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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연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시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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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시 133:1)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연합 (dh'y" 야하드)는 '하나됨, 결합됨, 연합됨'을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40회 나오며, '연합, 하나',  '함께, 똑같이,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지방에 작은 개미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개미들이 떼를 지어 행진하게 되었는데, 그 행진 대열의 길이가 10여 리나 되었습니다. 모든 짐승들이 이 움직임을 보고는 무서워 떨며 그 앞에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짐승 중에 제일 큰 코끼리는 숲으로 달아났고, 겁이 없는 밀림의 맹수 사자조차 그 광경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숲으로 피한 코끼리가 말하였습니다. '작은 개미를 어찌 무서워 하겠는가마는, 저 개미들이 떼를 지은 곳에 들어갔다가는 수만 마리가 몸에 붙어 살을 뜯어먹을 것이고 영락없이 여러 마리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것들 중의 하나는 개미라 합니다. 이 작은 개미의 힘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입니다. 미미한 벌레라도 힘을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자연히 강해지는데 믿는 이들이 연합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인생을 설명하는이들은 혼자는 항상 점에 불과하다 합니다. 넓은 도화지에 점 하나만 찍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과 점이 이어지면서 선을 이루고, 그 선이 원을 그리고 점과 점이 모아지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혼자는 항상 잘하는데, 이웃과 화목할 줄 모르고, 홀로 고독을 즐긴다고 하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 가정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아보며 연합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연합은 행동이 하나일 때 이루어 집니다.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성읍이 바로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이곳은 요단 강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었을 뿐 아니라 요단 서편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전진 기지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이곳의 정복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가나안 정복의 제일 관문답게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쳐진 그야말로 견고한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 적인 눈으로 볼 때 이곳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거의 노예 생활을 했었을 뿐 아니라 광야에서 무려 40년 간을 지냈었기 때문에 막강한 전투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당장 상대해야 할 여리고 성은 너무도 견고하여 이스라엘이 정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여리고 성은 반드시 함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의 소유권을 가나안 족속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이전하도록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여리고 성을 붙이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작전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성을 탈취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을 이스라엘에게 맡겼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성을 위할 수 있도록 계획하시고 모든 일을 간섭하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안전히 여리고 성을 얻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분이 명하신 바를 좇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좇아 하루에 한 바퀴씩 6일 동안 매일 꾸준히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그들은 일체의 불평이나 원망이나 혹은 의심의 말없이 그저 하나님의 명령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임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뎠던 것입니다. 조급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소망하고 의지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욕망과 자아는 죽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높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6일 동안 매일 한 번씩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 항상 그들 앞에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여기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그분의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성물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 주변을 행진하는 동안 내내 하나님을 앞세우며 그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을 앞세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에게는 참된 번영과 참된 평안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문을 굳게 닫고 수비에 들어간 여리고를 점령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법궤를 앞세우고 나팔을 불며 매일 성 주위를 한 바퀴씩 돌게 하셨습니다. 일곱째 되는 날 똑같은 방식으로 일곱 바퀴를 돌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시에 소리치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의 모든 남녀와 가축들을 진멸하였습니다.

릴레이 경주는 고대 그리스의 고린도(Corinthos)에서 시작되었다합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달렸다합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통이 나무 막대가 아니라 봉화라는 점이었다합니다. 그러니까 빨리만 달린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다합니다. 봉화의 불이 꺼지지 않게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이 꺼지게 하는 실수는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때 많이 한다고 합니다. 봉화 바통을 넘겨주는 주자와 받으면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주자의 호흡이 잘 맞고 속도와 리듬이 일치해야 빨리 인계가 된다합니다. 

두 친구가 2인용 자전거를 탔다. 언덕길을 오르기가 몹시 힘들었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자 앞에 탄 친구가 말했다. "언덕길에서 페달을 밟기란 정말 힘들었어." 뒤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나도 힘들었어. 자전거가 뒤로 내려가지 않도록 계속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거든."


연합은 마음이 하나일 때 이루어 집니다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 왕이 생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일부 용사들이 시글락에 있는 다윗에게 귀순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울의 폭정과 비신앙적 행동이 극에 달했음과 사울에게서 올바를 정치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일부 용사들은 인간적인 정이나 혈통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정의를 위해 신앙적 결단을 하여 다윗을 도왔습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다윗이 나가서 맞아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대상 12:17) 
  
남자의 마음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신혼 초에 사랑하는 아내가 아플 때는 '어서 옷입어 병원에 가야지.' 
1년 후에 아프다고 전화하면 '여보, 지난 번 간 병원알지? 택시 타고 다녀와 오늘 빨리 갈께.' 
2년 후 아프다고 전화하면 '집엔 약도 없어? 약 먹고 누워서 쉬라고 또 몸살이 난 모양이구먼.' 
5년 후 몸이 불편하다고 전화하면 '도대체 뭘 한다고 당신은 맨날 아프다는 거야? 나 원참, 원래 당신은 좀 약한 체질이었던 같애.' 
10년 후 전화도 못하고 누워 있는 아내를 본 남편 왈 '아무리 몸이 좀 아파도 집안은 정리해 놓고 있어야지. 나 원참, 이러니 밖에서 되는 일이 있겠어!' 라고 소리치면서 저 혼자 밥 사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 남자.

