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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최후의 만찬 (마 26: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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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마 26:17-30)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에 프랑스 의회는 모든 종교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주일은 사라졌고 성직자들은 숲속으로 추방되어야 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은 예배하기를 중단하지 아니했습니다. 전령꾼들이 집집을 돌면서 이야기 합니다. 오늘밤 자정이 넘은후에 동네습지 공터에서 모이겠습니다. 하고 전하고 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인적이 끊긴 깊은 밤중에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옷을 입고 빛을 차단한 등잔을 들고 그리고 지정된 장소로 모여듭니다. 추방된 목사님이 나타나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성만찬을 행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사실 그것은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언제 무장한 군인들이 달려들어서 그들을 색출해 갈지 모르는 상황속에서도 그들은 담대하게 성만찬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그들의 육체는 죽임을 당할지라도 주님이 다시오실 때 다시 살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찬식은 역사의 어둠속에서도 진행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성찬을 대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마다 1년의 몇 번 절기때에 혹 어떤 교회는 매달 첫 번째 주에 성찬식을 행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성찬식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기독교각료의 저자고 장로교의 창시자인 요한 칸빈이 은혜의 3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두 번째는 성찬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귀로듣고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은혜라면 성찬은 눈으로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적으로 느낄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성찬식은 보이는 말씀이다. 느낄 수 있는 말씀이다라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듣고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의 은혜를 성찬을 통해서 먹을 때 우리 삶에 더큰 성숙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로 성령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말씀을 잘 듣고 성찬을 통해서 깊은 은혜를 맛보기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마음에 어두움을 조명하고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주신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이처럼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에 따라서 자주하는 교회도 있고 자주하지 않는 교회도 있지만 그러나 초대 기독교에서는 이 성찬을 매주일 행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이면 떡을 떼었다했습니다. 떡을 떼었다는 이야기는 말씀만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나서 이 성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성찬 예식을 진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찬예식의 첫 번째 사건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마지막 최후의 만찬 유월절 식사를 나눴던 기사를 보통 최후의 성찬식의 근원으로 유래로 설명하고는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날 이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유월절을 준비해라 유월절 식사를 준비해라.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어느가정에 부탁을 했고 유월절 식사를 위한 모든 것을 갖췄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우리중에 누가 예수님을 팔아 먹겠습니까 우리중에 누가 배신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와함께 국속에 손을 넣은 자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떡과 빵을 그냥 먹으면 목에 걸리니까 국을 만들어서 국 그릇에 찍어 먹었습니다. 그러면 찍다보면 손이 담겨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같은 국그릇에 손이 담겨진다는 것은 굉장히 친밀한 관계라는 겁니다. 함께 국그릇에 손을 넣는 다는 것은 아주 절친한 동지의 관계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와함께한 동지중에 한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 가롯유다가 찔리니까 저입니까 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말한 그대로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가롯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집밖으로 나감으로써 그는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는 결국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결국 목메어 자살한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식사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떡과 잔을 드십니다. 그리고 떡을 들고 축복하시고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주십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받아 먹으라 또 예수님은 잔을 드시고 감사기도를 하신후에 이것을 너희가 받아먹으라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 내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읽은 본문의 유래입니다. 

이 본문은 바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월절 규례로부터 시작이 되어집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10번째 재앙인 애굽의 장자의 죽음을 내리실 저녁 그 전에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린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인방에 발라라.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뛰어넘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은 다 죽임을 당했는데 문설주와 인방에 양을 잡아서 피를 바른 유대인들의 가정은 무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해방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앞으로는 영원한 규례로 유월절을 지키라.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바르되 또 너희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라. 무교병이라는 것은 효모를 넣지 않은 딱딱하고 맛없는 떡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애굽에서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쓴나물이라는 것은 쓰디쓴 인생의 아픔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띠를 매고 지팡이를 짚고 급히 음식을 먹고 출발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오랫동안 기념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월절이 되면 해방과 축복의 날로 지킵니다. 우리를 종되었던 자리에서 이끌어냈던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우리로 보면 해방절과 같은 것입니다. 그날은 감사와 감격과 축복과 자유의 날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한주간 유월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식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 이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죽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내어주시고 자신의 몸의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를 구속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만찬의 구약적 유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만찬의 의미는 뭘까요. 떡이라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몸이다 그랬습니다. 이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을 가르쳐서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떡이라는 것은 우리가 늘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면 밥을 떡이라고 설명하면 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밥을 먹지않고 밀가루로 반죽해서 떡을 만들어 먹으니까 그들의 주식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떡을 먹지 않고 밥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 아니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영원히 살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떡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들음으로 영원히 살수 있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맛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서 자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떡을 떼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떡을 먹는 자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축복과 은혜를 누릴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떡을 떼어주듯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또 오늘 예수님이 잔을 나누셨다. 포도주 그것은 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피는 곧 구약에 의하면 생명입니다. 피를 흘리면 누군가에게 수혈을 받아야지 수혈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이는 자신의 피 보혈의 언약이라고 언약의 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받는 사람만 그 피를 먹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의 죄를 씻음받고 하늘나라 백성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떡을 먹고 이잔을 받는 자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그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예수님의 보혈,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새로운 언약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53절 이하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만찬에 동참할 때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고 영원한 축복에 들어갈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떡과 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만찬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성만찬은 구별된 식사입니다. 성찬식은 아무나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거룩한 식탁입니다. 성찬상을 놨지만 하나의 식탁입니다. 신령한 식탁위에 신령한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 없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성결해야 하고 세례를 받은 분만이 여기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백성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찬은 하나님의 구별된 사람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이게 아무나 먹을 수있는 떡과 포도주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들 선택된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 주일 모여서 주님의 떡과 피를 나누면서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구별된 사람들은 구별된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세상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두 나라 시민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지만 이 땅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본향을 향해서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찬식을 아무의미없이 성찬을 받지 마시고 구별된 식사 선택된 사람으로서 내가 이 은혜에 동참하는 구나를 느껴야 합니다. 

