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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스러운 복음 (딤전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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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복음 (딤전 1:11-16)  
 

사람에게 신앙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신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백번 다시 살아난다 할지라도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신이라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답은 ‘아니다.’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사회를 주제로 공부한 사람들은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야만인이라 할지라도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살인과 도적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박사 학위 논문을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의 「교회관」에 관하여 썼습니다. 로저 윌리엄스는 미국의 인디언의 사전을 처음으로 편찬했습니다. 그가 미국 인디언의 사회를 공부하면서 쓴 글이 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이 영국 사람들보다 더 윤리적이다.’라는 것입니다. 문을 열어 놓고 살아도 남의 집 아내를 탐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 사회는 법이 존재합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법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것을 자연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법을 정할 수 있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야만인이라도 하나님은 그 법을 양심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이라도 양심을 통해 도적질과 살인, 거짓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은 화인을 맞아 어두워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법도를 명백한 문장으로 주신 것입니다. 문장으로 하나님의 법을 받은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가 사십주 사십야 동안 시내산에 머무른 후 하나님의 법도를 받아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법도를 두 돌비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계명이며 율법입니다. 

첫 돌비는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일~사계명). 

두 번째 돌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오~십계명). 인간이 이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 주신 법도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법을 주셨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런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곳에서 쫓겨났고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 법은 하나님이 원하는 거룩한 표준이고 이것을 따라 살 때에 인간은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무엇인지 알고, 인간이 죄인 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지켜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1장 8절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하나님의 법은 선한 법입니다. 그 법을 법 있게 써야 합니다. 그것을 지켜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목적으로 처음부터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바르게 쓰는 것은 그 법을 보고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딤전 1:9-10).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법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구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는 죄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참된 구원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구원자를 찾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됩니다. 복음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인에게 주시는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the glorious gospel of the blessed God)”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복음을 무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죽으면 천국 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과 예수를 무시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떤 심판을 내리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한 가지라도 어긴 사람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지옥에 빠질 우리를 건져줄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문제가 없다면 복음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죄인이고, 지옥에 떨어져야 할 마땅한 존재이므로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은 복되신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영광스러운 소식이기 때문에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이 왜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세 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영광스럽다 

본문 15절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미쁘다는 진실하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빈곤의 문제, 질병의 문제 등을 해결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양심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구원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책임은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 받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나오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 말을 흘려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아무리 죄가 커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믿는 자들의 죄를 대신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은 죄 용서를 받고, 양심에 평안을 얻게 되고, 죽어서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내세적인 측면입니다. 
 
둘째,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원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후로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착하게 살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에게 새 성품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본성을 고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악 된 옛 성품과 하나님이 주신 새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갈등을 일으키는데, 타락된 마음이 이기면 예수 믿는 사람이 죄에 빠지고, 신의 성품이 이기면 예수 믿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새 성품을 주셨기 때문에 새 성품을 따라 살다 보면 거룩하고 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했던 사람도 예수를 믿으면 신의 성품이 들어와서 새로운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현세적인 측면입니다. 
 
셋째, 마귀의 지배로부터 구원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람은 예수 없이 바르게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을 지배하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목은 마귀이며, 졸개들은 귀신(악령)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게 되면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 주시고, 성령이 들어오시면 악령이 쫓겨나고 새로운 성품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28살 때에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의롭게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신 헌법에 대해 데모를 했습니다. 그 당시 데모했던 사람들은 사회의 불의에 대항해 의롭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윤리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령이 지배하고 있고,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살고 바르게 사는 길은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체험한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악령의 지배에서 구원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게 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이 오시면 악한 습관에서 해방되고, 거룩한 생각을 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지옥에서 해방되어 천국 가는 것이고, 타락된 삶에서 해방되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고, 악령에서 해방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고, 수많은 성도가 공통으로 고백하고 있는 체험적인 진리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구원의 영적인 측면입니다. 


Ⅱ.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기 때문에 영광스럽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이전에 사울이었고, 미친 야수처럼 교회를 핍박했습니다(딤전 1:13, 행 8:1-3).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였고 교회를 진멸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로 핍박하고, 죽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옳은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핍박하다가 다메섹에도 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까지 사람을 죽이러 갑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의 빛이 임하여 사울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답변합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다시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 한마디에 고꾸라져서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과 복음이 영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고, 위대한 사도가 되어 성경을 14권이나 기록하는 훌륭한 인물로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은 소망이 없으면 사람을 버립니다. 악하면 버립니다. 거라사 동네에 귀신 천 마리가 들렸던 광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짐승도 아닙니다. 무덤 사이에서 돌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소망이 없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자 광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귀신 천 마리를 모두 내쫓아 주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귀신들이 다 나가고 돼지 떼에 들어가 돼지들이 갈릴리 호수에 뛰어 들어가 모두 죽게 됩니다. 그는 정신이 돌아와 바른 사람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여자 가운데도 변화된 사람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귀신 일곱 마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내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보는 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한 악인이라도 능히 변화시켜서 성자로 바꾸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도끼로 사람을 죽인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재봉 씨가 감옥에서 예수를 믿고 책을 썼습니다. 책 제목은 「고목에 샘물이 흐르고」입니다. 자기의 인생은 고목 같아서 생수가 하나도 없었는데 예수 믿고 난 후 사랑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눈물이 있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고, 거룩함을 사모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고목에 샘물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 같은 사람도 변화시킬까?’ 변화시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죄도 용서하실까?’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Ⅲ. 복음은 하나님이 죄인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인내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광스럽다 

우리가 죄를 한번 지었다고 하나님이 치셨다면 인간은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죄를 지어도 오래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울을 구원해서 바울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는데 아직 죽지 않고 내 발로 걸어와서 이 예배당에 앉아 있다면, 예수도 믿지 않는데 이곳에 왔다면 하나님이 그만큼 오래 참아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구원하실 때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사울처럼 악한 마음을 따라 복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이미 멸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동안에 인간이 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십계명 중의 하나라도 어겼으면 죄인입니다. 십계명을 봐도 어긴 것이 없다는 사람은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얼굴에 무언가 묻었는데 거울을 보지 않으면 뭐가 묻었는지 모릅니다. 거울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둘째,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복음을 받아야 들여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지옥의 형벌에서 해방되어 천국 가게 됩니다.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지옥의 형벌에서 해방되어 천국 가게 되고, 이 땅에서 죄에 눌려 살던 사람이 거룩한 인생을 살게 되고,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의 인도 가운데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괴수라도 능히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죄 때문에 양심에 고통이 있는 분들은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고,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사시고, 죽어서도 천국 가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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