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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약의 사람 (수 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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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사람(수14:1-15) 
 
 
오늘 말씀의 주제는 믿음의 도약입니다. 도약은 도전하여 뛰어오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도약이나 도전은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갈렙과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이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도약을 봅니다.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요. 성도님들 가운데 기도를 잘 하는 분이 계시고 못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잘 하시는 분들은 처음부터 기도 잘 하신 분이 아니예요. 처음부터 기도의 용사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어떤 계기로 인하여 도약하기로 결단해서 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도약을 하는 사람들은 도약의 계기를 붙잡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예요. 기도의 단계를 몇 단계를 뛰어올라 지금 우리 앞에 기도의 용사로 서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지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선수는 박지성하고 김연아입니다. 저도 박지성이를 제일 좋아합니다. 왜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에게 환호를 합니까? 그들이 자기 영역에서 도약을 시도했고, 도전하여 마침내 뛰어올랐기 때문입니다. 남다른 결단이 있고 남다른 노력이 있어요. 

저는 박지성을 아주 좋아합니다. 최근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골대 앞에서 헤딩으로 총알같이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날 얼마나 기분이 좋고 신나는지 몰라요. 왜 우리는 박지성이나 김연아를 볼 때 행복해지는가? 그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 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갈렙을 생각하고 갈렙의 믿음의 도약을 생각해봅니다. 오늘 14장에서 갈렙이 등장한다 이것은 문맥을 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 14장의 상황이 어떤가? 14장부터는 가나안 땅 정복전투를 다 끝내고 이제 각 지파별로 땅을 기업으로 얻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나안 전투를 살펴보았는데, 요단강 건넌 이후에 중부, 남부 그리고 북부 이런 순서로 됩니다. 이게 13장까지 해서 승리를 해요. 왜 전투를 합니까? 그 땅을 기업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땅 얻으려고 전투 한 것입니다. 

그러면 전투에서 이겼으니까 땅을 차지하는 것이 맞는데 여기에 한 가지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각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 땅을 얻기는 얻지만, 그 땅에 아무도 안 살고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각 지역에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아있습니다. 그 원주민들은 골짜기와 산꼭대기 등에 숨어서 왠만해서는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지파 중에 어느 지파가 가장 먼저 나설 것인가? 한 지파가 영적으로 일어서면 다른 지파들도 따라 나설텐데 이 까다롭고 어려운 일에 누가 나섭니까? 유다지파의 갈렙입니다. 14장 갈렙의 도약 갈렙의 도전이 있고 19장까지 나머지 지파들이 차례로 일어서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이것을 믿음의 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도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 속에 생생합니다. 

다같이 6절을 봅니다. 갈렙은 유다지파예요. 열두 지파가 이제 자기 땅 자기 기업을 얻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그냥 얻는 게 아니고 그 땅에 남은 가나안 백성들을 쫒아내고 얻는 것이예요. 누가 먼저 갈 것인가? 다들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유다지파가 여호수아에게 왔다는 것입니다. 왜 유다지파가 가장 먼저 치고 나왔는가? 그 유다지파 중에 한 사람 갈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다지파 사람들 모두가 다 영적으로 도전정신이 가득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떤 공동체가 일어서려면 그 공동체 전원이 다 깨어있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항상 한 두 사람, 아니 그 중에 한 사람이 뭔가 도전을 결단합니다. 그 한 사람의 도전이 그 공동체를 일깨우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왜 갈렙이 자기 유다지파를 이끌고 여호수아 앞에 왔는가?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이예요. 갈렙과 여호수아는 40년 지기 친구예요. 그가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7절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내가 마흔 살이었을 때에 자네 가데스 바네아 기억나지?’ 여호수아 자네와 나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도 기억나지? 

여러분 가데스 바네아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은 모세가 열두 정탐군을 가나안 땅에 보냈던 땅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자기 지파 대표로 정탐군으로 선발되어 가나안 땅을 정탐합니다. 그 때 열 두명 중 열명이 가나안 땅을 혹평할 때, 이 두 명은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들어가면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열 두명 중 열 명이 반대합니다. 불신앙의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가 그날로 광야생활을 시작합니다. 40년간을 광야를 헤매이게 됩니다. 믿음의 말을 했던 사람들도 공동체 전체가 불신앙을 택하였을 때는 어때요? 광야의 길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렘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너희 두 사람은 40년 광야생활 한 이후에, 약속의 땅을 밟게 될 것이다! 왜 그래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믿은 사람들은 믿음대로 되어야죠. 그리고 또 하나 약속! 민수기 14:24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어요. 오직 내 종 갈렙은 그들과 마음이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좆았으므로! 

