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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왕상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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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우는 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또 달라고 구할 때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맞는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얻고 싶고 무엇이 필요하면 하나님께 달라고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주시지만 반드시 우리가 구해야만 주신다. 에스겔 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도 우리가 구해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은 믿음이 있다. 이보다 더 좋은 관계, 더 좋은 경우가 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구하지 않아도, 아니 하나님께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주시는 경우이다. 이것이 가장 깊은 믿음이고 최고의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에서 최고의 관계이다. 즉 내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무엇을 주고 싶어 하시는 믿음이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믿음이 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나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을 받으셔서 먼저 나를 찾아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물으시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이고 진정한 믿음의 모습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부귀와 영화와 장수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그에게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신 것이라고 알고 있다.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그가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그가 무엇을 구하기도 전에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신 것이다. 

그러면 솔로몬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는가?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신앙생활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을 행복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살려면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도 역시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를 잘 결정해야 한다. 솔로몬은 이것을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셨고 그를 먼저 찾아오셨다.
 
예배가 먼저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셨다. 
번제 즉 제사는 오늘의 예배에 해당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제사 즉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맞았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에 감동하셨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예배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몸으로 고백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높이고 그 이름에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

오늘 헌신하는 제직들은 모두 하나님의 청지기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군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예배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그 어떤 것도 예배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그 어떤 것도 예배보다 앞설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잘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서 나를 부르셔서 일군으로 세우신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주의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 어떻게 주의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떤 경우도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고 어떤 일보다도 예배를 중요시하고 먼저 예배하라. 글서 하나님의 나의 예배생활에 감동하셔서 먼저 찾아오시는 믿음이 되라.

희생이 먼저 
“4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여기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 번제를 천 번을 드렸다는 것인지 또는 양을 천 마리를 드렸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물론 천 번의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천 마리의 양이 필요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번제를 천 번을 드렸든 양을 천 마리를 드렸든 이것은 대단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제를 천 번을 드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 양을 천 마리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값을 내야하고, 양을 천 마리를 잡기 위해서도 엄청난 수고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런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희생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이 식어진 증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희생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예배를 위해서 시간과 수고를 하는 것이 아까워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깝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 믿음이 식어지고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희생을 하고도 알아달라고도 하지 않고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한 즐거워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믿음 이전에 사랑이다.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아들 예수님의 생명을 기꺼이 나를 위해 희생하셨듯이, 그 사랑을 받은 나도 그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런 진실하고 순수한 믿음이 있을 때, 사랑과 감사로 기꺼이 주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에 감동하신다. 그래서 내게 무어라도 주고 싶으셔서 내가 무엇을 달라고 구하기도 전에 먼저 나를 찾아오신다.

사명이 먼저 
하나님이 솔로몬의 믿음에 감동하셔서 그 밤에 꿈에 그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다.(5절) 얼마나 놀랍고 기쁘고 감격스런 순간인가? 이때 잘만 구하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솔로몬은 이때 의외의 대답을 한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는 지혜를 구한 것이다. “11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역대하 1: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왜 솔로몬이 이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왕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즉 백성들의 문제를 잘 판단해줄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한 것이다.
그의 이 기도가 또 다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했다.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왜인가? 자기 자신의 유익과 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에 꼭 필요한 것을 구했기 때문이다. “11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그에게는 자신의 유익보다 사명이 더 먼저였던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모든 조건이 다 구비되고 모든 능력이 충분히 갖춰진 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에 부족한 것이 많고 힘든 것이 많아도 일단 순종한 후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한 것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또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히 공급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실 때에 내가 부족하다고 핑계하거나 주저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단순하게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 얼마든지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신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이나 기도의 이유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내가 잘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잘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 건강도 구하고 물질도 구하고 지혜도 구하고 능력도 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내게 필요한 것들과 내게 부족한 것들을 구할 때도 내가 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한 동기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마음이 흡족하셨고 그가 구한 지혜와 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주시겠다고 하셨다.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이처럼 기도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구하면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신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런 기도를 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은혜를 입으라.

지혜가 먼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실 때 지혜를 달라고 구했다. 왕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권세나 군사력이 아니라 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힘과 능력 그리고 실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과 지혜가 어떻게 다른가? 지식은 단순히 무엇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잘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행복하게 살 수 없고 올바르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왕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이다. 지혜가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에게서 나오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실 때에 즉시 지혜를 달라고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신 것이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인가? 지혜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지혜에도 선한 지혜가 있고 악한 지혜가 있다. 야고보서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마귀가 주는 정욕적인 악한 지혜를 받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선한 지혜를 구하고 그 지혜를 받아서 사용하라. 고린도전서 12:8에 성령의 12가지 은사 중에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지식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신다. 
선한 지혜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선한 지혜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다. 둘째, 선한 지혜란 사탄의 간교한 계략과 유혹을 아는 것이다. 셋째, 선한 지혜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방법과 사탄의 계략과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이런 하늘의 선한 지혜를 받아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일군들이 되기 바란다.

이런 은혜를 입기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의 자세가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내가 먼저 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남보다 내가 먼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보고 있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면 나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든 말든 관계없이 내가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도 모든 일에 우선해서, 모든 사람보다 우선해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는 일반적인 복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똑같이 받는 복이다. 마태복음 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또 성도가 받는 복이 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복이다. 그것은 기도의 응답과 죄를 용서해 주시는 복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고 받을 수 없는 복이다.

그리고 일군이 받는 복이 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복이다. 디모데후서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 햇곡식을 제일 먼저 먹게 되듯이 하나님의 일을 앞장서서 하는 일군에게 모든 복을 가장 먼저 주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내가 복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다. 이 약속을 믿고 기쁨으로 앞장서서 헌신하라.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한 성도의 집을 심방했는데 그의 성경책을 보니 'T'자와 'P'자가 많이 적혀 있더란다. 그래서 무엇인가 물었더니 성경말씀이 사실인지 시도해보고(try) 그리고 그대로 되어서 사실임이 증명되었다고(proved) 표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해 보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성경에 표시해 놓았다고 한다. 이것이 참된 능력 있는 믿음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서 그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진 간증이 넘쳐나야 한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먼저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해 주시는 복을 받으라.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간증하라. 오늘 헌신하는 모든 일군들이 솔로몬처럼 예배와 희생과 사명을 먼저 행하고 지혜를 먼저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하시는 복을 받고 기쁨으로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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