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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을 붙잡으면 고난도 이겨낸다 (행 27: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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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붙잡으면 고난도 이겨낸다 (행 27:18-26)


지난 주간에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하 700m 땅속에 69일간이나 갇혀 있다가 구조된 칠레 광부들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17일 동안은 죽음의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장관들은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건의 했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희망을 갖고 구조하자고 했답니다. 18일째 지상의 구조대와 연락이 되면서 드디어 희망을 갖고 되었습니다. 구조된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 밑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손을 잡았다. 구조될 것을 확신했다.” 

276명이 탄 배가 지중해 한 복판에서 광풍을 만납니다. 14일 동안이나 풍랑에 휘말려 표류합니다. 얼마나 풍랑이 심했던지 해와 별도 보이질 않습니다. 살 희망조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최대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 중에 희망을 선포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다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자기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드디어 바울 사도가 로마로 갑니다. 배를 타고 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다른 죄수 몇 사람이 함께 갑니다. 이 죄수들은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와 싸우다가 죽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죽으러 가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백부장 율리오와 부하들도 함께 갑니다. 직업상 상관의 명령 때문에 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역을 하는 사업가들도 함께 갑니다. 돈 벌러 로마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직업 때문에, 사업 때문에... 자기 목적을 위해서 로마로 가는 배를 타고 있습니다. 

바울 선교팀도 함께 갑니다. ‘우리’라고 했으니 사도행전을 기록한 바울사도의 주치의사 누가가 함께 가고 있는 겁니다. 바울 사도의 건강을 챙겨드리려고 로마까지 갑니다. 아리스다고가 함께 갑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인데, 바울 사도의 동역자입니다(몬1:24). 바울과 함께 감옥에까지 간 사람입니다.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고난당할 때 끝까지 함께하는 귀한 분들입니다. 끝까지 같이 가는 귀한 동지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왜 로마로 갑니까? 자기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갑니다. 
같은 배를 탔지만 그들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갑니다.
 
행23:11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주님께서 로마 선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하여 2년째 감옥에 있습니다. 재판받을 때, 석방을 포기하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했습니다. 상소가 받아들여져 드디어 2년 만에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수복을 입고 로마 선교 출정을 하는 겁니다. 손에 쇠고랑차고 로마 선교 파송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파송하고 계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누가 정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바울과 그 동역자들 같습니까? 아니면 그 배에 타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 같습니까? 

2. 욕심을 부리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사람들: 

배가 아시아 여러 항구를 거쳐갑니다. 무라 항구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곡식을 싣고 오는 큰 배로 갈아탑니다. 이 배에는 276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이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서 이탈리아로 가려는 겁니다. 

그 당시 지중해 바다는 겨울이 되면 심한 바람 때문에 항해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겨울 동안 항구에 머물렀다가 다시 항해를 합니다. 금식하는 절기(9월 말- 10월 초의 대 속죄일)가 지났으니 이미 항해가 위험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바울 사도가 항해를 중지할 것을 권고합니다. 10절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선장과 선주는 괜찮을 것이니 계속 항해하자고 합니다. 결정권을 가진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항해를 합니다. 그들이 항해 전문가이지요. 

전문가의 말이라고 다 맞는 건 아닙니다. 선장과 선주가 계속 가자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머물자고 한 항구가 겨울 지내기에 불편하다고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좀 더 편한 항구까지 가자는 겁니다. 

좀 더 편하게 지내자고 욕심을 부린 겁니다. 12절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아무리 전문가라도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고 말았습니까? 좀 더 편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 배의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기를 원했습니다. 선장과 선주도 더 편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백부장도 더 편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전문가라도 욕심을 부리면 무리수를 둡니다. 전문가라도 욕심을 부리는 사람의 조언은 유익하질 않습니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사람의 말은 거절하세요. 뭔 ‘대박터진다.’ ‘이거 한 방이면 끝난다’다고 유혹하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세요. 속으로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마귀의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광풍에 휘말리고 있는 겁니다. 분수에 넘는 욕심은 반드시 파멸을 가져오고 맙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현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감사하지 못합니다. 원망 불평합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히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욕심의 노예가 됩니다. 욕심에 질질 끌려 다니게 되고 맙니다. 
처음에는 내가 욕심을 부렸지만, 나중에는 욕심을 나를 부려먹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사람들이 그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15절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17절 “그냥 쫓겨 가더니” 

배가 광풍에 쫓겨 다니게 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풍랑 둘째 날에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버립니다. 곡물 운반선인데 곡식을 다 버리는 겁니다. 사흘째는 배의 기구까지 바다에 버립니다. 죽게 되니 돈이고 재산이고 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버릴 것을 자꾸 쌓아 두면 버려야 할 날이 오는 겁니다. 버릴 것은 미리 버리십시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죽을 때까지도 간직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다 버렸는데도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질 않습니다. 27절에 보면 14일간이나 거센 풍랑이 계속되었습니다. 다 토하느라고 먹지도 못합니다. ‘이제는 죽는구나’ 희망이 사라집니다. 20절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오늘 우리 중에도 인생의 유라굴라 광풍을 만난 분들이 있습니다. 광풍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쫓겨 다니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다 버렸는데도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대로 끝나는가! 절망에 빠져듭니다. 자포자기 하고 맙니다. 그냥 되는대로 살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사명을 붙잡는 사람이 고난을 이겨낸다. 

다 절망하는데 희망을 선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죽었다고 하는데 안심하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입니다. 자포자기하여 쓰러져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섭니다. 

여러분이 제 말을 들었더라면 이 고생과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겁니다. 책망합니다. 
책망만 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선포합니다. 22절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확신을 가지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23-24절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궁금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하루 만에 말씀하시지 않고 왜 14일 만에야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이 침묵하실 때가 있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침묵하실 때는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말씀하실 때는 믿고 순종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스케쥴대로 살아가야 하는 주의 종들인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바울 사도를 죽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사명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가이사 앞에 서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남아 있으니 생명도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명이 끝날 때 까지는 생명도 끝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명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고난이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사명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고난을 넘어뜨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던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사명을 붙잡고 사는 바울을 살리시려고 함께 가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주십니다. 
사명을 붙잡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시점부터 이 배의 리더는 백부장이 아닙니다. 선장과 선주도 아닙니다. 사명을 붙잡고 가는 바울 사도가 리더가 됩니다. 비록 사람앞에서는 죄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리더로 지도자로 쓰시고 계십니다. 

부모님 여러분! 우리가 주님 주신 사명을 붙잡고 삽시다. 그러면 우리 자녀도 살려 주실 겁니다. 
리더 여러분! 우리가 사명을 붙잡고 살면 제자들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명을 붙잡고 사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 직장을 사업장을 풍랑 중에서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사명을 붙잡고 나가면 주님은 우리나라를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믿음의 선포를 하십니다.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시다. 25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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