여러분 이것이 바로 도약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약속을 받고 뒤로 물러갑니다. 갈렙은 약속을 받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신명기 1:36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으니 그가 발로 밟은 땅을 내가 그에게 주리라 그래요. 

그런데 10절을 보면, 그 약속을 받은 지 몇 년이 지났습니까? 45년이 지났어요. 왜 그러냐 하면 광야생활 40년 그러고 가나안 정복 전투가 5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갈렙에게 약속하신 지가 45년이 흘렀어요. 그러나 갈렙이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하나가 뭔가? 하나님의 약속은 45년이 흘렀다고 유통기한이 지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카드에는 유효일자가 언제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유효일자가 언제까지인가? 갈렙은 하나님 약속을 들은 지 45년이 지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45년이 지난 것이 갈렙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천년이 지나도 유효하다 이걸 알아요. 천지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랬어요. 이 말씀 붙들고 헤브론 산간지역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도약은 누가 하는가? 믿음의 도전은 누가 하는가? 하나님 약속이 내 속에 생생한 사람만이 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생활 하면서 하루도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갈 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예레미야 서를 갖고 있었어요. 거기 보면 바벨론 포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회복시키리라 그 약속이 있어요. 

다니엘은 기도에 있어서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총리 일하면서 하루 세 번씩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70년을 어떻게 하루같이 기도합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이 오늘도 생생하니까!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어떻게 아들 주실 것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창세기 15장에 하나님의 약속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시행하신다는 뜻으로 송아지 고기가 둘로 쪼개진 사이를 횃불 모양으로 지나가시면서 맹세하십니다. 내 생명을 걸고 너와 한 약속을 기억하리라! 

여러분 믿음의 도약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믿음으로 뛰어오르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랬어요. 초신자 건 30년 기신자건 내가 선 자리에서 뛰어오를 것인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것은 자기가 결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도약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 다니면 다 도약이 가능한가?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은 도약이 불가능합니다. 시큰둥한 사람은 도약이 막힙니다. 그가 어떻게 새벽기도를 시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약속이 내 안에서 고장난 전축처럼 지지거리는데, 어떻게 잠을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있어요? 안됩니다. 그래서 도약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도약의 모델을 한 두 사람 정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부터 도약이 시작됩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누구처럼 신앙의 도약을 하기 원하세요? ‘없는데요!‘ 그 사람은 이미 매너리즘에 들어간 것입니다. 누구를 닮고 싶으세요? 물어볼 때, 아 저는 다윗을 닮고 싶습니다. 다윗의 어떤 면인데요? 예 다윗은 예배를 자기 최고의 주제로 삼았더라구요! 예 저는 갈렙을 닮고 싶습니다. 어떤 면입니까? 그는 진취적이더라구요. 저는 이렇게 소극적이고 담대하지 못해서 오늘부터 갈렙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모델을 찾든지,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찾든지 그것은 맘대로 하세요. 그분들이 어떤 약속 붙들고 그렇게 뛰어올랐는가를 관찰하시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믿음의 도약을 했는지를 보시고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따라 하는 것이 도약이예요. 그런데 그렇게 믿음으로 결단하고 얼마쯤 해보면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점점 나에게 생생해진다는 확신이 들게 됩니다. 

예배에 도약을 해보십시오. 다음 주일 예배를 위하여 한 주간 내내 기도하기로 결단하고 와보십시오. 설교자와 대표 기도자와 찬양인도자와 예배자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예배가 성령의 임재로 가득한 예배가 되기를 한 주간 준비하고 와보세요.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 성경을 읽고 기대해보세요. 

둘째, 도약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갈렙은 지금 젊은 나이가 아닙니다. 지금 85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자기가 모세의 정탐군이었던 40세 때나 은퇴 시점인 85세 때나 생각이 똑같습니다. 

자 이 말은 뭡니까? 믿음의 도약은 나이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약을 하고 믿음의 도전을 한다는 것은 내 현재의 상황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자기 문제, 자기 상황에 빠져있지 않습니다. 

