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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까지 '요셉'을 도우셨다 (창 41: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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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요셉'을 도우셨다 (창 41:51-57)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부모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7). 지금 내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찾으라는 당부입니다. 뿌리가 없는 줄기,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그가 48세에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그것도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말입니다. 어떻게 오늘의 그가 있게 되었습니까? 그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두고 떠나버려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고향인 케냐를 찾아가 친척들을 만나고,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뿌리를 찾고 확인한 오바마, 그는 그때부터 더 이상 흔들림이 없습니다. 목표를 향하여 질주했고, 드디어 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10년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맡기고 있고, 내 영혼은 ‘충정교회’라는 곳에 맡기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간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했으며, 광복을 맞이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6.25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특히 최근 북쪽에서는 3대 세습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으며, 저들 헌법에 ‘마르크스, 스탈린’조차 제거해 버린 채 ‘김일성당’임을 대내외에 공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술국치, 38선, 6.25, 휴전선도 모르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정부는 고등학교의 한국사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왜 나라를 빼앗겼는지, 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독립운동을 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민족의 수난과 함께 태동한 교회가 바로 충정교회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그렇게도 기다리던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찾아온 해방이기에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세운 대표적인 교회가 영락, 평안, 산정현교회, 그리고 그중의 하나가 서울 서대문 충정로 언덕배기에 세워진 충정교회였습니다. 5년 뒤, 6.25전쟁이 터지자 잠시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못한 때도 있었으나 전쟁 통에 남하한 많은 분들이 합류하면서 교회는 크게 흥왕했습니다. 그간 우여곡절과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셨고,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000년 11월, 일산시대를 열어주셨습니다. 그 후, 우리는 하나님께서 쏟아부어주시는 복된 장맛비를 맞으며, 칠년풍년이 시작되는 감사와 감격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를 일산으로 옮길 때 약 180명이 함께했고, 그 중에 지금까지 변함없이 함께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현재 약 100여명쯤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참 소중한 분들입니다. 이들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만 하나님의 교회가 날로 날로 든든히 서 가는 것을 큰 보람과 기쁨으로 여기며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엘리야를 위하여 칠천 명을 남겨두었듯이, 여기 일산에 예비해두었던 주의 자녀들이 합류하여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창립 65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뜻 깊은 주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 지파의 수대로 돌 하나씩 강 중앙에서 가져다가 세우도록 하셨습니다(수 4:1-3). 그러면 그 돌을 본 후손들이 관심을 가지고 묻습니다. ‘저기 세워진 돌이 무엇입니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면 선조들은 그때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후손들에게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유언과 일맥상통합니다. 그 이후로 돌을 세우는 이것이 전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엘도 그러했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블레셋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삼상 7:3).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이스라엘 앞에 패하게 하셨습니다(삼상 7:10). 그때에 사무엘이 어떤 액션을 취하였습니까?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성경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중요한 일이 있었을 때 돌을 세웠습니다. 특히 야곱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인상 깊게 돌을 세웠습니다(창 28:18; 35:14). 그런데 그의 아들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돌을 세우지 않고, 대신 아들들을 낳아 그 이름을 ‘므낫세, 에브라임’이라 부릅니다. 왜 요셉은 돌을 세우지 않았을까요? 므낫세란 ‘잊어버렸다’, 에브라임은 ‘번성하리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붙인 두 아들의 이름 속에는 요셉의 신앙고백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잊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 번성케 해주신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 두 문장,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나를 도우셨다’가 됩니다. 입술로 이렇게 고백하면서 왜 ‘에벤에셀’ 돌은 세우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아는 대로 야곱의 아들들이 12지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지파는 없습니다. 그가 남긴 것이 무엇입니까?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이 두 지파가 가나안땅 거의 반을 차지합니다. 요셉 자신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져도 좋습니다. 대신 므낫세, 에브라임이란 이름은 영원히 기억에 남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돌은 긴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고 묻혀버리지만, 이 두 이름은 영원토록 남도록 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이 요셉인 나를 도우셨다’는 이 역사적 사실이 기념비적으로 남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자녀들의 이름이 지파 이름이 되도록 하여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영원토록 기억되도록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지금 내 삶의 현장에 어떤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정말 뜻 깊은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입에서 요셉의 고백이 터져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서 사무엘의 액션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시련과 어려움이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설령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것이 도리어 복이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 위에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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