쌍히
여기고 치료해 주고 은혜를 베풀려고 살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 은
혜를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받은 은혜가 많습니까?

제가 어제 어떤 책을 보니까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의 최고의 인기 있는 배우가 병이 들어서 혈
압으로 걷는 것조차 잘못하는데 나이든 강아지가 문을 열어달라고 자꾸 긁으면서 자기를 향하여 도와달
라고 해서 깨닫기를 나도 도와줘야 할 것이 있구나, 나도 참 축복받은 삶이구나. 저 강아지가 나보고 저
렇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하구나.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다시 일어나서 미국의 최고
의 배우가 됐습니다.

보세요. 오늘 우리들이 만족하려고 하면 끝없이 올라가도 만족이 없지만 내가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어
도 나보다 더 어려운 분 생각하면 거기에서 우리는 지혜가 나고 힘이 나고 용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욕심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얼마 살지 않아서 잠깐 있다가
종착역이 오는데 잠깐 있으면 끝나는데 무슨 욕심을 그렇게 오래 갖고 살려고 하십니까? 60이 되셨습
니까? 저도 다 됐지만 전부 갈 준비합니다. 내 목회는 전부 지금 가는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여기 영원히 살 곳입니까? 우리는 정말 가야 할 나라가 우리가 믿는 나라가 저 하나님나라, 위에 있지 않습니까? 땅의 생활은 조심하며 살고 긴장하며 살고 아껴서 살고 절제하며 살고 근신하며 살고 좁은 길을 걸으며 살아야 이 광야 길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다 죽었으면서 병들었으면서 육적으로 흥청거리고 나잘났다 생각하고 돌아다니면 이것은 영육이 다 실패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분명한 삶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으로 살고 이웃
생각하며 살고 섬기며 살고 감사하며 살고 이렇게 살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땅의 삶을 누리고 이 땅
을 떠나서 영원한 하나님나라까지 다 함께 누리는 축복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거룩한 주의 날입니다. 육신의 생활에 너무 바쁘게 살아온 저희들이 오늘도 아
버지 집에서 반성하며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우리가 가야 할 나라도 생각하고 위로부터 내리시는 큰 은
혜를 힘입어 육적인 삶에도 곤비치 않고 영적인 삶에도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
서. 주님이 걸어가신 분명한 모델이 있는데 헛된 모델을 따라 가고 헛된 이 세상을 쫓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아버지,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신기루를 따라가는 이 허황된 꿈에 깨어나게
하여 주옵시고, 이 세상 어디에도 참기쁨 평안 행복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깨닫는 시간 만들어
주옵시고 그의 나라를 기다리며 그의 나라와 함께 영원히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
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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