말을 바꿔볼까요? 자기 문제, 자기 상황 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믿음과 가장 흡사하면서도 가장 믿음이 아닌 것이 뭔가 하면 겸손으로 위장된 자기연민과 자기비하입니다. 제가 배운 것이 없어서요, 제가 믿은 지가 얼마 안되서요, 제가 가진 것이 없어서요, 제가 경험이 부족해서요, 제가 지금 중고생 자녀를 둬서요, 제가 아직 집이 없어서요, 여러분 이 목록에다 갖다 대려면 댈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난 너무 나이가 어려서 못할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디모데야,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난 너무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안 될거야,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은 오늘 갈렙에게 가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85세 되니까 헤브론같은 산지는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좀 물러날 마음이 들지 않아요? 갈렙이 뭐라고 할까요? 아닌데요! 85세,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네 발로 밟는 땅은 네 것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 갈렙 나이 마흔 때입니다. 지금 85세가 되었어요. 이제 보니까 헤브론은 지형이 험하고 거기는 아낙자손이 살고 있는 지역이지만 하나님 의지하고 그 산지로 올라갈 것을 말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 보다는 ‘내가 가는 길에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갈렙에게는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12절을 주목해보십시오. 이제 주님께서 그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라고 했어요. 주님이 약속하신 땅이 헤브론이다 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잘 보시면 9절에는 너의 발로 밟은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것이 되리라 고 하셨어요. 이 둘 사이에 뭐가 있습니까? 갈렙의 믿음의 해석과 믿음의 도전이 있습니다. 해석은 뭔가? 주님이 내 발로 밟은 땅을 주시겠다고 하였어, 그렇다면 나는 가능하면 험한 산지 높은 산지를 밟아야지, 어차피 내 발로 밟으면 주실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좀 험하고 좀 어려운 곳을 내가 간다고 그 약속이 깨지겠는가? 이것이 믿음의 해석이예요. 

그래서 믿음의 도전이 생깁니다. 그 험하고 높은 산지는 어디여야 하는가? 이 산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죠. 내 마음에 필이 꽃힌 땅 그 땅이 바로 헤브론이었어요. 왜 그런가? 이왕이면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산지, 이왕이면 거인족 아낙자손들이 우글거리는 산지, 거기로 올라 갈려고 했단 말이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나에게 유효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취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이 높고 험한 지역 헤브론으로 올라가기를 결심한 것입니다. 왜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나는 그들을 쫒아낼 수 있다 이겁니다.

13-15절까지는 도약의 사람들이 얻는 모든 것이 나옵니다. 갈렙은 헤브론을 차지합니다. 그뿐 아니라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유다지파가 살아납니다. 여호수아가 기뻐합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의 이 영적 선봉장으로서의 도전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과연 내 친구 갈렙이구나! 여호수아가 갈렙을 축복했다고 했어요. 목사는 어떤 성도가 믿음의 결단을 하고 도약을 시도하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아마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믿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쁜 것은 뭐냐? 갈렙이 이렇게 도약하고 나감으로써 이제 각 지파가 자기 땅을 얻으려고 도전을 해야 하는 싯점인데 내 친구 내 동지 갈렙이 가장 먼저 영적 선봉장으로 나서준 것입니다. 그 믿음의 용기를 기뻐한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믿음의 도약을 할 때, 가장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인정을 받습니다만, 일이 거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내가 도약을 하면,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치고 올라갑니다. 반드시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내 도약의 모습을 보고 영적 사기가 차오릅니다. 갈렙은 험한 산지 헤브론을 정복하였고 그와 그 자손들에게 기업을 물려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저는 도약의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지금 하나님 약속이 여러분 속에서 생생합니까? 도약의 사람들 중 어느 한 두 사람을 내 모델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그가 도약한 것을 뒤따라 달려가 보십시오. 

둘째, 도약의 사람들은 자기 문제속에 빠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씨름하는 주제가 내 영혼이 일어나는 문제입니까? 내 상황을 주제로 삼는 사람은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나? 내가 얼마나 가난한가? 내가 얼마나 없는 게 많은가? 이러면 도약을 하지 못합니다. 

갈렙은 85세였고 은퇴할 나이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서 가장 먼저 헤브론으로 올라갑니다. 그의 영적 도전은 유다지파에게 힘을 불어넣었고 나머지 아홉지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공동체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갈렙을 통해서 이제 영적인 도전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가 정말 하나님과 여러분 지신과 자녀들에게 더욱 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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