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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대와 기다림 (행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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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기다림 (행 1:12-14)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 1:12-14

기다림은 대단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의 영성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키우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셨는데 그 꿈을 당장 이루어주지 않으시고 오랜 동안 준비 연단시키시더니 마침내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뜻을 이루셨습니다. 모세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통해 그 인격과 영성을 향상시키신 후에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리더로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그의 환경이 찬양과 감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편 27편에서는 적들이 사나운 모습으로 다윗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생명”이라 하고 “일평생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를 사모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아픔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어떻게 그런 찬양과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27절에 “너는 여호와를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당장의 환경과 상황은 힘들지만 다윗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협력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미쁘신 하나님을 믿으며 기다림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성입니다. 믿음으로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구절, 마지막 신앙고백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 우리의 결론적인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주님이 당장 오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것은 구원받을 사람들이 아직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례 받으시는 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모릅니다. 저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가족 한 분 한 분이 예수님을 믿고, 마지막으로 제 아버님이 예수를 믿으시는 순간, 제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감사가 일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그전에 오셨다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셨을 텐데, 우리 아버님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다려주신 주님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이 구원방주에 들어오는 그날까지 기다려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오실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그 긴장 가운데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상 자각해야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여러분께서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시는 여러분의 성숙한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제가 부임하는 11월까지 2개월을 더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남아있는 사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바를 기다려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림을 강조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본문 1장 12절부터 2장이 열리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주님의 백성들, 제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령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는가 하는 것이 1장 12절부터 마지막까지의 내용입니다. 기다림 중에 성령을 받게 된 주님의 제자들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성령님의 하실 일을 기다리면 되겠구나!’하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본문을 보면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세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 되어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14절). 기다리면서 힘썼다는 것이 동시에 나오는 것은 능동적인 기다림을 이해하고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면서 능동적으로 하나 된 모습으로 기다렸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신 성령님을 반드시 보내주십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배경은 바로 하나 되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능동적인 태도로 새로운 성령님의 시대를 맞게 된 것입니다. 

제가 원로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목사님께서도 20년 전에 결코 한국에 나오실 수 없는 분이었지만 여러분은 기도로 그 분을 오시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인데, 이번에도 올 수 없는 저를 강권적으로 움직인 것은 여러분의 기도였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 되어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줄 믿습니다.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후 아말렉 백성들과 첫 번째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430년 동안 한 번도 군대를 일으켜 보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싸울 능력이 없습니다. 모세는 젊은 종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라고 합니다. 전쟁은 여호수아가 이끈 군대가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전쟁의 진짜 현장이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투 현장 대신 언덕 위의 세 노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세와 아론과 훌이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하니 전투 현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를 거둡니다. 기도하는 팔이 지쳐서 내려올 때는 이스라엘이 불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두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저는 지난 5월에 에베소 연합중보기도회에서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선교의 프론티어라 불리는 이슬람 나라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돌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여리고성과 같은 것은 우리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능력과 전략으로도 부족합니다. 133개국의 중보기도자들이 터키 땅과 이슬람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길 기도했습니다. 교단과 단체를 뛰어 넘고 나라와 민족을 뛰어 넘어 기도하는 그 순간 얼마나 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는지 모릅니다. 성령님의 새로운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그 지역 목사님들과 각국의 선교사님들, 에베소 지역의 600여 성도들이 모여 축제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땅이 진동하는 듯했습니다. 그 전날 기도 중에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의 현지인 남편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 우리가 마지막 축제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문이 열리더니 어마어마한 십자가가 이 터키 땅 심장에 내려와 꽂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성령님께서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말씀을 깊이 상고하면서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이때 제자들에게는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룟 유다를 왜 허락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아셨는데 왜 그를 제자로 선택해서 쓰신 것일까? 가룟 유다가 진정 12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인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랐던 의미가 무엇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질문으로 우리의 영성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답을 찾지 못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하면서 능동적인 모습으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는 가운데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6절). 성경이 응하였다는 것은 성경 속에서 해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더라”(20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이 허락하시는 약속을 향해 행진할 능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각은 굉장히 좁습니다. 멀리, 전체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우리 앞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고 고난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어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짧은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해하게 주십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격려하시는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계시를 통해 말씀을 붙잡고 하루하루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윌로우크릭은 미국의 유명한 교회입니다. 빌 하이벨스는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그는 구도자 예배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교회에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그분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그분을 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전 교인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실시했습니다. 교회는 성장하고 구도자 예배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는데 그 영혼들이 과연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있는가?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솔직하게 “우리의 교회를 공개한다”(Reveal)라는 책자를 전국에 배포하여 “우리는 이러 이러한 것을 하면서 사실 실패하고 있습니다”라고 알렸습니다. 외적으로 큰 교회요 선도적인 교회지만 그들의 부족함을 그대로 공개했습니다. 

