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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리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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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담임)

부부나 연인, 또는 부모 자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할 때 연리지 사랑이라는 말을 쓴다. 연리(連理)란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말하고, 연리지란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져 하나의 나무가 된 것을 뜻한다. 연리지가 되면 한쪽 나무가 잘려 나가도 다른 쪽 나무가 양분을 공급해 주기에 살아갈 수가 있다. 송나라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다.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을 비유할 때 더욱 많이 쓰인다. 그것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쓴 ‘장한가(長恨歌)’ 때문이다. 그 시에서 백거이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그 후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애틋하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인간의 사랑을 나무에 비유한 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이다. 전남대 김월수 교수가 쓴 <과일나무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나무에도 감정이 있다. 나무도 인간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충치도 앓으며, 사춘기도 겪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혈압과 빈혈증세도 나타내며, 거기다 인접한 나무와 진한 사랑도 나눈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이 나누는 그러한 사랑의 감정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두 나무가 하나의 나무가 되는 연리지는 우리에게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곁가지며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들이 원가지며 참감람나무인 유대인들에게 접붙임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다. 사실, 하나 됨은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의 삼위가 계시지만 한 분이시고, 부부도 두 몸이 하나이며 교회도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하나가 된 유기체다. 중요한 것은 그 하나 됨의 중심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젊은 부부가 등산을 갔다. 가파른 산을 한참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은 조금 앞서 가고, 아내는 남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산 정상으로부터 큰 바위가 남편과 아내 쪽을 향해 굴러 내려왔다. 남편은 그 바위를 보고 몸을 피하면서 아내를 향해 피하라고 외쳤다. 아내는 당황해서 그런지 발을 떼지 못하다, 그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 남편은 급히 아내 쪽으로 뛰어와 아내를 밀쳐내었다. 그래서 아내는 그 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생명을 구한 것이다. 대신 남편은 바위에 머리를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슬프지만 얼마나 지극한 사랑인가. 이것이 바로 연리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연리지 사랑이다. 예수님을 보라.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에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셨다. 생명을 던져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 지극한 사랑을.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존재가 된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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