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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엡 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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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엡 2:8-13)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 저는 지방 목회자들과 함께 전남지역의 기독교 유적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증도의 문준경전도사 순교 유적지, 영광의 염산교회, 여수의 손양원목사의 유적지였습니다. 
     
문준경전도사 순교유적지는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 있습니다. 문준경전도사는 해방 이전에 증도 일원에 진리교회,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를 차례로 건립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이 섬 저 섬의 교회가 없는 지역을 돌며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해방 후, 전쟁이 일어나자 평소 교회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좌익들에 의하여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는 죄목으로 1950년 10월 4일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헌신과 흘린 피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전남 영광은 6·25 당시 194명이 순교한 대표적인 기독교 순교지입니다. 그 중에서 염산교회는 당시 전체교인의 3분의 2인 77명이 전쟁 당시 미처 퇴각하지 못한 북한 공산군에 의해 순교 당했습니다. 마을 앞 설도포구의 수문통에는 무려 77명이나 되는 교인들이 목에 큰 돌이 매달린 채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전남 여수의 애양원은 본래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곳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이곳의 교회를 담임하고 목회하던 중 여순사건으로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잃었습니다(1948년). 그리고 자신도 전쟁 중에 공산군에게 검속되어 총살되어 순교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삼부자 묘와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이 있습니다.
     
증도나 염산교회나 애양원 순교기념관은 신앙을 위하여 죽은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전한 민족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아파하는 곳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죽은 순교의 현장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또한 사상 때문에 사람들을 죽인 갈등에 가슴아파합니다. 이렇게 ‘이유’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죽을 수도 있게 하고, 또 다른 면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게도 할 수 있습니다. 순교의 현장에서 목숨을 바쳐서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죽을 수도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죽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난 중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구원에서 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I. 구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힘의 원천은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믿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바로 구원에서 옵니다. 구원은 죽을 수도 있게 하고 살아 갈수도 있게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에서 우선 주목하려는 것은 ‘그 은혜에 의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되어 진 것입니다.
     
1.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단지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근거이자 원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다시 8절 말씀입니다.
 :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번에 주목할 말씀은 ‘믿음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2.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었다는 것이 드러나 놓고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공로입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3.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혹시 ‘내가 믿었으니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지, 내가 믿지 않다면 어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겠는가!’ 하며 자신의 믿음을 공로로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 은혜를 믿음은 감사하여야 할 것이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 은혜와 사랑뿐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목적을 작품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작품입니까?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II. 작품

10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신 그 목적과 계획과 목표가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먼저 10절 첫 번째 구절입니다.
:10a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만드신[poivhma/포이에마]이라는 말은 생산품,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물리학자들 가운데 학문적 위상은 물론 대중적 명성도 가장 높다는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 “철학은 죽었고 신은 필요 없다. 물리학이 우주의 존재에 관한 본질적인 의문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주의 시작은 과학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되며 어떤 신의 손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무’에서 자연 발생한 우주는 자연법칙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우주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것이 우주가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무에서 우주를 만들어 낸 자연법칙을 누가 만들었지 물리학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주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은 은혜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이 있으셨기에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까?
10절 두 번째 구절입니다.
 :10b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여기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신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입니다. ‘선한 일’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2. 우리는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길가에 구르는 돌 하나에도 목적이 있고, 사람의 발에 밟히는 풀 한 포기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작은 것 하나에도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곳에 있는 것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생물학적으로 다 안다고 해서 인생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체의 출생 과정을 전혀 모른다고 해서 인생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은 존재이고,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엉뚱하게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건의 용도를 모르고 사용하면 잘못 사용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커피포트로 밥을 짓거나 라면을 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해가 진 뒤에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 길을 가다가 이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당신,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요?”
     
낯선 사람은 이렇게 반문을 합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오히려 당황해진 그 동네 사람이 다시 묻습니다.
“아니, 당신 집이 어디요. 어디서 왔기에 여기서 있습니까?”
     
다시 낯선 사람이 말합니다.
 “제발 가르쳐주십시오.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 인생입니까?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기를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부터 계획된 것입니까? 혹시 우리는 우연의 부산물은 아닙니까?
     
10절 세 번째 구절입니다.
:10c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여기에서 전에 예비하다[proetoimavzw/프로에토이마조]는 말은 미리 준비하다, 이전에 정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어쩌다 그렇게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진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미 오래 전에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설계가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오래전 태초부터 예비한 계획이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쉽게 만들어서 쉽게 사용하다 쉽게 버릴 수 있는 졸작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설계가 있는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는 분명한 계획에 의하여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 때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계획을 세우시고 준비하셔서 그렇게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여 하는 일이라면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시고 하신 일이라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자신이 삶이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매우 값싸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중요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정말로 중요한 존재로 여기고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고 미리 준비하시고 만드신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정말로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설계가 있는 하나님의 작품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달려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10절 네 번째 구절입니다.
 :10d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서 행하다[peripatevw/페리파테오]는 말은 주위를 걷다, 두루 다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일’이라는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하며 그 가운데서 행하여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4. 우리는 목표가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목적이 그렇게 하여야 만하는 ‘이유’라면, 목표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움직이는 작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냥 벽에 걸어 두고 보기 위한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움직이며 선한 일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에 대한 말씀을 앞으로 다섯 주간 동안 함께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40일간의 캠페인입니다.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목적과 계획과 목표가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III. 생각

11절은 생각하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하라[nhmoneuvw/므네모뉴오]는 말은 ‘기억을 더듬어 회상하여보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무엇을 위하여 살아오셨습니까? 무엇을 잡기 위하여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셨습니까?

먼저,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3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이 말씀은 앞의 11절과 12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에게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단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었고, 약속의 공동체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1. 우리는 멀리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목적이나 계획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부평초와 같이 서성이는 흔들리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행복이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생각하여야 합니까?
13절 말씀입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가까워졌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교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분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까? 분명히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보다 훨씬 더 교회에 가까워졌을 것입니다. 말투도 좀 변하였을 것이고 생각하는 것도 좀 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가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설계와 목표가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은 존재이고,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한 40일 동안의 캠페인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방향이자 동력을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열심히 살았는가 하는 이유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이유를 묻고 의미를 찾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삶은 공허해 집니다. 우리는 영원한 삶의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행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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