동시에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수천 교회에게 각종 앙케이트를 보내어 과연 이 문제가 윌로우크릭 교회만의 문제인가, 모든 교회의 문제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깨닫게 된 것 하나가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4단계의 교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단계는 아직 ‘중생하지 못한 교우들’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지 못하고 구세주로 알지 못하고 교회 생활을 하는 분들입니다. 어느 교회나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2단계는 ‘성장하는 교우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지금 막 믿은 자들도 있고 교회 생활을 한지 20-30년이 지난 분들도 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에 성장하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3단계는 ‘성숙한 교우들’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고 봉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여러 모양으로 섬기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4단계의 성도는 ‘예수 중심의 교우들’입니다. 이들은 어느 교회든지 약 4-5%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3단계 ‘성숙한 교우들’은 자신의 모든 계획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주님, 이 계획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정리해 주십시오.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그런데 4단계의 ‘예수 중심의 교우들’은 “하나님, 제가 백지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저의 삶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순식간에 옮길 수 있는 성도들이 4-5%의 ‘예수 중심의 교우들’이라는 것입니다.

4단계 교우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매일 QT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정렬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매일 말씀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목사로서 설교 때문에, 성경공부 때문에 매일 성경을 접하지만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서 그 말씀 앞에 서기 위해서 말씀을 깊이 상고하는 자리에 내려가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그 4-5%의 교우들은 매일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능동적으로 기다리되 말씀 앞에 자신들의 생각을 백지화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상고하면서 기다렸음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은 2개월 동안 기다리는 가운데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새로운 사역을 기다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가 김상복 목사님을 처음 만난 때가 중3때였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자라고 있을 때 처음으로 학생 연합수련회를 했는데 김 목사님께서 주 강사로 오셨습니다. 그때 목사님을 뵙고 놀랐던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영어를 너무 잘하셔서 기절초풍했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1세 목사님은 처음 봤습니다. 영어로 설교하시면서 청소년들에게 은혜를 끼치시는 목사님을 보면서 ‘야, 멋있다! 나의 롤모델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목사님께서 복음을 그대로 전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복음 자체에,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구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전하면 영혼들을 움직일 수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양식’을 이민사회에 제공하여서 많은 이민자들이 QT를 하면서 말씀을 접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붙잡고 온 여러분과 교회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려고 할 때 더욱더 말씀 속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역사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어서 오늘도 모든 세계를 경영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말씀 속에 깨닫고 기다리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사람을 세웠습니다. 제자들은 사람을 세우면서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1,22절). 사람을 세우는 일에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바람을 부으셨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새로운 역사를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전략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의 90%는 12제자들과 나누셨던 것들이었습니다. 그 12명을 세우는데 모든 전략과 열정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13절에 주님께서 이 땅에 교회와 목회자를 왜 세우셨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맡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목회자들을 교회에 허락하신 것이다.”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세워야 하는가? “이는 우리 모두가 다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하려고 목회자를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주님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나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막연하게 예수님 믿고 교회생활 하는 것, 주님께서는 물론 기쁘시겠지요. 거기에 주님의 궁극적인 계획이 있음을 알고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도록 우리를 세워 나가시고자 교회와 목회자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인본주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사람들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11장 후반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아들 중 셈을 택하여 셈의 후손들과 족보를 보여주십니다. 