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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Blessing) (창 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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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Blessing) (창 1:27-28)


지난 2008년 2월 10일 저녁 토지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한 시민에 의해 우리나라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되고 5시간 만에 불길은 이 소중한 국보를 전소시키는 불행한 사태로 끝났습니다. 그때 이 문화재를 아끼는 수많은 국민들에 의해 일제히 제기된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이 문화재가 원형 그대로 복구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건물이나 문화재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즉각적으로 제기된 또 하나의 물음은 이 숭례문의 <기본 설계도>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원 도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1961년 숭례문 중수공사 당시 태조/세종/성종 시절 제작된 세 종류의 상량문이 지붕의 기와 밑 흙속에 파묻힌 목재에서 발견되어 당시 한문 해독가의 협조로 만든 사실상의 복구된 숭례문 설계도가 있어서 이 ‘실측 도면’을 기초로 공사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숭례문은 앞으로 1-2년 내에 그 회복된 우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숭례문의 복구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인생이 흔들리거나 무너짐을 경험할 때 과연 인생의 회복은 숭례문처럼 가능한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다시 물어야 할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인생에 대한 기본 설계도가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첫 장 창세기 1장이 제시하는 오리지날 인생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의 설계를 따라 지어진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우선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실 때 6일간의 창조의 순서를 주목해 보십시오. 

첫째날 그는 빛을 지으십니다. 둘째 날 그는 바다와 하늘의 궁창(공간)을 만드십니다. 셋째 날 그는 땅을 만드십니다. 넷째 날 그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십니다. 다섯째 날 그는 물고기와 새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 짐승과 인간을 만드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째 날은 넷째 날과 짝이 되고, 둘째 날은 다섯 째 날과 짝이 되고, 셋째 날은 여섯 째 날과 짝을 이루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창조주는 먼저 빛을 만드시고 다음 빛을 사용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고, 먼저 물과 하늘을 만드신 다음 물을 헤엄할 물고기를 하늘을 날아다닐 조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먼저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땅의 주인이 될 짐승과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1-빛, 2-물/하늘, 3-땅, 4-해/달/별, 5-물고기/새, 6-짐승/사람   

무슨 말입니까? 그는 계획을 하고 만물을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이 땅에 던져져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신을 믿는 과학자들은 이런 창조를 <지적 설계론>(Intellectual Desig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얼마나 더 놀라운 설계로 지어진 존재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따라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조된 오리지날 인간-어떻게 설계된 존재일까요?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만물의 창조를 설명할 때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단어중 하나가 ‘종류대로’라는 말입니다. 개는 개같이, 말은 말같이, 소는 소같이, 여우는 여우같이그러나 인간은 인간 같이가 아닙니다. 인간만은 하나님같이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본문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여기서 사용된 ‘형상’(selem, image)이란 말은 육체적 형상이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인격, 혹은 도덕적 특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신약 엡4:24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을 닮은 새 사람의 특성을 의와 진리, 거룩함 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처럼 의롭고 참되고 거룩한 존재,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죄가 인간을 타락시켜 불의한 존재, 추한 존재로 전락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그분의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형상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바라보는 대상을 닮습니다. 부부가 닮는 이유-서로를 늘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작가 나타나엘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시골 마을 산 마루 사람을 닮은 큰 바위 얼굴은 그 마을의 자랑이었습니다. 또 그 마을에는 전설처럼 어느 날 그 바위 얼굴을 닮은 주인공이 나타나리라는 예언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출신으로 부자가 된 상인이 등장하지요. 얼마나 흥분했는지, 그러나 그는 탐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 장군님이 등장하고, 정치가가 또 시인이 등장하고~ 다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해지는 저녁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그를 향한 기대를 버리지 말라고 설득하는 이 마을 출신으로 노인이 된 어니스트를 바라보던 시인이 소리치지요. “어니스트다 어니스트야. 그가 바위 얼굴을 닮은 주인공이다” 

