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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불 (왕상 18:30-33, 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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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 (왕상 18:30-33, 37-38)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야훼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그가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야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야훼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열왕기상 18장30∼33절, 37∼38절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때때로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승리하는 비결은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갈멜산 상에서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불이 떨어진 사건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신과 같은 각종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은 황폐해져 가고, 온 백성은 기근으로 크게 고생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누가 과연 참 신인가를 가리기 위해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했습니다. 엘리야는 그곳에 모인 백성들에게 제단을 쌓아 놓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사르는 신이 참 신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왕상 18:24).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은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침부터 하루 종일 외쳐댔으나 비는커녕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즉시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회개하는 신앙

엘리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백성들을 제단 앞으로 부르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것이었습니다(왕상 18:30). 
 
원래 갈멜산에는 야훼의 단이 있었는데 아합 왕 때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단을 헐어버렸습니다. 엘리야는 헐어버렸던 하나님의 단을 다시 수축했습니다. 무너진 단을 먼저 다시 고치고 난 다음에 비로소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무너진 것을 그대로 둔 채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부른다는 것은 주님께로 나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게로 가까이 오라”고 하시며 허물 많은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사 1:18). 세상에서 방황하던 사람은 주님 앞에 나아가서 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식어진 첫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계 2:4).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예배의 제단,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다음 달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됩니다. 세계의 중추적 국가들이 서로 만나 지구촌의 경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이 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면 그 경제적 효과가 무려 2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어디에서 결정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 교제의 자리가 바로 제단입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가 구약시대처럼 실제의 제단을 쌓을 필요는 없지만,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또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2. 하나 되는 신앙

엘리야는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다시 쌓을 때 열두 돌을 취했습니다(왕상 18:31∼32). 열두 돌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합니다. 
 
열두 지파의 조상은 한 아버지의 피를 받은 한 형제였습니다. 그러한 열두 지파가 솔로몬 왕 이후에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갈라졌습니다. 엘리야 당시, 남쪽 유다는 여호사밧 왕이 통치했고 북쪽 이스라엘은 아합 왕이 통치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제단을 쌓았지만, 북이스라엘은 아합 왕이 우상을 세우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갈라진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나라가 갈라질 때 민족이 갈라지고, 민족이 갈라질 때 제단이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라진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제단을 쌓고 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에서 열두 돌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하나 될 때 나타납니다. 흩어진 믿음의 식구들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에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1, 22). 각 가정이, 구역이, 교회가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 당을 짓는 마음들을 다 버리고 주안에서 화합의 마음, 용서의 마음, 한 몸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마 5:23∼24).
 
하나 되는 길은 용서하며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워버리시고 두 손을 활짝 내밀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받아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아니었다면 단 하루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음을 기억하고,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본문 32절에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여”라고 한 것처럼 하나 됨은 주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가 될 때 성령의 불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3. 십자가 신앙

제단의 나무위에 벌인 피의 희생 제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왕상 18:33).
보혈의 능력 외에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속죄의 근거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히 9:22).
또한 제단 주변 도랑에 가득 찰 정도로 제단에 두루 뿌려진 물은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왕상 18:33∼35; 엡 5:2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우상의 거짓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에는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드려야 하건만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제사만 드렸습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타락한 신앙을 제단에 물을 부음으로써 깨닫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제단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단에는 항상 말씀에의 순종함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드려지는 제사는 형식적인 제사는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제단에 물을 부으면서 말씀이 충만한 제단만이 하나님의 불의 역사가 임한다는 비밀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단이 수축되자, 엘리야는 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왕상 18:36∼37).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말씀을 붙잡고 전력을 다해 기도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불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처럼 부르짖으십시오(사 26:17).

4. 성령 충만의 신앙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할 때 드디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불이 얼마나 강했는지 순식간에 제물이 태워지고 도랑의 물이 다 말라버렸습니다(왕상 18:38). 강력한 불이 임하는 순간 이스라엘에 부흥이 임했습니다(왕상 18:39).
그러자 그전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우상의 중간에서 머뭇거리던 백성들이 이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야훼가 참신임을 고백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07년 평양에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부흥의 불길은 길선주, 이용도, 김익두, 이성봉 목사님으로 이어지면서 크게 번져 나갔고, 드디어 1958년 조용기 목사님께 성령의 불이 옮겨가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온 한국 교회에 성령의 불이 붙고 있습니다.
 
모든 기적과 부흥을 이루는 원동력은 성령의 힘입니다(슥 4:6b).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불로 임하실 때에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회개함으로 무너진 예배의 제단을 수축하십시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고,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하여 갈멜산 엘리야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고 이스라엘에는 비가 내려 가뭄에서 해갈된 것처럼, 각 개인과 이 나라, 이 민족의 교회에 임했던 영적 가뭄이 해갈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무너진 신앙의 제단을 다시 쌓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어서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주여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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