바벨탑은 저렇게 올라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세우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벨탑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대로 세워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았던 자입니다. 디모데서 6장 11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귀를 긁어줄 수 있는 가르침을 따를 것이고, 더 이상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것이고, 돈을 사랑할 것이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할 때가 올 것인데 “그러나 너 하나님의 사람아! (But you, man of God!)” 너 하나님의 사람, 너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그 자리에서 타협하지 않는 믿음생활을 지키고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하나님께서 너 하나님의 사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펼치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감당합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께서 지난주에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장례식에 참석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분은 한 사람을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세우시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그래야만 교회에 소망이 있다고 제자훈련을 도입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때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지는 믿음 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하신 성령의 시대를 여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꼭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을 세워야 한다”라는 명령을 주시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세우는 가운데 1장이 끝나고 다음 2장이 시작되면서 시작하자마자 성령님이 임하시고 사람들이 세워지니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역을 지금까지 잘 해 주셨고 계속하여 체계적으로 사람을 세우는 일에 우리가 힘을 합해야 합니다. 다음 2개월 동안은 이렇게 서로를 세워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주십시오. 주님은 믿는 자들을 공동체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믿는 자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으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다리면서 온 교회가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형제 사랑 없이는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합니다. 산상수훈을 보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물을 가지고 가다가 형제와 화목할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그 자리에 놓고 돌아가 형제와 화목한 다음에 와서 그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화목해야 될 일을 미루고 예배를 드리면 주님께서 그 예배를 전적으로 받으실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빌레몬서가 있습니다. 단 한 장의 편지를 왜 성경으로 허락하셨을까요? 빌레몬서의 내용은 하나입니다. 용서하고 화합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빌레몬이라는 로마인 형제가 있었는데 많은 부하가 있었습니다. 그 집의 노예 오네시모가 도망을 쳤습니다. 그 당시 사회법에 의하면 사형감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도망 중에 복음을 접하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바울은 두 사람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둘을 다 형제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분명 두 사람은 형제인데 사회구조 때문에 서로 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썼습니다. 화해와 용서를 하라고. 용서가 힘들면 바울 자신이 대신 사형선고를 받더라도 둘이 화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이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여러분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고 주님의 교회가 계속 흥할 것이니 화합하고 사랑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고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내 힘으로 하기 힘들 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내가 먼저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음 2개월 동안 여러분이 이 일을 꼭 해 주셔야 합니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엉클어진 관계나 쌓인 갈등이 있다면 여러분이 기다리는 이 기간에 꼭 화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3기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축복 가운데 성령의 바람이 임하고 날개를 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역을 향해 우리가 같이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전략과 시스템이 좋고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성령님이 바람을 안 불어주시면 우리는 날 수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골짜기에서 보았던 마른 뼈가 생각이 납니다. “인자야 과연 마른 뼈들이 살겠느냐?”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마른 뼈를 향해 선포하여라." 말씀을 대언하니 말씀이 원동력이 되어 뼈가 서로 연결되고 그 위에 살과 근육이 붙어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살아있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생기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라”고 하셨습니다. ‘생기’는 ‘성령’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시니까 그 뼈가 연합하여 근육과 살이 덮이고, 성령의 바람이 불자 비로소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마네킹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바람이 임하시니 일어나 움직이는 하나님의 군대가 섭니다. 

한 번 주어진 인생, 다시 살 수 없는데 주님을 위해 이렇게 사시지 않겠습니까? 성령을 받아서 성령이 이끄시는 바람을 타고 전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펼치고 확장시키는 주님의 백성들, 주님의 군인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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