아내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변해도 마음만은 변덕쟁이가 아닌 신혼 초의 기분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그런 마음으로 옷을 입은 남편을 아내는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내와 가정의 환경과 분위기가 달라지기를 바라지말고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질 때 아내와 가정의 환경이 변화되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장군이 훈장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는 무명의 용사들이다. 교육학자들은 보통 학문의 업적을 자랑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무명의 교사들이다. 선생님은 갈채도 없고 금메달도 없다. 단지 내일의 소망인 학생들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혀줄 뿐이다. 지혜로운 교사는 학생들의 미래를 사랑의 망원경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우둔한 교사는 학생들의 행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실수만을 찾아낸다. 사랑과 격려가 최선의 교육이다. 교사는 연을 날리는 사람과 같다. 연이 땅에 떨어지려고 할 때마다 적당히 줄을 잡아당겨 하늘로 향하도록 조절한다. 그리고 한시도 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연이 푸른 창공에 날아오를 때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이것이 교사의 마음이다. 


연합은 말이 하나일 때 이루어집니다.

홍수 후에 인간이 다시 번성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또다시 그 교만성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 온 땅의 많은 종족들이 갈라져서 살았으나 아직은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는 야심과 흩어짐을 면하려는 계획으로 바벨탑을 건설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시날 평지에 거하던 노아의 후손들은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과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목적에서 바벨탑을 쌓으려는 악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것은 헛된 명예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땅히 창조주이신 하나님만 의뢰하고, 그분만을 높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는데 이는 땅에 널리 퍼져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입니다.

인간들이 성과 대를 쌓게 된 원인적인 배경은 그들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본래 하나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언어가 하나라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으는 주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로 부여된 언어를 자신들의 교만과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악용하는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습니다.

하나님 없이 이루어지는 경영은 인간의 욕심과 죄의 본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경영의 과정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릅니다. 인간의 악한 계획에 따라 건축되는 바벨탑을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써 실패하게 하셨습니다.

말에 관한 널리 알려진 한 유머가 있습니다. 남쪽 지역 출신 장교가 있는 부대에 서울 지역 출신 신참 사병들이 배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곧 전쟁이 났습니다. 적에게서 폭탄이 날아오자 장교가 ‘수구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출신 신참들 무슨 말인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만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장교 다음부터는 ‘엎드려!’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배속된 서울 신참들을 데리고 전투에 참여했는데, 폭탄이 날아왔습니다. “폭탄이다. 엎드려!” 서울 출신 신참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장교는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폭탄이 다시 날아왔습니다. 급한 마음에 장교는 “아까멘끼로!”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서울 신참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전부 죽었습니다.
  
속회 연합 체육대회를 통해 연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1970년대 후반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해바라기와 나팔꽃" 이야기를 어느 목사님이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담장 아래 어느 꽃밭에 해바라기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형제는 자기들의 이상인 햇님을 향해 뻗어가며 서로 누구의 키가 더 크게 자랄 것인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때론 담장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의 발 밑에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기댈 곳을 찾아 이 두 형제 사이를 기웃거리던 나팔꽃이었습니다. 나팔꽃이 먼저 작은 해바라기에게 부탁을 합니다. "작은 해바라기 님! 저는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존재랍니다. 저는 누군가를 의지하고 자라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답니다. 해바라기님께서 저의 기댈 곳이 되어 주신다면 저의 가장 아름다운 꽃을 당신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들은 작은 해바라기는 버럭 신경질을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나는 너처럼 거추장스러운 존재는 딱 질색이야! 나는 누군가가 내 몸에 와 닿는 것조차 싫어. 그런데 너는 나를 칭칭 감고 올라가 나를 꽁꽁 묶을 것 아니니? 나는 저기 하늘에 보이는 햇님을 향해 커 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말이야. 그러니 다른 데나 가서 알아보라구" 

작은 해바라기의 가시 돋친 말에 나팔꽃은 잔뜩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팔꽃은 큰 해바라기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런데 큰 해바라기는 발치에 있는 나팔꽃에게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큰 해바라기의 그 환한 미소에 힘을 얻은 나팔꽃은 용기를 내서 부탁합니다. "큰 해바라기 님, 저는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존재랍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자라서 꽃을 피울 수 있답니다. 좀 거추장스럽더라도 큰 해바라기님께서 저의 기댈 곳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큰 해바라기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여 드릴 수가 있습니다" 

큰 해바라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팔꽃 아가씨! 걱정 마세요. 제가 아가씨의 버팀대가 되어 드릴게요. 사실 햇님을 바라보며 남보다 더 크게 자라려고 경쟁하듯 달려온 나의 삶은 각박하기만 했답니다. 아가씨와 함께 저기 하늘의 햇님을 향하여 더불어 여행을 하고 싶군요. 어서 아가씨의 여린줄기를 제 몸에 기대세요. 제 몸에 약간 거칠은 솜털이 박혀 있긴 하지만, 조심조심 타고 올라오신다면 못 오를리 없을 거예요" 

큰 해바라기의 기꺼운 허락을 받은 나팔꽃은 기쁨에 겨워 해바라기의 몸을 힘껏 감싸 안으며 자라 올랐습니다. 마침내 나팔꽃은 연분홍 나팔꽃을 가득 피웠고 바깥세상의 아름다움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팔꽃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큰 해바라기는 더욱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 쳤습니다. 비바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쓸어 갈 것처럼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밤새도록 불던 비바람이 잔잔해지고 드디어 아침해가 돋았습니다. 나팔꽃은 부랴부랴 꽃을 피워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나팔꽃은 작은 해바라기의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해바라기가 목이 꺾인 채로 흔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밤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목이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바람을 맞은 큰 해바라기는 상처하나 없이 든든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거센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큰 해바라기를 꽁꽁 감싸고 있는 나팔꽃 덩굴이 보호했던 것입니다. 아침의 따사로운 햇님을 향해 큰 해바라기와 나팔꽃은 함께 행복했답니다.
연합된 모습으로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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