또 성찬식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겁니다.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과 피를 내어주심으로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치러질 자리에 주님이 대신 그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굉장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업적이나 공로나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찬을 받을때마다 그리스도의 찢겨진 살과 흘리신 보혈을 생각할때마다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찬의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나를 위해 희생당하신 그리스도를 늘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 은혜는 갚아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성만찬을 받을 때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분들은 성찬식하면 예수님의 죽음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이지만 동시에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승리를 주신 사건을 기념하는 사건입니다.  하나의 놀라운 축복의 예식입니다. 세상에서 힘없고 낙심하고 피곤하고 지친인생도 이 성찬의 떡과 피를 마셨을 때 새로운 용기로 용솟음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새 힘이 솟는 것입니다. 왜냐면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까. 

그리스도가 승리하심으로 나도 승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밀려오는 겁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기쁨과 은혜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유월절을 통해서 해방된  기쁨과 감격과 승리와 자유의 선언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죄에 묶임 속에서 해방되어지고 율법의 억압속에서 자유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고 살아가게 됨을 감사하는 기뻐하는 그런 예식으로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이 성찬은 또한 나눔을 결단하는 예식입니다. 우리 주님이 떡을 들고 축복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성찬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서로를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축복해야 합니다. 축복을 나누는 사람, 또 사람을 나누는 사람, 복음을 나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나눠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몸을 나누고 피를 나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나눠주셨습니다. 사랑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가 나눠줄 수 있는 것을 나눠줘야 합니다. 그렇지만 피를 못나눠 줍니다. 물론 수혈, 남에게 헌혈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를 못나눠주고 내 생명을 못나눠줘도 내 사랑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귀한 복음을 남에게 나눠줄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눠줄 때 그에게 구원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눠줍니다. 물질을 나눠줍니다. 정성을 나눌수 있고 용서를 나눌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교회 공동체는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이 모여 유무장통했다. 집에 가지고 있는 물질들을 가져다 사도앞에 가져다 놓으니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서 나눴다는 것입니다.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벳사다광야에서 오천명의 무리를 먹이실 때 그들이 모두 굶주려 있고 피곤해 있어서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먹을것이 어디있습니까. 돈이 어디있고 떡이 어디 있습니까. 제자들이 결국 찾다가 한 소년의 도시락 오병이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 를 함께 나눌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가진것을 내어놓고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공동체는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 세상속에서도 귀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월드비젼에 홍보대사로 지내고 있는 김혜자 권사님 유명한 탤런트이고 영화배우입니다. 김혜자 권사님이 쓰신 책이 꽃으로도 때리지말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며 이 사랑의 나눔이야 말로 그 어떤 전쟁과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는 나눔이라는 것이 얼마나 존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끌어모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시고 그 몸을 나눠주시고 그 피를 나눠주셨듯이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교회 교우들이 남에게 잘 나눠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기적인 사람, 구두쇠같은 사람, 모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나눠주는 사람 베푸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크리스챤입니다. 그 안에 예수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1929년 출생했다가 1993년 사망한 영국의 유명한 배우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오드리 헵번이라는 유명한 여배우입니다. 이 여배우가 출현한 영화가 로마의 휴일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영화가 역사속에 있습니다. 이 오드리헵번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속에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라 나이를 먹어가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서 손이 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당신은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아주 유명한 배우입니다. 그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2차대전에 태어나 성장했는데 굶주림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아프리카의 아동들이 굶어죽어가고 병이들어 치료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몸을 그것을 위해 불사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을 삽니다. 아이들을 위해 먹이고 입히고 치료해주고 그 일을 감당합니다. 그가 죽을때까지. 그는 말년에 암으로 큰 고통을 당하는데 그 암의 고통을 안고도 그 아이들을 위해 수고합니다. 그는 유엔의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일생을 바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를 존경합니다. 

미국 영화 100년의 역사속에 가장 뛰어난 배우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 중 오드리헵번이 3번째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는 존경과 사람을 받던 아름다운 여배우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외모보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속사람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나눌 수 있는 마음 그것이 귀한 겁니다. 

오늘 주님은 이 성만찬을 통해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피와 당신의 살을 우리를 위해 나눠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세상에 나가서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성도, 사랑을 나누는 성도, 이웃을 위해 물질을 나누는 성도, 이웃을 위해 내 삶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때에 주님이 정말 여러분 속에 함께 하시고 여러분과 동행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나도 그 안에 있고 그도 내 안에 있을 것이다. 성찬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드려질 이 성찬예식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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