그렇습니다. 어니스트는 소년시절부터 늘 그 바위 얼굴을 사랑했고, 늘 그 바위 얼굴을 바라보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바라보는 대상을 닮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닮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오리지널 창조의 모습입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맨 처음 하신 일이 복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본문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쉽게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도록 지어진 존재이며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 받은 복을 다음 세대인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해야 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축복을 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살던 세상에 축복을 남기고 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성경적 전통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서구의 인사가 “May God bless you!”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일이 되면 부르는 노래 는 본래 가 원문인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God bless you”를 빠트리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의 의도는 한번도 폐기된 일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또 범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면서 때로는 인간을 징계하시면서도 자신의 진정한 의도는 축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 자녀들이 잘못하면 우리가 자녀들을 책망도 하고 벌도 주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도 정말 내 자녀들이 복된 존재로 자라가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진하게 느껴본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살 때 저의 집 큰 아이가 17살이 되어 운전 면허를 받고자 운전 연습을 할 때의 일입니다. 운전허가증을 받았지만 옆에 성인이 있어야 할 때였는데 마침 그때 저의 부부가 한국에 나올일이 있어 운전하지 말도록 당부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집 앞에 차가 있고, 운전은 조금 할줄 알던 아이가 충동이 생겨 차를 몰고 집 앞에 학교 운동장에 가서 연습하다가 학교 운동장에 세워 둔 차를 긁어 버린 것입니다. 당황한 나머지 쪽지를 남기지 못하고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미국은 신고 문화가 발달된 나라이어서 누군가가 신고를 했고 정확하게 두 시간 후 경찰이 집으로 출동하여 취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때 마침 한국에 나오시는 친한 교우 한 분이 있어 그편에 그 소식이 한국에 나온 저희 부부에게 전달되었고 그 부부는 저희 아들이 친필로 쓴 편지를 갖고 나왔습니다. 생후 아들에게 받은 가장 긴 편지였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부모님, 제가 사고를 쳤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하신 당부한 말씀을 알고도 운전을 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쳐서 지금 경찰의 취조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모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사회봉사 명령을 받으면 그렇게 할 것이고 보상을 해야 한다면 제가 일을 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쓴 이유는 부모님은 저를 항상 믿어 주셨고 늘 축복 기도를 해 주셨는데 그런 부모님의 신뢰를 제가 저버렸다는 생각이 저를 아프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제가 감히 요청 드리고 싶은 것은 부모님, 그런 저를 용서하시고 이런 때에라도 저를 축복하실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희는 일정을 당겨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이 비행장에 마중나왔더라구요. 그것도 전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한 30분 걸려 집으로 가는 동안 저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차창 밖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자꾸 저의 얼굴 표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집에 들어서자 말자 아들이 제 앞에 무릎을 꿇더니 “아빠 때려 주세요”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의 편지 보니까 네가 많이 반성하고 많이 마음 아파한 흔적을 보았어. 나는 네가 그것으로 충분이 필요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 아빠가 당겨서 빨리 온 것은 너를 축복하고 싶어서야. 우리 함께 기도하자” 

그리고 저의 부부는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이 이런 실수를 통해 소중한 교훈을 배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그러나 하나님, 이런 실수를 통해 교훈을 배운 이 아들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축복하여 주소서” 

기도를 받으면서 아들도 울고 저로 울고 우리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밤,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실수하는 인생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더욱 성숙한 내일로 가도록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대를 져버리고 살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 죄를 뉘우치고 처음 용서를 받는 사건을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구원의 축복을 전달하고자 오신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영접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의 형상을 닮아가는 놀라운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 당신의 창조자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하나님 앞에 돌아오시기만 하면 하나님은 구원의 파티를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놀라운 인생을 준비해 주십니다. 당신은 이런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며 살도록 설계된 존재입니다. 오늘 이 축복의 파티를 놓치지 마시고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May God bless you!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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